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서 기타무라-김성혜 비밀회담…北, 구속 일본인 이례적 조기석방
납치문제 놓고 '시각차'…日선 "北, 일본을 대화상대로 안본다" 시각도
(도쿄=연합뉴스) 김병규 특파원 = 북한이 구속했던 일본인을 조기에 석방한 데 이어 북한과 일본이 지난달 비밀리에 회담을 연 사실이 드러나면서 양측간 대화의 진전 가능성에 대해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핵심 쟁점인 일본인 납치 문제와 관련해 양측의 시각차가 여전히 커서 본격적인 대화로 이어지는데는 적잖은 시일이 소요될 것이라는 비관론도 만만치 않다.
미국의 워싱턴포스트(WP)는 28일(현지시간) 일본의 기타무라 시게루(北村滋) 내각 정보관, 북한의 김성혜 통일전선부 통일전선 책략실장이 지난달 미국에 알리지 않고 베트남에서 비밀회담을 했다고 보도했다.
일본 정부가 그동안 북한과 다양한 루트를 통해 대화를 모색하고 있다고 밝혀왔지만, 이처럼 회담의 정황이 구체적인 장소, 참석자와 함께 밝혀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기타무라 정보관은 일본 정부 내각정보조사실의 수장이며, 김성혜 실장은 지난 6월 북미정상회담 때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동행했었다.
두 인사 모두 비중이 작지 않은 인물이어서 대화를 위한 양측간 접촉이 꽤 무르익은 단계에 접어든 것 아니냐는 기대를 갖게 한다.
이런 소식은 북한이 구속했다가 석방한 일본인 스기모토 도모유키(杉本倫孝·39) 씨가 28일 일본에 돌아온 직후 나왔다.
스기모토 씨가 석방된 것은 구속된 지 보름여만으로 과거 사례에 비해 석방까지 걸린 시간이 이례으로 짧다는 점에서 북한이 일본과의 대화에 의욕을 내비친 것 아니냐는 기대가 나온다.
1999년 간첩 혐의로 북한에 구금됐던 일본인 기자는 2년, 2003년 마약밀수 혐의로 구속됐던 일본인 남성은 5년 3개월이 각각 지난 뒤에야 석방됐다.
북한이 스기모토 씨를 석방하면서 '인도주의 원칙'을 강조한 것도 양국 관계의 긍정적인 기대를 뒷받침한다. 일본이 스기모토 씨의 석방을 요청한 것에 북한이 응답한 만큼 최근들어 양측이 협상을 통해 성과물을 만들어낸 첫 사례라는 점도 주목된다.
하지만 납치문제 해결에 전력하는 일본에 대해 북한이 '납치 문제는 해결이 끝난 일'이라는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북일 대화의 진전을 논하는 것은 시기상조라는 부정적인 전망도 만만치 않다.
납치문제의 진전은 한동안 북한에 대해 '압력 강화' 발언을 반복해온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정권이 대화로 노선을 전환하기 위한 명분이자 양국간 대화의 선결조건이지만, 북한은 이 문제가 협상을 위한 카드가 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북한과 일본 정부 관계자들이 베트남에서 회담을 하긴 했지만, 북한이 이후에도 일본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낮추지 않고 있다는 것은 대화 진전에 난항을 겪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지난 27일만 해도 북한은 일본이 영국과 함께 북한 선박의 환적(換積)에 대한 공동 감시를 하겠다고 한 것과 관련해 조선중앙통신 논평을 통해 "일본은 평화파괴 세력의 본색을 여지없이 드러내고 있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었다.
북한 노동당 외곽기구인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아태평화위)는 23일 "일본이 과거청산을 하지 않으면 미래로 나갈 수 없다는 것을 똑똑히 알아야 한다"고 일갈했으며, 이보다 앞선 5일에는 노동당 외곽기구 명의의 백서에서 일본의 플루토늄 보유에 대해 "반(反)인륜적, 반평화적 범죄'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일본 내에서는 일본인 조기 석방과 관련해서도 북한이 일본과의 대화 카드를 버리기 위한 것이라는 부정적인 분석도 나온다.
아사히신문은 전날 북한의 일본인 석방에 대해 "일본인 남성을 구속하는 외교 카드가 불필요할 정도로 북한은 지금 일본을 대화 상대로 보지 않고 있다"고 해석하는 일본 정부 관계자의 말을 전하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북한이 아베 총리 집권 하에서는 굳이 일본과 진전된 대화를 하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까지 나온다. 비핵화, 종전선언을 둘러싼 미국과의 협상에 집중하고 있는 북한이 현재로서는 일본과의 대화에 흥미를 갖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북일 관계에 정통한 한 소식통은 "북한 지도부 사이에서는 북한에 대한 강경 발언을 쏟아낸 아베 총리가 총리직에 있는 동안 굳이 북일 대화를 할 필요가 없다는 의견이 많다"고 말했다.
bkk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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