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2015년 11월 서울 도심에서 열린 민중 총궐기 집회에 참석했다가 경찰 물대포에 맞아 쓰러진 뒤 병원에서 연명치료를 받다 숨진 고(故) 백남기 농민의 죽음은 경찰의 과잉진압에 따른 것이란 판단이 또 나왔다. 올해 2월 출범한 경찰청 인권침해 사건 진상조사위원회는 21일 이런 내용의 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재발방지와 인권 증진을 위한 제도 개선을 경찰청에 권고했다. 진상조사위 결론은 지난해 10월 백 씨의 사망 원인을 안전성 검증이 안 된 살수차의 직사 살수로 인한 외인사(外因死)로 결론짓고 관련 경찰관들을 공권력 남용에 의한 치사 혐의로 기소한 검찰의 판단과 동일하다. 시위 참가자가 국가 폭력에 의해 목숨을 잃은 것은 절대 반복돼서는 안 될 일이다.
진상조사위에 따르면 백 씨가 물대포를 맞고 서울대 병원으로 옮겨졌을 당시 의료진은 수술해도 그가 회생할 가능성이 없는 것으로 판단했음이 새롭게 드러났다. 그런데도 당시 서울 혜화 경찰서장과 청와대 고용복지수석실은 서울대 병원장에게 전화를 걸어 신경외과 전문의가 수술할 수 있도록 협조를 구하는 등 진료에 개입했다. 이들의 의도대로 결국 수술이 진행됐지만, 이는 백 씨를 살리려는 의료적 동기 외에 그가 사망했을 경우의 문제도 고려했을 것이란 게 조사위 판단이다. 백 씨가 수술을 받지 않은 채 곧바로 숨졌을 경우 경찰 과실로 연결될 가능성을 우려해 경찰과 청와대가 병원 측을 압박했을 것이란 얘기다.
조사위는 경찰의 당시 집회 경비계획은 시위 대응이 아닌 청와대 경호에 맞춰졌다고 봤다. 집회 대응 방침은 대통령 비서실장의 지시에서 시작됐으며, 경찰이 차벽 설치·이동통제·살수행위 등을 한 것은 모두 헌법에 보장된 집회·시위의 자유를 침해한 행위로 판단했다. 또 백 씨가 쓰러진 현장 영상에 등장하는 '빨간 우의'와 관련, 일각에서 그가 백 씨를 폭행해 뇌사상태에 빠뜨렸다는 주장도 나왔지만 이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사고 당시 곧바로 그의 신원을 확인해 폭행 혐의를 조사했지만 별다른 혐의점을 찾지 못하자 일반교통 방해 혐의를 적용해 검찰에 송치했다. 그런데도 경찰은 백 씨가 2016년 9월 숨지자 사인을 밝히겠다며 부검 영장 신청 사유에 '빨간 우의 가격설'을 적시해 유족들과 시민사회의 반발을 샀다. 당시 경찰의 꼼수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대목이다.
경찰은 과도한 공권력 행사와 인권침해 사실에 대해 국민과 유가족에게 공식 해명과 사과를 해야 마땅하다. 당시 집회 주최자와 참가자들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 또한 취하하고 국제인권 기준에 부합하는 '집회·시위 보장을 위한 업무지침'을 신속히 마련해야 한다. 조사위가 "백남기 농민 사망 사건은 경찰이 국민의 재산과 생명을 지키는 봉사자로서 하지 말아야 할 나쁜 선례를 잘 보여준다"고 질타한 것을 뼈아프게 받아들여 인권을 존중하는 민주 경찰로 환골탈태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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