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식명령 불인정, 함부로 재판 청구했다가 잇단 '된서리'

입력 2018-08-26 07:33  

약식명령 불인정, 함부로 재판 청구했다가 잇단 '된서리'
얌체운전·성추행범에 "벌금 더 내라" 판결 속출
재판 오·남용 방지 위한 법 올해 초 개정돼 형량 상향 가능



(울산=연합뉴스) 허광무 기자 = "재판 청구 괜히 했네. 그냥 벌금을 내고 말 것을…."
약식명령으로 받아든 벌금을 줄여보려고 함부로 정식재판을 청구했다가, 되려 더 많은 액수의 벌금을 받아들고 뒤늦게 후회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이는 개정된 형사소송법이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적용되면서 새롭게 생긴 현상이다.
작년까지는 재판을 청구해도 '밑져야 본전'이었지만, 올해부터는 '혹 떼려다 혹 붙일 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 얌체운전자, 절도범, 상해범, 성추행범 등이 재판에서 더 무거운 벌금형을 받아 씁쓸한 뒷맛을 봤다.
약식명령의 정식재판 청구 관련 법률이 어떻게 바뀌었고, 실제 재판에서는 어떻게 적용됐는지 짚어본다.
◇ '재판 청구 악용·남발 막는 법' 올해 개정
약식명령은 벌금, 과료, 몰수형에 처할 수 있는 비교적 경미한 사건에 한해 정식재판을 열지 않고 형벌을 정하는 처분이다. 검찰이 약식기소한 뒤 법원이 결정한 약식명령에 불복할 경우 정식재판을 청구할 수 있다.
그런데 작년까지는 정식재판을 청구해도 형사소송법상 '불이익변경 금지' 원칙에 따라 약식명령의 형보다 중한 형을 선고받지 않았다.
가령 벌금 100만원의 약식명령을 받고 정식재판을 청구해 재판에서 죄가 인정되더라도 벌금 100만원 이상의 처벌은 받지 않는 것이다. 이 때문에 그동안 피고인들이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에 무분별하게 정식재판을 청구한다는 지적이 있었다.
금태섭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법원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 약식명령을 받은 사람 가운데 정식재판을 청구한 비율은 10.1%였다.
약식명령 사건은 2008년 114만5천782건에서 2016년 68만4천72건으로 대폭 감소했지만, 정식재판을 청구하는 비율은 2016년(9.7%)을 제외하고는 2010∼2017년 상반기까지 모두 10%를 넘어섰다.
또 최근 10년간 대법원이 처리한 형사사건 중 27.3%가 약식명령에 불복한 정식재판 청구사건이었고, 이 가운데 96.9%가 기각됐다는 통계도 있다.
정식재판 청구 남용이 법원 업무를 가중하고, 이 절차가 일시적인 벌금 회피나 불법 영업 연장 수단 등으로 악용된다는 지적이 제기된 이유다.
결국, 약식명령의 정식재판 청구 때 불이익변경 금지 원칙을 배제하는 내용의 개정법이 지난해 12월 국회를 통과해 올해 초부터 각급 법원의 재판에서 본격 적용됐다.
바뀐 법은 벌금형을 징역형 등으로 바꾸는 '형종 변경'은 금지하되, 벌금형 범위에서는 형량을 더 무겁게 하도록 정하고 있다.



◇ "선처 안 돼"…얌체주차·성추행범에 벌금 증액 판결 잇따라
정식재판에서 벌금액을 늘리는 판결이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가 전국 법원의 판결문 검색으로 집계한 결과 1월부터 8월 중순까지 총 30여 건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전체 정식재판 청구 건수를 고려하면 아직 미미한 수준이지만, 뚜렷한 변화임이 분명하다.
울산에서는 불법주차 단속을 피하려고 승용차 번호판을 가린 운전자 A씨가 벌금 70만원의 약식명령에 불복해 재판을 청구했다가, 결국 30만원 증액된 100만원의 벌금고지서를 받게 됐다.
A씨는 올해 2월 1일 낮 12시께 한 도로변에 주차하면서 단속 카메라를 피하려고 번호판을 화분으로 가리고, 트렁크 문을 열어놓았다.
주차단속원이 번호판을 가린 화분을 치웠지만, A씨는 화분을 재차 옮겨와 번호판을 다시 가렸다.
재판부는 "단속을 피하려고 번호판을 가린 의도가 저열하다"는 등의 이유로 더 무거운 벌금형을 선고했다.
회사 직원을 강제추행한 사업주 B씨는 벌금이 애초 500만원에서 700만원으로 200만원이나 늘었다.
B씨는 2014년 6월부터 약 1년 동안 여직원에게 전화해 성관계를 요구하거나 성적 수치심을 일으키는 말을 했다. 급기야 도로변 벤치에서 직원의 손을 자신의 속옷에 넣거나, 회사 사무실에서 어깨를 끌어안는 등 물리적 추행까지 했다.
재판부는 "사회적 약자인 피해자가 반항할 수 없다는 점을 이용한 범행이어서 죄질이 나쁘다"고 엄벌 이유를 밝혔다.
벌금액을 2배나 늘린 판결도 있다.
수원지법은 지난해 10월 경기도의 한 마트에서 3만7천원짜리 LED 램프를 훔친 절도범 C씨에게 벌금 100만원을 선고했다.
C씨는 애초 벌금 50만원의 약식명령에 불복해 재판을 청구했으나, 갑절의 돈을 물게 됐다.
재판부는 "절도죄를 처벌받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범행했고, 생계를 위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면서 "계속 선처하면 절도의 습벽이 개선될 수 없고, 제반 사정을 종합하면 약식명령의 벌금액은 너무 가볍다고 판단된다"고 설명했다.
26일 울산지법 관계자는 "정식재판 청구 오남용을 방지하고자 마련된 법이 실제 재판에서 유용하게 적용되고 있다"면서 "피고인들은 더 무거운 벌금형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을 알고 신중하게 재판을 청구해야 한다"고 밝혔다.
hkm@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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