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자 24인 참여해 최인훈 삶과 문학 분석
(서울=연합뉴스) 임미나 기자 = 지난달 타계한 최인훈(1934∼) 작가의 삶과 문학을 집대성한 연구서가 나왔다. '최인훈- 오디세우스의 항해'(출판사 에피파니).
방민호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가 책임편집을 맡고 연구자 23인이 참여해 작가에 관한 기록을 정리하고 작품세계를 상세히 분석했다. 4년 전부터 시작한 작업으로, 연보는 작가가 생전에 직접 확인했다고 한다. 책으로 묶인 분량이 무려 1천 쪽에 달한다.
방 교수는 책머리에 작가가 세상을 뜨기 얼마 전 병상에서 '오디세우스의 항해'를 언급한 대화 내용을 전하며 작가 역시 그리스 신화의 영웅 오디세우스와 같은 삶을 살았다고 비유했다.
"그때 선생은 당신이 겪어온 이 나라, 한반도의 '근대'라는 것에 관한 '오디세우스의 항해' 이야기를 하셨다. 필자는 그것을 일종의 문학적 유언처럼, 그 자신이 평생에 걸쳐 추구해온 문학의 내용과 방향을 옹호하기 위한 최후의 변론처럼 받아들여야 했다."
방 교수는 "대한민국이라는 이 반도의 나라는 해방 이후, 아니 이 나라의 사람들이 이른바 근대의 여명에 눈 뜬 이래 한 번도 안정과 안식을 얻어 본 적이 없었다. 최인훈이라는 인물은 이 한바다 위 '난파선'에서 정박할 곳 찾아, 물결에 떠밀리면서도 방향타를 잡으려 안간힘을 써온 처참한, 고독한 항해사였다"고 말한다. 그런 의미를 담아 이 책 제목이 '오디세우스의 항해'로 정해졌다.
집필진은 작가의 방대한 문학세계를 심도 있게 분석했다. 다양한 장르의 소설과 희곡에서 작가가 그려낸 시대정신과 한국 근현대의 희로애락을 광범위하게 아우른다. 작가 연보를 비롯해 총론('시대를 측량하는 문학'), 소설론 1~2부, 희곡 및 비교문학론 등으로 나눠 구성했다.
이 중 정기인 동경외국어대학교 교수의 '20대의 혁명에서 70대의 배려까지'라는 글은 작가의 대표작 '광장' 여러 판본에 실린 서문으로 작가의식의 변모 과정을 분석한 것이다.
"7개에 이르는 서문들과 함께 나온 각각의 '광장'이라는 텍스트들은 그 자체로 50년의 역사를 보여준다. 이를 통해 '새벽' 판본에서 나타나는 서문과 본문 사이의 긴장의 의미를, 4·19혁명에 대한 작가의 적극적 참여로 보았다. 이는 정향사 판본에서는 보편적인 광장과 밀실이라는 대립으로 변화한다. 1970년대 판본의 서문들에서는 "광장/밀실"의 대립 대신에 "이데올로기/사랑"의 대립이 전면화된다. 또 "우리 친구" 이명준은 "나의 친구"로 변화된다. 80년대에 들어서서는 이제 이명준은 '타자'로서 표상되게 된다. 이러한 변화 자체가 최인훈의 '광장'들이 50여 년의 세월 속에서, 한국 사회와 함께 변화하며 운동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집필진은 작가의 문학 인생을 연 등단작이 1959년 '자유문학'에 발표한 소설 '그레이 구락부 전말기'가 아니라 1957년 '새벽'에 발표한 시 '수정'이었다고 밝히며 이 작품을 책 앞부분에 수록했다.
"나의 念願(염원)은/맑다못해, 솜털 구름 연푸르게 흐느끼는/水晶(수정) 구슬이 되고저.//게게 잠든 鑛脈(광맥)속에 소금에 저린/죽은 고등어처럼 자빠진/그런 水晶(수정)의 모습으로가 아니다.//女神(여신)의 가슴에 걸린, 빤한/水晶(수정)목걸이가 되고 싶다는 것.//뽀얀 살빛과/익은 體溫(체온)과/잔잔한 고동이 내 것이 되어//果肉(과육)에 싸인/聖(성)스러운 空(공)처럼/우람히 滅(멸)하고 싶다." ('수정' 전문)
1천8쪽. 4만5천원.
min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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