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피라미드 코드'
(서울=연합뉴스) 이웅 기자 = 인류 문명은 1만 전쯤 시작된 농업혁명을 발판 삼아 5천~6천년 전 본격적으로 일어났다는 게 정설로 통한다.
지역 간 편차는 있지만 상호 교류하며 후퇴 없이 문명이 발전한 결과 지금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신간 '피라미드 코드'(김영사 펴냄)는 서구 문명의 직접적인 기원을 고대 그리스로 상정하고 문명이 직선적인 발전 궤적을 따라왔다고 보는 통념에 의문을 제기한다.
책은 인류 문명이 우리의 통념과는 다른 길을 걸었을 수도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로 고대 이집트 문명을 대표하는 '기자 대피라미드'를 든다.
카이로 남서쪽 기자 평원에 자리한 이 피라미드는 이집트 피라미드 중에서도 가장 크고(밑변 230m·높이 146m) 가장 정밀하다. 기자 대피라미드는 기원전 2세기 비잔티움 수학자 필론이 '세계 7대 불가사의'로 명명한 이후 오늘날까지 수많은 사람을 매료시키는 상상력의 원천이다.
저자는 맹성렬 우석대 전기전자공학과 교수로 영국 유학 중 방문한 이집트에서 기자 피라미드를 처음 접했다. 책에는 그 후로 인류 문명의 기원을 찾는 데 천착한 저자의 20여 년에 걸친 지적인 여정이 담겼다.
기자 대피라미드는 이집트 4왕조 파라오 쿠푸의 무덤으로 기원전 2천500년경 20년에 걸쳐 건설된 것으로 추정된다.
역사 교과서에는 인류가 처음 철을 사용한 시기가 기원전 13세기경 아나톨리아와 코카서스 지역에서 제철·제련 기술이 개발되면서라고 씌어 있다. 하지만 기자 대피라미드에선 건설 당시부터 존재한 것으로 보이는 철판이 발견됐다.
그뿐만 아니라 기원전 3천300년경 것으로 추정되는 고대 이집트 유적지에서도 철판 조각이 달린 장신구가 발견됐다. 이는 인류가 본격적인 철기시대로 접어들기 2천년 전 이집트에서 이미 철이 사용됐음을 시사한다.
책에 따르면 이처럼 이집트 유물 중에는 우리가 배운 인류 문명사 도식에서 벗어난 '시대착오적 유물'이 즐비하다.
문자, 십진법 체계, 직조 기술과 의복 제작, 외과술 중심의 의학 발달, 해양용 선박 제작, 정밀한 광학 렌즈 등등. 더구나 이들 유물은 고대 이집트 문명 초창기인 1·2왕조기 이전 시대 유적에서 완벽하고 성숙한 형태로 쏟아져 나왔다.
이 때문에 고대 이집트 문명에는 '불가사의', '미스터리'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일각에선 이집트 문명이 우리가 아는 인류 문명과 동떨어진 문명에서 비롯됐다는 믿음이 생겨났으며, 외계인이 이집트 문명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서울대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영국 케임브리지대에서 공학박사 학위를 받은 과학자인 저자는 갖가지 억측과 허구적 상상력을 뛰어넘어 이집트 문명에 과학적인 설명을 제시하고자 한다.
우리는 지구 크기를 기원전 2세기 고대 그리스 천문학자 에라토스테네스가 그림자 길이를 이용해 처음 측정한 것으로 안다.
하지만 라플라스와 같은 계몽주의 시대 일부 학자는 이를 믿지 않았다. 에라토스테네스의 지구 크기 측정 아이디어를 고대 이집트인에게서 빌려온 것으로 봤다.
천문학이나 기하학, 수학 원류는 고대 이집트에서 시작됐고 고대 그리스 학자들이 이집트 고문헌에서 이를 배워 습득했다고 생각했다.
만류인력의 법칙으로 근대 물리학을 정초한 뉴턴도 그중 한 명이다. 신의 존재를 확신한 그는 유대인이 야훼로부터 얻은 지식과 지혜를 고대 이집트인들에게 전파해 피라미드를 건설할 수 있게 했다고 믿었다.
뉴턴은 신이 준 성스러운 지식 중 핵심은 지구 크기를 기준으로 정한 측정단위인 '신성한 큐빗(Sacred Cubit)'이라고 믿었으며, 이를 기자 대피라미드에서 찾고자 심혈을 기울였다.
저자는 '피라미드학'에 몰두한 학자들 견해에 동참하는 것은 아니지만, 기자 대피라미드에 지구 크기에 관한 정보가 담겼다는 확신을 갖고 연구를 이어간다.
책에는 저자가 찾아낸 기자 피라미드 암호 풀이가 상세하게 소개돼 있다.
"기자 대피라미드 정도의 규모와 정밀도로 건축을 할 만한 문명이라면 미적분학이나 위상기하학, 천문학, 측지학, 토목건축학 등 사실상 근대 문명이 개척한 수학·과학·공학의 모든 분야에 걸쳐 상당한 지식을 축적했다고 봐야 한다. 그런 수준의 문명이었기에 나는 처음부터 그들이 기자 대피라미드에 지구 크기에 관한 지식을 충분히 반영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424쪽. 1만4천800원.
abullapi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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