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2m·212m짜리 동상 차례로 건립…"힌두 민족주의 성향 반영"
(뉴델리=연합뉴스) 김영현 특파원 = 인도가 세계에서 가장 높은 동상을 잇따라 건립하고 있다.
4일(현지시간) 인도 현지 언론과 AFP통신 등에 따르면 우선 오는 10월에는 사르다르 발라바이 파텔 전 부총리의 182m짜리 동상이 서부 구자라트 주(州)에 들어선다.
이 동상의 높이는 미국 뉴욕 자유의 여신상(93m)의 두 배가량 된다. 현재 세계 최고 높이를 자랑하는 중국 허난(河南)성 핑딩(平頂)산 중원대불(中原大佛·128m)보다도 훨씬 높다.
파텔의 동상은 하지만 오는 2021년이면 역시 인도가 세울 212m짜리 동상에 최고 자리를 내주게 된다.
인도는 현재 서부 마하라슈트라 주 주도 뭄바이 라지바반 해변 바위섬에 이 같은 높이로 17세기 왕의 동상을 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두 동상을 세우는 데만 10억달러(약 1조1천150억원)가량의 엄청난 예산이 투입된다. 나렌드라 모디 정부는 이를 위해 연방 예산까지 동원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흥미로운 점은 이런 대역사(大役事)의 주인공이 '인도 건국의 아버지'인 마하트마 간디나 자와할랄 네루 초대 총리가 아니라는 점이다.
'제3의 인물'이 인도 모든 지폐에 초상이 새겨질 정도로 존경받는 간디나 인도 현대 정치 체제의 뼈대를 세운 인물로 평가받는 네루를 제친 것이다.
파텔은 '인도의 철인(Iron Man)'으로 불린다.
1875년 구자라트 주에서 태어난 그는 간디, 네루와 함께 영국을 상대로 독립운동을 했다. 1947년 독립 후에는 네루 총리 아래에서 부총리 겸 내무장관으로 재직했다.
특히 그는 지역 왕국과 정파로 갈라져 싸우던 여러 세력을 아울러 인도라는 연방 깃발 아래 뭉치게 하는 데 큰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그래서 동상의 이름도 '통합의 상'으로 정해졌다.
212m짜리 동상의 주인공은 17세기 인도 중서부를 다스린 마라타 동맹의 시조 차트라파티 시바지 왕이다.
마라타 동맹은 이슬람교를 바탕으로 인도를 지배한 무굴 제국에 대항한 왕국이다.
그렇다면 파텔과 시바지 왕이 간디나 네루 대신 기념비적인 초대형 동상의 주인공으로 낙점된 이유는 무엇일까.
해답은 힌두 민족주의와 내년 총선에서 찾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힌두 민족주의자들은 그간 파텔의 업적이 네루에 밀려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고 느낀다고 AFP통신은 보도했다.
실제로 모디 총리는 2013년 총선 유세 과정에서 "모든 인도인이 파텔이 첫 총리가 되지 못한 점을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모디 총리는 구자라트 주 총리로 있을 때 파텔의 동상을 건설하기로 하고 2013년 착공했다.
모디 총리의 인도국민당(BJP)은 힌두 민족주의 우파 성향이 강한 정당이다.
반면 제1야당인 인도국민회의(INC)는 정치와 종교의 분리를 주장하는 정당으로 인도 독립 후 70년간 정치의 핵심 역할을 해왔다.
현재 INC를 이끄는 라훌 간디 총재는 네루 초대 총리의 증손자이며, 간디 총재의 할머니 인디라 간디, 아버지 라지브 간디 모두 INC 총재와 총리를 역임했다.
모디 정부로서는 파텔을 내세우게 되면 힌두교도들의 지지를 결속할 수 있고, 동시에 INC도 견제할 수 있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둘 수 있는 셈이다.
사회과학연구 인도위원회(ICSSR)의 수다 파이는 AFP통신에 "파텔은 네루 체제의 유산을 없애는 데 사용되고 있다"며 "BJP는 (힌두민족주의) 우파가 인도 독립 투쟁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점을 보여주고 싶어 한다"고 말했다.
시바지 왕 동상 건립도 비슷한 맥락에서 해석될 수 있다.
마라타 동맹은 힌두교도들이 결성한 왕국으로 시바지 왕은 힌두 극우세력이 추앙하는 인물 중의 하나로 알려졌다.
특히 인도 최대 경제도시인 뭄바이가 있는 마하라슈트라 주에서는 도축, 판매는 물론 단순히 소고기만 갖고 있어도 처벌받는 등 힌두 성향이 강한 곳이다.
이 때문에 시바지 왕 동상은 BJP가 내년 총선을 앞두고 마하라슈트라 지역표심을 확보하기 위해 동원한 수단이라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고 AFP통신은 전했다.
cool@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