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탄압에 침묵 아웅산 수치…'민주·인권' 이미지 바닥으로
(방콕=연합뉴스) 김상훈 특파원 = 미얀마군과 불교도들의 로힝야족 학살을 취재하다 체포된 2명의 로이터 통신 소속 기자들이 '함정수사' 논란에도 징역 7년의 중형을 받은 뒤 비난의 화살이 또다시 실권자 아웅산 수치를 향하고 있다.
수치는 한때 군부 독재에 항거하면서 미얀마 민주화의 영웅이자 인권의 상징으로 칭송받았고 그런 노력을 인정받아 노벨평화상까지 받았다.
하지만 수치의 고결한 이미지는 반군 토벌을 빌미로 한 미얀마군의 로힝야족 학살과 인종청소를 방관하면서 크게 훼손됐고, 대표적인 언론탄압 사례로 떠오른 이번 사건에 또다시 침묵하면서 바닥까지 추락하고 있다.
4일 현지 언론과 외신 보도에 따르면 수치는 전날 양곤 북부지방법원이 공직 비밀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2명의 로이터 통신 기자들에게 7년의 중형을 선고한 이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미얀마 정부 대변인 등도 내외신의 논평 요청에 답하지 않았으며, 군부 측 대변인도 바쁘다는 핑계로 언론 접촉을 피했다.
미얀마 군부의 영향력 하에 있는 경찰이 로이터 기자들에게 적용한 혐의는 공직 비밀법과 뉴미디어법, 미디어 행동강령 위반이다.
영국 식민지 시절에 제정된 공직 비밀법은 허가 없이 정부 기밀을 빼낼 경우 최장 14년의 징역형에 처할 수 있도록 규정한다.
법원은 두 기자가 가지고 있던 문서들이 안보 문제와 관련된 극비 문서로 반군에게 직간접적으로 악용될 수 있다고 강조하면서 유죄를 인정했다.
하지만 이들이 휴대전화 등에 보관하고 있던 문서는 지난해 11월 미얀마를 방문한 교황의 일정과 경호 계획, 제1 부통령 민트 스웨의 출장 일정표 등이었다.
치안을 책임진 경찰관리나 VIP 행사 담당자들이 언제든 손에 넣을 수 있는 문서들이다.
더욱이 기자들에게 문서를 넘겨준 뒤 체포된 경찰관은 법정에 나와 이 모든 일이 윗선의 지시에 따른 함정수사라고 폭로한 상태다.
따라서 로이터 통신 기자에게 중형을 선고한 것은 부당한 언론탄압으로 볼 수 있지만, 실권자인 수치는 이를 제지하거나 문제 삼지 않고 있다.
이런 가운데 수치가 구속된 기자들을 언급하면서 '반역자'라는 표현까지 썼다는 주장도 나왔다.
최근까지 수치의 측근으로 통했던 빌 리처드슨 전 유엔주재 미국대사는 AFP 통신과 인터뷰에서 "기자 석방을 요청했더니 수치가 분노에 가득 찬 반응을 보였다. 그리고 기자들을 반역자라고 욕했다"고 전했다.
리처드슨은 로힝야족 문제를 비롯한 민족·인종 갈등의 해법을 찾겠다며 수치가 출범시킨 국제 자문위원회에 참여했다. 그러나 지난 7월 수치와 갈등을 빚은 뒤 위원직에서 물러났다.
당시 현장에 있었던 라카인주 위원회의 또 다른 위원인 콥싹 추티꾼은 "수치가 그런(반역자) 발언을 했는지 분명하지 않지만, 어쨌든 당시 감정이나 분위기는 그와 비슷했다"고 전했다.
지난 2016년 수치는 반세기 만에 미얀마에 문민정부를 출범시키고 실권자 자리에 올랐다.
문민정부 출범과 함께 미얀마의 언론 자유가 개선될 것이라는 기대가 컸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언론인을 겁박하거나 체포하는 사례는 군부 시절 못지않다.
