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혼자돼 친척 집 전전한 레슬링 꿈나무…커서는 도둑질로 생계
(광주=연합뉴스) 박철홍 기자 = 어스름한 저녁, 어두컴컴한 그림자가 상가 담을 넘었다.
그림자는 낑낑대며 조그마하게 열린 창고 창문 안으로 몸을 구겨 넣듯 들어가면서 사라졌다.
고깃집인 식당에 들어간 도둑은 안에 있던 잔돈을 알뜰히 주머니에 챙겨 넣고, 주방 냉장고 문을 열었다.
냉장고 안에서 양념 잘 밴 돼지갈비를 꺼낸 도둑은 뜨겁게 불판을 달구고, '찌직' 소리를 낼 만큼 가득 고기를 올려 배를 채웠다.
식사를 마치고는 설거지까지 깔끔하게 마치고 다시 들어온 좁은 문으로 바람처럼 사라졌다.
이 도둑은 며칠 뒤에는 이탈리아 음식점에 몰래 들어갔다.
뒤져도 마땅히 먹을게 나오지 않자 떠먹는 요구르트만 2개 들이키듯 먹고 나왔다.
훔치는 것보다 먹는 것에 관심이 있어 보이는 도둑은 이모(23)씨였다.
이씨는 어린 시절 어머니를 여의고, 아버지는 얼굴도 모른 채 자랐다.
할머니 손에서 자랐고, 할머니가 돌아가시자 다시 큰아버지 집에서 학교를 다녔다.
그는 한때는 레슬링 꿈나무였다.
금메달리스트 출신 감독 밑에서 실력을 갈고닦았지만, 소질이 없어서인지 열심히 하지 않아서인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는 갈 곳 없는 맨 몸뚱어리 하나만 남았다.
장성해서 친척 집을 전전할 수 없어 피시방과 찜질방을 전전하며 살던 이씨는 영업이 끝난 상가를 몰래 들어가 생활비를 마련하며 살았다.
몰래 들어가 먹고, 쉬고, 훔치고, 낮에는 다시 피시방으로 기어들어가듯 들어가 훔친 돈으로 게임에 열중했다.
잡히기도 수없이 잡혔다.
23세라는 비교적 어린 나이였지만 그는 절도 등 전과가 10범에 달했고, 최근에도 1년 2월의 실형을 살고 올해 4월에 출소했다.
출소 후 아는 형 집에 한 달여 간 얹혀살며 형의 손에 이끌러 일을 해보려고도 했으나, 그는 나쁘지만 편한 삶을 택했다.
형 집에서 나와 미용실에 들어가 샴푸를 훔쳐 화장실에서 씻고, 배가 고프면 라면을 사 들고 식당에 몰래 들어가 끓여 먹고 나왔다.
사람들이 없는 거리의 빈 상점과 식당은 그에게는 집이었다.
이씨를 검거한 경찰은 단번에 그를 알아보고는 과거 에피소드를 떠올렸다.
식당을 침입해 붙잡힌 그는 조사를 받다 중국 배달음식점에 밥을 시켜주겠다는 형사의 "뭐 먹을래?"라는 물음에 "제가 그 식당도 몰래 들어가 봤는데, 바퀴벌레 득실득실하고 지저분해요. 거기서 시켜먹지 마세요"라고 답했다.
형사들은 이씨의 이 한마디에 단골집을 바꿨다.
결국, 이씨는 교도소에서 출소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누범 기간에 또다시 범죄를 저질러 구속될 위기에 처했다.
이제는 경찰서 유치장을 집 삼아 누워있는 이씨를 보며 경찰들은 "불쌍한 인생"이라며 안타까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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