캡슐 제작진·ISS 우주인 모두 용의선상에 올라
(서울=연합뉴스) 엄남석 기자 = 국제우주정거장(ISS)에 도킹한 러시아 캡슐 소유스에 난 2㎜ 작은 구멍이 드릴에 의한 것으로 밝혀지면서 파문이 커지고 있다.
5일 외신과 과학전문 매체 등에 따르면 이 구멍이 처음 추정과는 달리 작은 유성체나 우주 쓰레기의 충돌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실수든 고의든 누군가 인위적으로 낸 드릴 구멍이라는 것이 밝혀지면서 캡슐을 제작한 지상 기술진과 ISS에 활동 중인 우주인이 모두 용의선상에 올라있다.
이 구멍은 다행히 조기에 발견돼 큰 사고로 이어지지 않았지만, 만약 이를 찾지 못했다면 ISS에서는 18일 만에 공기가 없는 비상사태로 번질 뻔 했다.
미국항공우주국(NASA)는 이번 사건과 관련해 함구 중이며, 러시아 연방우주공사(로스코스모스) 측이 전면에서 이를 다루고 있다.
◇ 지상 기술진의 실수인가
= 이번 사건 조사를 지휘 중인 로스코스모스의 드미트리 로고진 사장은 리아노보스티와의 회견에서 "선체 표면을 따라 드릴에 긁힌 자국을 볼 수 있으며, 기술적 실수가 원인인 것으로 좁혀지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누구 책임인지 분명하게 밝혀내길 원하고 있고, 그렇게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선체 표면에 남은 흔적으로 볼 때 드릴로 구멍을 내려는 시도는 여러차례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드릴을 잡은 손은 흔들렸던 것으로 드러났다.
소유스 캡슐을 제작한 '에너지아'사의 한 전직 직원은 우주선 캡슐에 드릴 구멍이 생긴 것이 이번은 처음이 아니라고 밝혔다.
이 회사에 다니다 모스크바 국립대학 교수로 자리를 옮긴 빅토르 미넨코는 러시아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지구로 귀환한 우주선 모듈을 검사하다가 드릴로 관통한 구멍을 발견한 적이 있다"면서 "담당 기술자는 이런 결함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에폭시로 때웠다가 발각돼 해고됐다"고 했다.
소유스 MS-09에 난 구멍은 에폭시 대신 접착제를 사용해 메운 것으로 나타났다. 캡슐 진공테스트 때 실수가 드러나는 것을 막기위해 임시방편으로 접착제를 사용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구멍이 다시 생겼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만약 지상 기술진이 실수로 구멍을 낸 것이 맞는다면 소유스 선체는 알루미늄 합금으로 돼있어 보고만 제대로 됐다면 지상에서 충분히 수리할 수도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러시아 내에서는 에너지아사 내부 조사에서 이미 범인을 밝혀냈으며, 구멍을 잘 못 뚫은 것을 은폐하려고 한 것이지 악의를 가지고 한 것은 아니라는 자백을 받아냈다는 미확인 정보도 흘러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 ISS 우주인도 용의선상에서 배제 안해
= 로고진 사장은 지상 기술진의 실수 여부를 조사 중이지만 ISS에서 활동 중인 우주인이 관여했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는다고 했다.
ISS에서 두 차례나 우주 임무를 수행하고 현재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이끄는 집권당 의원으로 활동 중인 막심 수라예프도 심리적으로 흔들린 우주인이 지구 조기 귀환을 위해 이런 일을 저질렀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수라예프 의원은 노보스티와 회견에서 "우리는 모두 인간이고 누구나 집에 가고 싶어한다"면서 "그러나 이 방법은 정말 저급한 것"이라고 했다.
그는 "만일 우주인이 이런 이상한 곡예를 했다면 진짜로 나쁘다"면서 "역시 슬픈 것이지만 제작상의 결함이길 신께 빈다"고 말했다.
구멍이 난 부분은 우주인의 지구 귀환 때는 사용하지 않는 부분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우주산업 분야에서 엔지니어로 활동하다 작가로 전업한 알렉산데르 젤레즈니야코프는 타스통신과의 회견에서 무중력 상태에서 드릴로 구멍을 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면서 "우주인이 왜 그런 일을 했겠느냐"고 반문했다.
ISS에는 선장을 포함해 미국인 3명과 러시아인 2명, 독일인 1명 등 6명이 체류하고 있다.
러시아 우주인들은 NASA 소속 앤드루 포이스털 선장의 반대에도 의료용 거즈와 밀폐 접착제, 덕트 테이프를 이용해 구멍을 때우는 작업을 진행했으며, 공기유출은 일단 차단된 것으로 전해졌다.
구멍이 난 소유스 MS-09는 지난 6월 ISS에 도착했으며, 오는 12월 귀환할 예정이다.
[로이터 영상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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