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일·재환, 납북된 형 자녀 상봉에도 끝내 조카 확신 못 해
(금강산·서울=연합뉴스) 공동취재단 이정진 기자 = "아무리 돌아가셨어도 아버지 나이도 모르느냐. 어떻게 사망했는지도 모르고."
북에 있는 조카를 만나러 이산가족상봉행사에 참여한 이재일(85), 재환 형제는
20일 첫 단체상봉에서 헤어진 형의 자녀라며 나온 북측 리경숙(53), 성호(50) 남매가 가져온 형의 사진을 보더니 동시에 "아닌 것 같아"라며 고개를 저었다.
급기야 이재환 씨는 화가 난 듯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상봉 테이블을 떠났다.
취재진이 '왜 그러시냐'고 묻자 "조카가 아닌 것 같다"며 형의 나이와 사망 경위도 모른다고 격앙된 목소리로 말했다.
이재환 씨는 서너 차례 테이블 근처를 왔다 갔다 하더니 아예 상봉장 밖으로 나가버렸다.
리경숙 씨가 테이블에 남아있는 이재일 씨에게 사진을 가리키며 "아버지가 맞습니다. 모습이 (작은아버지와) 비슷합니다"라고 했지만, 이 씨는 "형님이라고 하는데 사진을 보니 아니다. 국민학교 때 헤어졌지만 나보다 몸집이 좋았거든"이라고 고개를 갸웃했다.
이재일 씨가 가지고 있는 형의 사진도 없어 리경숙 씨가 가져온 사진과 비교할 수도 없었다.
이 씨는 "어떻게 살면서 남쪽에 있는 형제 얘기를 한마디도 안 했다는 거냐. 이남에 누가 있는지 아무 말도 안 했다고 하더라. 말이 되느냐"며 울분을 터트렸다.
그러자 이산가족 확인작업의 실무를 담당한 북측 관계자가 "호적을 찾아오겠다"며 관련 서류까지 들고 와 이들이 조카가 맞는다고 설명했지만, 이재일 씨는 여전히 수긍하지 못했다.
결국, 이재일씨만 자리를 지킨 채 첫날 단체상봉은 마무리됐다.
그러나 두 형제는 상봉을 포기하지 않고 이후 이어진 환영만찬과 21일 개별상봉, 단체상봉, 22일 작별상봉에는 모두 자리를 지켰다.
21일 오전 개별상봉 때는 이재환 씨가 리경숙 씨에게 호적과 가족앨범이 든 쇼핑가방을 건넸고, 오후 단체상봉 때는 모두 모여 즉석 기념촬영도 했다.
사흘간 이어진 상봉에 형인 이재일 씨는 조카들의 이야기를 듣고 끄덕이며 수긍하는 분위기였지만, 동생 이재환 씨는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끝까지 반신반의하는 모습이었다.
이재일·재환 형제는 1950년 6·25전쟁이 터진 직후 전시에 납북된 형 이재억 씨를 만나고자 상봉 신청을 했다. 그러나 형이 1997년 4월 사망했다고 통보받아 대신 두 명의 조카를 만나고자 금강산을 찾았지만, 개운치 않은 마음으로 돌아오게 됐다.
대한적십자사 관계자는 "과거 상봉에서 진짜 가족이 아니라고 판단한 분들은 아예 상봉에 참여하지 않고 돌아가겠다고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면서 "이분들의 경우 상봉을 계속해 개인적으로는 상봉이 이뤄진 것으로 판단한다"고 말했다.
다른 한적 관계자는 "촌수가 먼 가족들이 생전 처음 만나다 보니 반신반의하시는 경우가 종종 있다"면서 "본인이 요청할 경우 추가로 (귀환해서 가족이 맞는지) 확인작업을 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과거 상봉행사 때에도 가족이 아닌 이들이 나와 아쉽게 발길을 돌리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2005년 8월 제11차 상봉행사에서는 김종하 할아버지가 북측 사촌 동생을 만나러 방북했지만 상봉장에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사람이 나왔고, 2009년 17차 상봉행사 때는 이종학·종수 씨가 형을 만나려 했지만 다른 사람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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