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개혁 발표 후 지지율 80%에서 64%…'지지율 회복 노림수'
진행자 "푸틴과 마주친 곰, 바보가 아니라면 알아서 처신할 것"
(서울=연합뉴스) 차병섭 기자 = 어린이를 사랑하고 야생에서 곰과 마주치면 곰도 알아서 도망친다는 위대한 지도자는 누굴까. 러시아 국영방송에 따르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다.
러시아에서는 지난 일요일 저녁 황금시간대에 최근 연금개혁 추진 과정에서 지지율 추락에 직면한 푸틴 대통령을 미화하는 프로그램이 방영됐다.
AP, AFP 통신과 영국 일간 가디언 등은 일요일인 지난 2일 저녁 국영방송 '로시야1'이 푸틴 대통령의 다양한 활동을 소개하는 한 시간 분량의 프로그램 "모스크바, 크렘린, 푸틴" 첫 방송을 내보냈다고 3일(현지시간) 보도했다.
국영방송의 대다수 프로그램에서 이미 푸틴 대통령 관련 내용이 상당한 분량을 차지하는 가운데 이번에 리얼리티쇼 형식의 프로그램까지 더해진 셈이다.
첫 방송에서는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 궁 대변인이 게스트로 출연했고, 리포터가 푸틴 대통령의 지난주 활동을 소개했다.
푸틴 대통령이 다양한 위기에 대처하는 모습, 광부와 학생 등 평범한 러시아 국민과 만나는 장면 등이 전파를 탔다.
진행자는 "푸틴 대통령이 아이의 어머니에게 이야기하거나 아이를 바라볼 때, 아이들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분명히 알 수 있다"면서 "아이들에게 인간적이고 진심 어린 태도로 대한다"고 소개했다.
그러자 페스코프 대변인은 "푸틴 대통령은 아이뿐만, 아니라 전반적으로 사람을 사랑한다"고 맞장구치기도 했다.
방송에는 또 최근 푸틴 대통령이 시베리아의 투바지역에서 휴가를 보내는 모습이 담긴 영상도 나왔다.
진행자는 이 장면에서 "야생이고 곰도 있다. 만약을 대비해 경호원들이 적절히 무장하고 있다. 그렇지만 만약 곰이 푸틴 대통령을 본다면 바보가 아닌 이상 적절히 알아서 처신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 프로그램은 푸틴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을 막으려는 조치의 일환이라는 것이 외신들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러시아 정부는 지난 6월 정년과 연금 수급 연령을 남성은 60세에서 65세로, 여성은 55세에서 63세로 높이는 연금법 개정안을 발표했다.
비판여론이 높아지자 푸틴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대국민담화를 통해 개정안 수정안을 다시 공개했지만, 불만은 여전한 상황이다.
국영 여론조사기관 VTsIOM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의 지지율은 5월 80%에서 지난달 64%로 떨어졌고, 이는 최근 4년 중 최저라는 관측도 나온다.
러시아 국민 50% 이상이 연금개혁 반대 시위에 참가할 준비가 돼 있다는 여론조사기관 레바다 센터의 조사결과도 있다.
방송이 나간 주말에도 수천 명이 연금개혁에 반대하며 시위를 벌였다.
하지만 방송에서는 필요한 개혁을 위해 기꺼이 책임을 지는 푸틴 대통령을 찬양했을 뿐, 시위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언급이 없었다.
페스코프 대변인은 방송 후 "대통령과 그의 일정에 대한 정보가 왜곡 없이 정확히 전달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야권성향 민영TV '도쉬티'는 이 프로그램을 소련 시기 블라디미르 레닌에 대한 개인숭배에 견주었다.
bschar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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