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안게임] 넷 합쳐 165오버파…'양싸부'와 우즈베크 골프팀의 빛나는 도전

입력 2018-08-26 15:09  

[아시안게임] 넷 합쳐 165오버파…'양싸부'와 우즈베크 골프팀의 빛나는 도전
'이미향 스승' 양찬국, 골프 불모지 우즈베크 선수단 이끌고 AG 첫 출전


(자카르타=연합뉴스) 고미혜 기자 = "거기서 왜 그렇게 쳤냐, 짜샤"
"아 그래도 싸부님 덕분에 이 정도 했지 아니었으면 다 나무 맞혔을 거예요."
웃으며 구수하게 한국말을 주고받는 선수와 감독의 얼굴은 모두 한국인이었지만 가슴에는 태극기가 아닌 우즈베키스탄 국기가 달려 있었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골프 종목에 우즈베키스탄에선 처음으로 출전한 고려인 골프선수들과 이들을 이끄는 양찬국(69) 대표팀 감독이다.
대회 골프 마지막 라운드가 열린 26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의 폰독 인다 골프코스에서 만난 양 감독은 "우즈베크에서는 5∼6언더파 치는 애들인데 낯선 골프장에 당황했다"고 선수들을 대신해 변명 아닌 변명을 했다.
남자팀만 출전한 우즈베크 선수들의 최종 스코어는 가장 잘 친 선수가 34오버파. 나머지 세 선수는 35오버파, 36오버파, 60오버파로 네 선수 합치면 무려 165오버파다.
메달권에는 턱없이 못 미치고, 선수들이 자국에서 내던 점수와도 차이가 크지만 골프 불모지의 우즈베크 역사상 처음 아시안게임 골프 무대를 밟은 선수들의 표정은 그리 어둡지 않았다.
우즈베크는 나라 전체에 골프장이 하나밖에 없는 불모지 중의 불모지다.
유일한 골프장인 타슈켄트 레이크사이드 골프장은 현지 한국기업 등이 설립과 운영에 참여한 곳이다.
주 고객도 기업 주재원 등을 비롯한 한인인데 그곳에서 캐디로 일하던 고려인들 중에 골프에 소질을 보인 이들이 선수가 됐다.
그 중 하나인 고려인 3세 카나트베크 쿠르바날리예프(24)가 몇 년 전 코리안투어 대회에 초청 선수로 왔다가 양 감독과 인연을 맺게 됐다.

'양 싸부'로 더 유명한 양 감독은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에서 뛰는 이미향을 비롯해 전 세계 57개국에 5천580명의 제자를 둔 유명한 레슨프로다.
제자 중 한 명이 양 감독에게 쿠르바날리예프 좀 봐달라고 해서 만났다가 우즈베크 골프와의 인연이 깊어지게 됐다.
"이 녀석이 힘은 좋아 300야드씩 치는데 기초가 완전 엉망인 거지. 다 가르치고 신발도 사다 주고, 모자도 갖다 주고 그랬죠."
우즈베키스탄에서는 지난해 고려인 주도로 골프협회가 만들어졌는데 양 감독이 명예회장과 대표팀 감독을 맡아 첫 아시안게임 출전을 이뤄냈다.
24살부터 42살까지인 대표팀 선수 4명 중 3명은 100% 고려인, 1명은 혼혈이지만 모두 한국말이 유창하다.
"우리보다 한국 풍속을 더 잘 지켜요. 언제 한국에 데리고 온 적이 있었는데 단옷날이라 성묘 가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우즈베크올림픽위원회 입장에선 골프가 한참 낯선 종목인 탓에 준비한 유니폼도 골프에 적합하지 않았고 현지 도착 일정도 빠듯했다. 사전 코스 적응은 꿈도 못 꿨다.
하는 수 없이 양 감독이 오는 길에 한국에 들러 유니폼도 직접 공수했지만 대회 이틀 전에야 도착해 연습할 새도 없던 선수들은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타슈켄트 골프장에선 그린에서 퍼트하고 나면 사슴이 뛰어나오나 봐야할 정도로 그린 속도가 느린데 애들이 여기서 그린이 너무 빨라 패닉이 오더라고요. 그래도 라운드가 지나면서 차차 나아졌죠."
메달권엔 못 미치지만 메달 못지않은 성과도 냈다.
우리로 치면 일본만큼 라이벌 관계인 카자흐스탄을 단체전에서 앞선 것이다.
골프장도 10개나 있고 아시안게임 출전도 처음이 아닌 카자흐스탄에 3라운드까지 9타가 뒤졌으나 마지막 라운드에서 극적으로 역전했다.
오기 전에 우즈베크 체육장관으로부터 "카자흐스탄만 이겨달라"는 당부를 들었다는 양 감독은 마지막 리더보드를 보고 "내 돈으로 선수들에게 상금을 줘야겠다"며 활짝 웃었다.
아시안게임에서 귀중한 경험을 쌓은 우즈베크 골프팀의 다음 목표는 2020 도쿄 올림픽이다.
세계랭킹 기준으로는 출전권을 얻기 힘들지만 개발도상국 초청을 노린다는 양 감독은 "남은 기간 일본 대회에 선수를 파견하면서 초청 요건을 갖출 것"이라고 말했다.
34오버파로 대회를 마친 쿠르바날리예프는 "첫 출전이고 현지 연습도 부족했지만 이 정도도 잘한 것 같다. 날마다 타수를 줄일 수 있었던 건 좋은 경험이었다"며 "열심히 해서 도쿄 올림픽에도 꼭 나가고 싶다"고 말했다.
mihye@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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