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조부터 전통문화 계승…부친 이어 보유자 인정 예고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금박은 길상 문양을 장식하는 작업입니다. 옷에 좋은 기운을 담는다고 할까요. 금박은 금가루를 풀에 섞어 바르는 것보다 색상이 훨씬 선명하고 광채가 납니다."
조선 철종(재위 1849∼1863) 때 금박을 시작한 고조부터 5대째 금박 작업을 하는 김기호(50) 씨는 29일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금박장이 지닌 무형문화재 가치에 대해 이같이 설명했다.
금박장은 직물 위에 얇은 금박으로 글씨나 문양을 찍어내는 장인 혹은 기술을 뜻한다. 먼저 문양판을 조각한 뒤 풀을 발라 찍고, 풀이 마르기 전에 금박지를 입혀 완성한다.
부친 김덕환(83) 금박장 보유자에 이어 같은 종목 보유자로 인정 예고된 김씨는 "아버지가 작업실을 종로구 공평동에서 마포로 옮긴 뒤에 태어났다"며 "제가 쓰던 방이 아버지 작업실이어서 어깨너머로 금박을 배웠다"고 털어놨다.
그는 가문이 대를 이어 금박과 인연을 맺은 데 대해 "고조가 왕실 재정을 관리한 내수사(內需司)에 근무하셨다"며 "당시에는 중국에서 짠 금실을 많이 수입했는데, 고조가 조정에 금박을 하자고 제안했다고 한다"고 말했다.
2대째인 증조 김원순은 명성황후국장도감의궤에 장인으로 기록됐고, 자연스럽게 금박이 가업이 됐다.
김씨는 "우리나라 전통문화 중에 이렇게 대를 이어가는 사례는 많지 않을 것"이라며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왕실문화인 금박은 민간문화가 됐다"고 강조했다.
김씨는 전통문화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면서 금박 수요도 감소했다고 아쉬워했다.
그는 "민어부레 풀을 많이 썼는데, 민어를 찾는 식당이 증가하면서 부레를 구하기 힘들어졌다"며 "금박에 쓰는 금은 보통 진짜 금인데, 황동을 사용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시대가 바뀌면서 김씨도 다양한 방법으로 새로운 시도를 한다. 전통 의복 외에 액자나 넥타이, 함에도 금박을 한다. 또 한자뿐만 아니라 '꿈'이나 '행복' 같은 한글 문양을 만들기도 한다.
무형문화재 토양이 척박한 상황에서 6대째 금박장도 나올까.
"(자식이) 가끔 일을 도와주기는 하는데, 대학생이라 본격적으로 하지는 않아요. 그저 매일 하는 일, 앞으로도 열심히 하려고 합니다. 많은 국민이 전통문화에 조금 더 관심을 기울이면 좋겠습니다."
psh5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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