실제로 지난해 4월에는 실권자인 수치와 군부 인사들을 비판해온 주간지 발행인이 살해됐고, 2개월 후에는 소수민족 반군 지역에서 마약퇴치 행사를 취재한 기자들이 미얀마군에 체포됐다. 적과 내통했다는 것이 체포 이유였다.
또 지난해 8월 정부군과 로힝야족 유혈사태가 발생한 이후에는 언론인이 체포되는 경우가 더 늘었다. 이번에 중형을 받은 로이터 통신 기자들도 로힝야 유혈사태 이후 강화된 언론 통제의 피해자다.
일각에서는 이런 수치의 태도가 막강한 군부를 통제하지 못하는 데다, 다수인 불교도들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는 현실적인 계산에서 비롯됐다는 평가도 있다.
로힝야족 유혈사태에 대해 군부 측이 내놓는 거짓 또는 허위 주장을 묵인하거나 두둔하는 것도 이런 수치의 초라한 정치적 현실이 빚어낸 결과라는 것이다.
하지만 일부 분석가들은 그동안 군부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 침묵해왔던 수치가 최근에는 군부의 입장을 대놓고 지지하는 쪽으로 선회했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수치는 지난달 싱가포르를 방문한 자리에서 "군부와 비교적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내각에 참여하는 장군들은 다정하다'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수치는 당시 "미얀마의 변화를 내부에서 지켜보는 사람들의 시각은 외부 세계에 있으면서 그 결과에 영향을 받지 않는 방관자들의 시각과 다르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미얀마 전문가인 호주 로위연구소의 애런 코너리 연구원은 "수치가 막강한 권력을 쥔 군부에 맞서기에 힘이 없다는 주장은 이제 근거가 없어졌다. 수치는 자신이 가치 있다고 판단하는 문제에서는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한다"며 "불행하게도 그녀에게 있어 로힝야족의 안위는 가치 있는 일이 아니다"고 비판했다.
meolakim@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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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콕=연합뉴스) 김상훈 특파원 = 미얀마군과 불교도들의 로힝야족 학살을 취재하다 체포된 2명의 로이터 통신 소속 기자들이 '함정수사' 논란에도 징역 7년의 중형을 받은 뒤 비난의 화살이 또다시 실권자 아웅산 수치를 향하고 있다.
수치는 한때 군부 독재에 항거하면서 미얀마 민주화의 영웅이자 인권의 상징으로 칭송받았고 그런 노력을 인정받아 노벨평화상까지 받았다.
하지만 수치의 고결한 이미지는 반군 토벌을 빌미로 한 미얀마군의 로힝야족 학살과 인종청소를 방관하면서 크게 훼손됐고, 대표적인 언론탄압 사례로 떠오른 이번 사건에 또다시 침묵하면서 바닥까지 추락하고 있다.
4일 현지 언론과 외신 보도에 따르면 수치는 전날 양곤 북부지방법원이 공직 비밀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2명의 로이터 통신 기자들에게 7년의 중형을 선고한 이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미얀마 정부 대변인 등도 내외신의 논평 요청에 답하지 않았으며, 군부 측 대변인도 바쁘다는 핑계로 언론 접촉을 피했다.
미얀마 군부의 영향력 하에 있는 경찰이 로이터 기자들에게 적용한 혐의는 공직 비밀법과 뉴미디어법, 미디어 행동강령 위반이다.
영국 식민지 시절에 제정된 공직 비밀법은 허가 없이 정부 기밀을 빼낼 경우 최장 14년의 징역형에 처할 수 있도록 규정한다.
법원은 두 기자가 가지고 있던 문서들이 안보 문제와 관련된 극비 문서로 반군에게 직간접적으로 악용될 수 있다고 강조하면서 유죄를 인정했다.
