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비니, '불법억류' 비판에도 "나머지 148명 'EU 분산수용' 없인 못내려"
"검찰, 살비니의 하선 금지 명령 위법여부 수사 착수"
(로마=연합뉴스) 현윤경 특파원 = 이탈리아 해안경비대에 의해 지난 주 지중해에서 구조된 난민들이 이탈리아 정부의 하선 거부로 시칠리아 섬에 정박한 배에 나흘째 발이 묶여 국제적 비판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어린이들에 한해 하선이 허용됐다.
ANSA통신은 강경 난민 정책을 주도하고 있는 마테오 살비니 내무장관의 입장 변경에 따라 지난 20일 카타니아 항에 들어온 해안경비대의 선박 '디초토'에 타고 있는 미성년자 29명이 23일(현지시간) 육지에 내릴 수 있게 됐다고 보도했다.
살비니 장관은 당초 이 배에 타고 있는 난민 177명을 불법 난민이라고 규정하며, 유럽연합(EU) 차원의 분산 수용 해법이 나올 때까지 단 1명의 난민도 내릴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이에 대해, 국제 인도주의 단체뿐 아니라 이탈리아 내부에서도 난민들을 배에서 무조건 내리지 못하게 하는 것은 헌법에 어긋나는 '감금' 또는 '납치'에 해당한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국경없는의사회(MSF), 유엔난민기구(UNHCR), 세이브더칠드런 등 국제 인도주의 단체들은 이탈리아 정부가 법적 근거 없이 어린이들을 포함한 난민들을 무작정 억류함으로써, 이들의 기본권을 침해하고 있다고 반발해 왔다.
또한, 시칠리아 소년법원은 법적으로 난민 자격을 갖추고 있는 미성년 난민들을 억류하는 행위는 불법이라며 이들을 즉각 하선시킬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시칠리아 아그리젠토 검찰도 살비니의 하선 금지 명령의 위법성에 대한 조사에 착수한 것으로 전해졌다.
살비니 장관이 속한 극우정당 '동맹'과 손잡고 연정을 꾸린 반체제 정당 '오성운동' 소속의 로베르토 피코 하원의장도 "난민들을 우선 배에서 내리게 한 뒤, EU에 차차 분산 수용을 요구해도 문제가 없다"며 압박에 나섰다.
파올로 젠틸로니 전 총리는 살비니에 의해 촉발된 이번 상황에 대해 "국가적인 수치"라고 비판했고, 세르지오 마타렐라 대통령도 이번 일로 이탈리아 국가 이미지 훼손을 우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살비니 장관은 이들의 하선을 허용하라는 압력이 거세지자 일단 미성년 난민들의 하선을 허용했으나, 나머지 난민 148명은 자신의 승인 없이는 절대 내릴 수 없다고 재차 강조했다.
그는 "디초토호에 타고 있는 자들은 모두 불법 난민으로 인도적인 보호를 받을 필요가 없다"며 "이탈리아는 더는 유럽의 '난민 캠프'가 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검찰이 자신을 겨냥해 난민 불법 감금 의혹에 대한 수사를 시작한 정황에 대해서도 "이탈리아인들은 안보 강화를 원한다"며 "지난 3월 선거를 통해 나에게 권한을 위임한 국민을 위해 일하는 것일 뿐"이라며 굴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한편, EU는 교착을 풀기 위해 회원국들에 난민 분산 수용 의사를 타진하고 있으나, 긍정적인 답변을 내놓은 나라는 아직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이탈리아 출신의 EU 의회 의장인 안토니오 타이아니는 "'더블린 조약'이 개정되면 난민의 수용을 둘러싸고 이번과 같은 갈등이 더 이상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며 난민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더블린 조약의 개정이 필수적이며, 다음 EU 정상회의에서 이 문제를 다시 논의에 회부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탈리아는 난민들이 처음 도착한 유럽 국가에서 망명 절차를 진행하도록 규정한 '더블린 조약'이 지리적으로 아프리카와 가까운 남유럽 국가에 과도한 난민 부담을 안기고 있다고 지적하며 개정을 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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