승리 해결사 우뚝…"쓴소리 하지 않아도 선수들이 잘 알고 있을 것"
(반둥=연합뉴스) 이영호 기자 = "제가 쓴소리를 하지 않아도 후배들이 잘 알고 있을 겁니다."
'캡틴' 손흥민(토트넘)이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남자축구 조별리그에서 실추된 한국 축구의 자존심을 제대로 살렸다.
손흥민은 20일 인도네시아 자와바랏주 반둥의 시 잘락 하루팟 스타디움에서 열린 키르기스스탄과 E조 3차전에 태극전사 주장으로 선발 출전해 후반 18분 기막힌 오른발 논스톱 슈팅으로 결승골을 꽂아 한국의 1-0 승리를 이끌었다.
지난 17일 말레이시아전 졸전 패배로 한국 축구사에 오명으로 남을 '반둥 쇼크'를 당한 태극전사들은 어느 때보다 강한 승리 의지를 앞세워 키르기스스탄전에 나섰다.
실력에서는 훨씬 앞서지만 말레이시아전 석패의 아쉬움을 씻으려면 태극전사들은 '아시아의 호랑이'다운 화끈한 경기력을 팬들에게 보여줘야 하는 게 과제였다.
하지만 경기는 쉽게 풀리지 않았다. 키르기스스탄이 5-4-1 전술로 극단적인 수비벽을 치면서 한국은 일방적 공세 속에 좀처럼 득점포를 가동하지 못했다.
전반전 두 차례 위협적인 프리킥 기회를 맞아 손흥민과 황의조(감바 오사카)가 번갈아 찼지만 모두 골대를 외면했고 태극전사들은 초조해졌다.
결국 전반을 0-0으로 끝낸 상황에서 결국 '캡틴'이 해결사로 나섰다.
후반 18분 장윤호(전북)가 왼쪽 측면에서 올린 코너킥을 페널티지역 오른쪽에서 강력한 오른발 슈팅으로 키르기스스탄의 골대를 흔들었다.
태극전사들은 후반전 기회를 살리지 못했고, 손흥민의 득점은 결승골이 됐다.
손흥민으로서도 골의 아쉬움을 털어낸 경기였다.
지난 13일 반둥에 도착해 가장 늦게 대표팀에 합류한 손흥민는 15일 바레인전은 결장하고 17일 말레이시아전에 후반 출전했지만 골맛을 보지 못했다.
말레이시아에 패한 이후 말레이시아 축구팬들은 손흥민의 SNS에 "인도네시아에 지러 왔느냐"라는 조롱성 글까지 올리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하지만 손흥민은 흥분하지 않았다.
말레이시아전이 끝나고 나서는 선수들을 호출해 "창피한 경기다. 정신 차려라"는 쓴소리까지 하며 후배를 다그쳤던 손흥민은 지난 19일 마지막 훈련 때는 선수들을 모아놓고 "원팀"을 크게 외치며 선수들을 다독였다.
키르기스스탄전에 선발로 출격해 주장완장을 찬 손흥민은 승리가 필요한 순간에 결승골을 책임지며 '캡틴'의 의무를 완수했다.
손흥민은 경기가 끝나고 난 뒤 기자회견에서 "키르기스스탄이 거의 11명 모두 수비를 하면서 역습으로 나왔다"라며 "우리도 상대 전술을 잘 알고 있었다. 중요한 경기에서 이기는 것은 어렵다. 힘든 경기에서 이겨준 선수들이 고맙다"고 말했다.
'결정적인 골기회를 놓친 후배들에게 쓴소리하겠느냐'는 물음에 "골을 넣는 게 쉽지 않다. 완벽한 기회는 나도 (황)희찬이도 있었다"라며 "골 기회를 놓친 것은 당연히 반성해야 한다. 하지만 내가 이야기하지 않아도 후배들이 잘 인지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 것까지 꼬치꼬치 말할 필요는 없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16강전 상대인 이란에 대해선 "이란은 성인팀은 물론 유스팀도 강하다. 다른 팀에 대한 대비도 필요하지만 우리가 준비해야 할 것에 집중해야 한다"라며 "이제 만나는 팀들은 실력 차가 별로 없는 우승후보들이다. 선수 모두 잘 알고 있고 나도 잘 이끌겠다"고 강조했다.
horn90@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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