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배상청구권이 소멸시효보다 중요…손해의 공평한 분담에도 위배"
(서울=연합뉴스) 임순현 기자 = 과거사 사건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피해자의 국가배상청구권에 민법상 소멸시효제도를 적용하는 것은 헌법에 어긋난다는 결정이 나왔다.
'중대한 인권침해 및 조작의혹사건'이나 '민간인 집단희생사건' 등 과거사 피해자의 국가배상청구권은 일반적인 국가배상청구권과 근본적으로 달라 특별히 보호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헌법재판소는 30일 이모씨 등이 소멸시효제도를 규정한 민법 166조 1항 등이 과거사 피해자의 국가배상청구권에도 적용되는 것은 위헌이라면 낸 헌법소원사건 등 9건에 대해 재판관 6대 3 의견으로 위헌 결정했다.
민법은 권리를 행사할 수 있을 때부터 소멸시효가 시작된다고 규정하고 있고, 과거사정리법 등은 과거사 피해자의 국가배상청구권도 민법상 소멸시효제도가 적용되도록 한다.
이에 대해 헌재는 "기본권을 보장할 의무를 지는 국가가 오히려 국민에 대해 불법행위를 저지른 경우 이를 사후적으로 회복·구제하기 위해 마련된 과거사 피해자의 국가배상청구권을 희생할 정도로 국가배상청구권의 시효소멸을 통한 법적 안정성 요청이 중요하다고 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어 "국가가 공무원의 조직적 관여를 통해 불법적으로 민간인을 집단 희생시키거나 장기간 불법구금·고문 등에 의한 허위 자백으로 유죄판결을 내리고 사후에도 조작·은폐를 통해 진상규명을 방해했는데도 그 불법행위의 시점을 소멸시효 기산점으로 삼는 것은 손해의 공평한 분담이라는 손해배상제도의 지도원리에도 부합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씨는 1985년 경찰에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불법체포된 뒤 고문 등 가혹행위로 허위 자백을 해 법원에서 징역 7년을 선고받고 복역했다. 이후 2007년 법원에 재심을 청구해 무죄 판결을 받은 이씨는 2009년 9월 형사보상 결정을 받은 후 이듬해 5월 국가배상청구소송을 냈다.
1·2심은 신의성실 원칙에 따라 국가는 과거사 피해자의 국가배상 청구에 대해 소멸시효를 주장할 수 없다며 이씨의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국가가 소멸시효가 완성됐음을 전제로 상고하자 이씨가 상고심 재판 중 헌재에 헌법소원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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