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식 장기 수급불균형 문제 해소 대안 부상
"임상 진입에도 담당 부처조차 없어…법적 기반 절실"
(서울=연합뉴스) 김잔디 기자 = 돼지의 췌도를 당뇨병 환자에 이식하는 '이종 이식' 연구가 오는 11월 국내 처음으로 임상시험에 돌입할 전망이다. 오랜 기간 전임상(동물실험)에 머물렀던 연구가 드디어 사람을 대상으로 유효성과 안전성을 확인하는 단계에 진입한 것이다.
하지만 관련 규제와 법적 기반이 부족해 상용화가 늦어지고 있다는 지적은 여전하다.
'2단계 바이오이종장기개발사업단'은 23일 서울 광화문 인근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최근 국제 기준에 준하는 이종 췌도 이식 전임상시험에 성공해 이를 바탕으로 의료기관 임상시험윤리위원회(IRB)에 임상시험을 신청했다고 밝혔다.
사업단은 내달 IRB 승인을 받고, 이르면 오는 11월 실제 사람을 대상으로 이종 이식의 유효성과 안전성을 확인하는 임상시험에 돌입한다는 계획이다.
이종 이식은 인간의 조직 및 장기를 대체하기 위해 특수하게 개발된 동물의 조직 및 장기를 인간에 이식하는 기술을 일컫는다. 장기 이식 대기자 수는 매년 증가하는 데 반해 이식에 필요한 장기는 절대적으로 부족한 문제를 해소하는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박정규 사업단장(서울대 의대 교수)은 "돼지 췌도 이식은 난치병인 제1형 당뇨병을 해결하기 위한 근본적인 치료"이라며 "2015년 동물실험에 이어 지난 6월 사람에게 적용할 수 있는 수준의 면역억제요법으로 전임상시험에 성공해 임상시험을 추진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제1형 당뇨는 췌장에서 인슐린이 분비되지 않아 혈당 조절이 되지 않는 당뇨병이다. 비만하거나 과로, 스트레스, 과한 당분 섭취 등이 원인으로 생기는 성인형 당뇨(2형 당뇨)와는 다르다.
제1형 당뇨를 오래 앓으면 환자가 저혈당을 인지하지 못하는 '중증 저혈당'으로 발전한다. 운전 중 갑자기 정신을 잃거나 자다가 저혈당으로 사망하는 경우가 이러한 사례다. 근본적인 치료를 위해서는 췌도를 이식받아야 하는데, 보통 뇌사자 2명에서 4명의 췌도를 분리해야만 1명에 이식할 수 있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이에 연구팀은 돼지의 췌도를 인간에 이식하는 방안을 연구, 이미 2015년에 당뇨병 원숭이에 돼지 췌도를 이식해 최장 1천일까지 정상혈당을 유지했다는 결과를 발표했다.
이후 임상시험에 속도를 내려 했으나 이종 이식에 대한 국가 차원의 규제가 미비하고, 관리 감독할 부처가 지정되지 않아 애로가 심각했다고 사업단은 토로했다. 지난해에는 국가생명윤리위원회 심의를 거쳐 임상시험을 하고자 했으나 안건 상정조차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박 단장은 "국제이종이식학회, 세계보건기구(WHO) 등에서는 이종 췌도 이식을 사람에 적용하는 임상 등을 시행할 때 각국의 규제에 맞추라는 가이드라인을 주고 있다"며 "국제 기준에 맞춰 임상시험을 해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아예 이종 이식을 관리하는 규제 자체가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임상시험과 이후 연구를 지속해서 끌고 나가기 위해서도 정부기관 차원의 규제, 법적 기반 마련이 절실하다는 주장이다.
권복규 이화여자대학교 의과대학 교수는 "임상 등에 참여해 이종 이식을 받은 환자는 정기적인 건강검진이 필요한데, 우리나라는 건강보험과 국가 건강검진이 잘 갖춰져 있어 관리가 용이하다"며 "이를 위한 법적 기반과 담당 부처, 부서만 정해지면 될 일"이라고 주장했다.
보건복지부, 식품의약품안전처, 질병관리본부 등 보건당국이 이종 이식 연구와 관련해 미온적인 입장을 보이는 데에도 불편함을 드러냈다.
권 교수는 "여러 차례 문의했는데도 불구하고 몇 년이 지나도록 '관련 부서를 정하지 못했다'는 답변만 듣고 있다"며 "국제 기준에 맞춰 연구가 이뤄질 수 있도록 정부가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종 이식 분야에서의 국가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관련 규제를 제도화해야 한다는 게 사업단의 주장이다.
박 단장은 "이미 우리나라는 돼지 췌도 이식 분야에 있어서 세계 '탑클래스' 수준의 전임상 결과를 발표하는 등 성과를 내고 있다"며 "지금 임상시험을 제대로 실시하지 않으면 그동안 쌓아온 노하우를 모두 잃게 될 뿐 아니라 현재 세계 최고 수준인 이종 이식에 대한 선도적 지위를 상실하고 말 것"이라고 말했다.
jand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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