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한 용도 알 수 없어"…석불·소조불도 나와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경북 경주 도심 동쪽 황용동에 있는 황용사(黃龍寺) 내부 절터에서 투조(透彫·금속판 일부를 도려내는 것) 기법으로 만든 통일신라시대 금동귀면이 출토됐다.
불교문화재연구소는 문화재청과 함께 진행하는 '중요 폐사지 발굴조사 사업' 일환으로 경주 황용사터에서 지난 7월 시굴조사를 한 결과, 탑 주변에서 국내 최초로 금동귀면을 찾았다고 4일 밝혔다.
금동귀면은 높이가 15㎝로, 성인 손바닥에 딱 들어가는 크기다. 입에는 고리가 달렸으며, 입체감이 돋보이는 점이 특징이다.
최인창 불교문화재연구소 팀장은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국내에 유사한 사례가 없어 지금은 용도를 알 수 없다"며 "장식품일 수도 있고, 고리에 무언가를 걸었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최 팀장은 "미술사학계에서 금동귀면 출토지 인근 탑을 8∼9세기 작품으로 보는데, 금동귀면도 비슷한 시기에 제작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이외에도 절터에서는 석불, 소조불, 용두 조각, 하대석 조각, 명문기와가 나왔다.
이에 대해 연구소는 불국사의 말사였던 황용사 위상이 높았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유물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통일신라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조성한 건물지 유적 5동과 탑터, 축대, 돌을 일렬로 쌓은 석렬이 확인됐다.
최 팀장은 "황용사는 계곡 주변에 크고 작은 석축 대지를 조성하고 건물을 축조한 산지형 가람"이라고 말했다.
이어 "쌍탑이 있는 곳은 고려시대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다"며 "고려시대에는 다른 곳으로 절을 옮겼다가 조선시대에 중창된 것으로 보인다"고 추정했다.
황용사는 경주 도심에 있는 구황동 황룡사(皇龍寺)와는 다른 절로, 동대봉산(옛 은점산)에 있다.
불국사고금역대기(佛國寺古今歷代記)에 따르면 선덕여왕 2년(633)에 황둔사(黃芚寺)라는 이름으로 창건됐고, 소성왕(재위 799∼800) 때 황용사로 사찰 명칭이 바뀌었다. 중창을 거듭하는 과정에서 한자를 황용사(皇龍寺)로 쓰기도 했다.
현재도 황용사라는 이름으로 절이 운영되고 있다. 조사 지역은 사찰에서 약 100m 떨어진 곳으로 통일신라시대 쌍탑을 비롯해 고려시대 승탑, 초석, 석축이 흩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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