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비투자 IMF이후 최장↓·경제심리 '꽁꽁'…"경기하강 우려↑"

입력 2018-08-31 13:53  

설비투자 IMF이후 최장↓·경제심리 '꽁꽁'…"경기하강 우려↑"

(세종=연합뉴스) 이 율 이세원 기자 = 설비투자가 외환위기 이후 가장 긴 기간인 다섯달 연속 마이너스 행진을 하면서 경기하강이 본격화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고조되고 있다.



정부는 지난달 산업생산이 다시 증가세로 돌아선 데다 소비도 2개월 연속 늘고 있어 실물지표들이 경기를 뒷받침해주고 있다는 판단이다. 예상한 성장경로를 벗어나지 않고 있다고 본 것이다.
하지만 경제주체들의 심리는 꽁꽁 얼어붙었다. 소비심리가 17개월 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지고 기업 체감경기지수는 18개월 만에 최저를 기록하는 등 체감경기가 갈수록 악화하고 있다. 부진을 거듭하는 고용지표는 경제 심리 악화를 부추기고 있다.
여기에 경기 선행지수와 동행지수가 동반 하락을 이어가면서 경제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경기하강이 본격화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 투자 감소세·경기지표 하락 장기화…정부 "전달보다는 개선"
31일 통계청이 발표한 산업활동동향을 보면, 7월 설비투자 지수는 전달보다 0.6% 하락했다.
주요 반도체 업체의 장비 증설이 마무리 단계에 들어가면서 특수산업용 기계 등 기계류(-3.9%)에서 급락한 게 지수를 끌어내렸다.
설비투자는 올해 3월부터 5개월 연속 감소하면서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이후 20년 만에 최장 감소행진을 했다.
앞서 설비투자는 1997년 9월∼1998년 6월까지 10개월 연속 감소를 기록했었던 게 마지막 최장감소 기록이다.
앞으로의 경기를 예측하는 지표인 선행지수 순환변동치와 현재의 경기 상황을 보여주는 동행지수 순환변동치의 동반하락세도 이어졌다.
동행지수 순환변동치는 올해 1∼3월 보합세를 기록한 이후 4개월 연속 떨어졌다. 선행지수 순환변동치는 올해 2∼4월 하락한 이후 5월 보합세를 기록했다가 다시 6∼7월 하락세를 이어갔다.
소비심리와 기업 체감경기는 동반 악화해 경제주체들의 심리가 급격히 얼어붙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8월 기업들이 인식하는 경기 상황을 보여주는 지표인 업황 기업경기실사지수(BSI)는 74로 작년 2월(74) 이후 18개월 만에 최저를 기록했다.
이달 소비자의 체감경기를 보여주는 소비자심리지수(CCSI)는 99.2로 작년 3월(96.3) 이후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반면에, 지난달 전산업생산지수는 전달보다 0.5% 증가해 다시 증가세로 돌아섰고, 소매판매도 2개월 연속 증가했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투자 쪽은 계속 조정받고 있지만, 산업생산이나 소비가 지난달보다 개선되면서 하반기 예상치인 2.9%의 성장경로를 이어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다만 대외리스크 등으로 체감경기는 안 좋아 실물지표와 심리지표 간 간극이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어운선 통계청 산업동향과장은 7월 산업활동동향에 대해 "전체생산과 소비가 증가했고, 투자는 부진이 지속하고 있지만, 감소 폭이 축소돼 부진 정도가 다소 완화됐다고 본다"면서 "전달보다는 개선됐다"고 평가했다.

◇ 전문가 "경기 하강국면 확실하다"…정부 "경기판단 바꿀 수준 아냐"
전문가들은 경기가 이미 하강국면에 본격 진입한 상태라며 정부의 경기판단과 시각차가 너무 커져 제대로 된 정책적 대응이 어려워지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반면에 정부는 아직 경기판단을 바꿀 정도는 아니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하강국면이라는 것이 거의 확연하다. 투자가 감소하고 동행지수 순환변동치나 선행지수 순환변동치가 나빠지고 있다. 생산이 약간 늘기는 했으나 기본적으로 하강국면이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이 하강국면이 아니면 금리를 동결할 이유가 없다. 하강국면이라서 무리가 되므로 금리를 못 올리는 것이다. 경기가 하강하지 않는다면 정부가 왜 추경 예산을 편성했겠느냐"고 반문했다.
성 교수는 정부도 하강국면을 의식한 정책을 어느 정도 집행하고 있으나 9개월째 경기가 회복세라는 판단(그린북)을 내놓고 있는 것에 관해 "실제로는 경기가 하강하는데 그렇지 않다고 주장하면 제대로 된 정책적 대응을 하기 어렵고 정책에 대한 신뢰가 줄어든다"고 지적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민간에서는 지난해 상반기부터 경기가 고꾸라졌다는 판단인데, 정부는 아직도 국면 전환이 이르다고 판단하고 있다니 시각차가 너무 난다"면서 "수출산업은 경쟁력이 떨어지고, 내수산업은 과당경쟁을 하고 있어 전방위적으로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경기 변동의 특성이 과거와 달라진 측면에 주목하는 이들도 있다.
이근태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과거와 비교하면 최근 경기는 변동성 자체가 크지 않다. 세계 경제가 몇 년째 3%대 성장을 하고 국내 경제는 2% 후반에서 3% 초반을 왔다 갔다 하는 상황"이라며 "변동성이 크지 않아서 언제부터가 하강이고 언제부터가 상승이라고 지목해서 얘기하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그는 "설비투자와 건설 등 작년에 성장을 주도한 부문의 추진력이 이어지지 않는다. 수출의 힘이 떨어지고 소비가 경기를 견인할 만큼 강하지 않고, 고용 상황도 좋지 않으며 세계 경제는 불확실하다"며 "올해 들어 전반적으로 경기의 힘이 떨어지는 모습"이라고 의견을 밝혔다.
정부는 최근 나타나는 일부 지표 하락이 예상 범위에 있으며 다른 지표들은 호조를 보여 경기판단을 바꿀 수준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정부 관계자는 "생산이나 소비 쪽은 전망한 수준 정도로 가는 등 괜찮은 것 같다. 투자 부진도 예상한 정도이며 경기판단을 바꾸거나 할 정도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요즘 경기 순환의 사이클은 진폭이 크지 않은 소순환 형태가 많아서 다시 반전이 일어날지도 두고 봐야 한다"며 동행지수 순환변동치가 6개월 이상 한 방향으로 유지되면 다른 지표를 종합적으로 살펴 경기판단을 바꿀지 검토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민간에서 경기하강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것과 달리 정부가 회복 국면이라는 판단을 고수하는 것에 관해 "정부의 판단은 파장이 크기 때문에 신중해야 한다. 다만 정부도 최근 상황이 어렵다는 것을 부인하지는 않는다"고 덧붙였다.
yulsid@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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