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적 극단주의는 부패권력이 만든다

입력 2018-08-31 07:00   수정 2018-08-31 14:36

폭력적 극단주의는 부패권력이 만든다
신간 '부패권력은 어떻게 국가를 파괴하는가'

(서울=연합뉴스) 이웅 기자 = 500여년 전 자비로움보다는 가혹한 행동으로 두려움을 사는 것이 국가를 통치하는 군주에게 유리하다고 설파한 니콜로 마키아벨리.
철저한 현실주의자였던 마키아벨리조차 통치자로서 권력을 유지하고 싶다면 절대 해선 안 된다고 강력히 경고한 것이 있다. 바로 부패다.
'군주론'에는 국민의 소유물을 약탈하는 행위야말로 군주가 증오를 사는 최악의 방법이라고 적혀있다. 통치자에 대한 증오는 음모를 낳고 음모는 권력을 무너뜨린다.
신간 '부패권력은 어떻게 국가를 파괴하는가'(원제 Thieves of State·이와우 펴냄)는 아프가니스탄을 비롯해 알제리, 이집트, 튀니지, 우즈베키스탄, 나이지리아 등 혁명이나 내전을 겪은 이슬람 국가들에 만연한 권력의 부패상과 확산하는 종교적 극단주의의 상관관계를 분석한다.



저자는 미국 공영방송 내셔널퍼블릭라디오(NPR) 특파원으로 북아프리카와 발칸반도를 담당했던 세라 체이스. 하버드대학교에서 중세 이슬람 역사 연구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2001년 말 탈레반 정권을 축출한 미군과 함께 아프가니스탄 남부 도시 칸다하르에 입성한 저자는, 기자직을 그만두고 전쟁으로 폐허가 된 아프가니스탄 재건을 돕는 일에 뛰어든다.
이후 10년 이상 현지에서 머물며 보고 듣고 겪은 경험과 그로부터 얻은 통찰을 바탕으로 책을 썼다.
9.11 테러를 일으킨 알카에다와 오사마 빈 라덴의 배후로 지목된 탈레반이 미군의 공격을 받고 권좌에서 물러난 뒤 아프가니스탄은 친미파 지도자인 하미드 카르자이가 새 대통령이 됐다.
저자는 칸다하르에서의 첫 2년여 동안 카르자이 대통령의 형이자 볼티모어 기업가인 카이엄을 위해 일하게 되고, 그러면서 마치 제도로 굳어진 듯한 부패를 직접 목격한다.
칸다하르 시민들은 전쟁 후에도 난무하는 폭력을 피해 도시 외곽으로 이주했는데, 때마침 공유지였던 그곳이 주택단지로 개발되면서 부동산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이때 국가 소유의 공유지를 헐값에 매입한 뒤 집을 지어 비싼 가격에 팔아 엄청난 차익을 남긴 이들이 바로 카이엄을 비롯한 대통령의 형제들이었다.
책은 이슬람 근본주의 정책으로 악명을 떨친 탈레반, 나이지리아의 보코하람, 알카에다와 같은 극단주의 종교 세력이 득세해 정부를 전복하거나 위협한 나라들은 하나 같이 극심한 부패에 시달렸음을 확인시킨다.
2011년 '아랍의 봄' 당시 중동과 북아프리카를 휩쓴 반정부 시위와 혁명의 물결도 본질은 부패정치 관행에 반발한 시민들의 대규모 봉기였다고 지적한다.
아울러 아프가니스탄을 비롯해 친미 정권이 들어선 나라들에서 지배층이 저지르는 부패를 방조하고 있는 미국의 대외 정책을 정면으로 비판한다.
어쩔 수 없는 부패에 찌든 절망적 상황은 사람들을 극단으로 몰고 가게 된다.
"그사이 알카에다와 같은 반군들은 몸을 낮춘 채 또다시 재기를 꿈꾸고 있다. 과격 단체들은 이라크에서 그랬던 것처럼 시민들의 해소되지 않은 울분을 악용할 것이었다. 청교도적인 행동 강령을 강조하며, 방탕한 소수가 아닌 사회 전체의 이익을 도모하는 양심적 정부를 얻으려면 자신들이 유일한 대안일 뿐이라고 주장할 것이다. 공공 부문의 도덕성을 회복할 유일한 방법으로 종교적 정화를 강조할 것이다."
실제로 저자는 칸다하르에서 탈레반에 가입했거나 동조하는 많은 아프간 사람이 민족적 편견이나 종교적 신념, 외세에 대한 반감, 원한이 아니라 돌이킬 수 없이 부패한 정부 때문에 탈레반을 선택했다는 많은 증언을 들을 수 있었다고 한다.
저자는 부패가 종교적 극단주의와 연결돼 있고 폭력이 자라게 하는 토양이라고 강조한다.
또한 중동의 부패정치에 대한 서구의 지원이 이슬람 전사들로 하여금 '축복받은 공격'을 자행하도록 만드는 진정한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해외에서 극단주의적 혹은 혁명적 폭력 사태가 일어날 가능성을 줄이길 원한다면, 긴급 사태에 투입할 군사력을 축소시키고 싶다면, 그래서 어마어마한 재정 손실과 인명 피해 그리고 성공 여부의 불확실성 등을 피하고 싶다면, 서방 국가들은 사전에 기꺼이 정치적 위험을 감수해야만 한다. 국민들의 마땅한 울분을 해소시켜줄 수 있는 도구를 마련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이를 위해 지금까지 군대를 파견할 때 보여주었던 것과 같은 용기를 내야 한다."
이정민 옮김. 314쪽. 1만6천원.
abullapia@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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