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의사가 죽음의 발끝에서 발견한 찬란한 희망

입력 2018-08-30 11:51  

장의사가 죽음의 발끝에서 발견한 찬란한 희망
신간 '길들여지지 않는 슬픔에 대하여'



(서울=연합뉴스) 박수윤 기자 = 현대사회에서 죽음은 불편하고 혐오스러우며 쉬쉬해야 할 문제다.
사람들은 사랑하는 사람이 사망했을 때 의료 기관과 전문적인 장의 시설에 모든 권한을 맡긴다. 의사는 죽음을 선고할 권한을, 장의사는 죽음을 처리하는 권한을 갖는 셈이다. 장의사는 망자의 시신을 가져다가 염을 하고, 옷을 입히고, 관에 넣고 '짠'하고 마법처럼 사라지게 한다.
'길들여지지 않는 슬픔에 대하여'(살림 펴냄)는 매일 죽음을 경험하는 장의사 칼렙 와일드가 죽음에 대한 공포와 오해를 바로잡아주는 에세이다.
저자는 뼛속까지 장의사의 피를 타고났다. 아버지는 와일드 집안의 5대째 장의사였고, 어머니는 브라운 집안에서 4대째 가업을 이었다.
그럼에도 저자는 죽음의 공포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여느 청소년과 달리 부고 전화 받기, 영구차 세차, 장례 치르기, 영안실 청소 등으로 여름방학을 보냈어도 죽음은 결코 익숙해질 수 없는 일이었다. 가업을 이어받은 뒤에는 깊은 우울증에 시달렸다.
그러나 저자는 장례절차를 거듭하며 죽음이 주는 아름다운 것들을 발견하기 시작한다. 죽음은 삶을 반증하며, 누군가 살아있었고 그 삶이 가치 있었음을 알려준다. 죽음은 우리에게 사랑하는 사람의 소중함을 깨닫게 한다. 누군가에게 죽음은 지옥이 아니라 안식일지도 모른다.
마약중독으로 숨진 20대 젊은이의 장례식에서 망자의 어머니는 이렇게 고백한다. "근 10년 동안 맘 편히 잠을 이룬 적이 없었어요. 죽음보다 더한 것도 있죠. 마약에 중독된 아이가 어떻게 지낼지 걱정하며 매일 밤을 지새웠어요. 이제 우리 아이가 편히 쉬게 되었고, 나 역시 마음을 놓게 되었어요."
저자는 슬픔을 정리해야 하는 감정이 아니라고 말한다. 슬픔은 고인을 충분히 사랑했다는 증거이자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죽음을 회피하지 않고 오히려 능동적으로 기억해 고인과의 이별을 받아들이는 것이 가장 안전하게 일상으로 돌아오는 방법이다.
여덟 살 난 아이를 암으로 잃은 어머니는 상실의 아픔을 온몸으로 받아들였다. 아이 어머니는 장의사가 올 때까지 시신을 품에 꼭 안고 있었다. 아이는 어머니 품 안에서 숨이 끊어졌다고 했다. 장의사는 시신을 정성껏 염했다. 생의 절반을 암과 싸우느라 다섯 살배기처럼 말랐던 몸집은 방부용액 덕분에 건강한 아이처럼 커졌다. 아이의 어머니는 "아이를 아름답게 만들어줘 고맙다"며 한참을 흐느꼈다.
책은 원제를 직역하면 '어느 장의사의 고백'(Confessions of a funeral director)이다. 한때 선교사가 되기를 꿈꾼 저자는 천국이나 사후 세계만 중요하게 생각해선 안 된다고도 강조한다. 그러다 보면 이곳에서의 가치나 죽음의 가치를 축소하기 쉽다. 죽음은 지금 이곳에서의 삶이 얼마나 소중한지 보여주고, 감사하게 만든다.
박준형 옮김. 256쪽. 1만3천원.
clap@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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