하지만 이들이 휴대전화 등에 보관하고 있던 문서는 지난해 11월 미얀마를 방문한 교황의 일정과 경호 계획, 제1 부통령 민트 스웨의 출장 일정표 등이었다.
치안을 책임진 경찰관리나 VIP 행사 담당자들이 언제든 손에 넣을 수 있는 문서들이다.
더욱이 기자들에게 문서를 넘겨준 뒤 체포된 경찰관은 법정에 나와 이 모든 일이 윗선의 지시에 따른 함정수사라고 폭로한 상태다.
따라서 로이터 통신 기자에게 중형을 선고한 것은 부당한 언론탄압으로 볼 수 있지만, 실권자인 수치는 이를 제지하거나 문제 삼지 않고 있다.
이런 가운데 수치가 구속된 기자들을 언급하면서 '반역자'라는 표현까지 썼다는 주장도 나왔다.
최근까지 수치의 측근으로 통했던 빌 리처드슨 전 유엔주재 미국대사는 AFP 통신과 인터뷰에서 "기자 석방을 요청했더니 수치가 분노에 가득 찬 반응을 보였다. 그리고 기자들을 반역자라고 욕했다"고 전했다.
리처드슨은 로힝야족 문제를 비롯한 민족·인종 갈등의 해법을 찾겠다며 수치가 출범시킨 국제 자문위원회에 참여했다. 그러나 지난 7월 수치와 갈등을 빚은 뒤 위원직에서 물러났다.
당시 현장에 있었던 라카인주 위원회의 또 다른 위원인 콥싹 추티꾼은 "수치가 그런(반역자) 발언을 했는지 분명하지 않지만, 어쨌든 당시 감정이나 분위기는 그와 비슷했다"고 전했다.
지난 2016년 수치는 반세기 만에 미얀마에 문민정부를 출범시키고 실권자 자리에 올랐다.
문민정부 출범과 함께 미얀마의 언론 자유가 개선될 것이라는 기대가 컸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언론인을 겁박하거나 체포하는 사례는 군부 시절 못지않다.
실제로 지난해 4월에는 실권자인 수치와 군부 인사들을 비판해온 주간지 발행인이 살해됐고, 2개월 후에는 소수민족 반군 지역에서 마약퇴치 행사를 취재한 기자들이 미얀마군에 체포됐다. 적과 내통했다는 것이 체포 이유였다.
또 지난해 8월 정부군과 로힝야족 유혈사태가 발생한 이후에는 언론인이 체포되는 경우가 더 늘었다. 이번에 중형을 받은 로이터 통신 기자들도 로힝야 유혈사태 이후 강화된 언론 통제의 피해자다.
일각에서는 이런 수치의 태도가 막강한 군부를 통제하지 못하는 데다, 다수인 불교도들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는 현실적인 계산에서 비롯됐다는 평가도 있다.
로힝야족 유혈사태에 대해 군부 측이 내놓는 거짓 또는 허위 주장을 묵인하거나 두둔하는 것도 이런 수치의 초라한 정치적 현실이 빚어낸 결과라는 것이다.
하지만 일부 분석가들은 그동안 군부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 침묵해왔던 수치가 최근에는 군부의 입장을 대놓고 지지하는 쪽으로 선회했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수치는 지난달 싱가포르를 방문한 자리에서 "군부와 비교적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내각에 참여하는 장군들은 다정하다'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수치는 당시 "미얀마의 변화를 내부에서 지켜보는 사람들의 시각은 외부 세계에 있으면서 그 결과에 영향을 받지 않는 방관자들의 시각과 다르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미얀마 전문가인 호주 로위연구소의 애런 코너리 연구원은 "수치가 막강한 권력을 쥔 군부에 맞서기에 힘이 없다는 주장은 이제 근거가 없어졌다. 수치는 자신이 가치 있다고 판단하는 문제에서는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한다"며 "불행하게도 그녀에게 있어 로힝야족의 안위는 가치 있는 일이 아니다"고 비판했다.
meolak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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