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청 인권침해사건 진상조사위 발표…사망 특공대원·철거민에 사과 권고
사후 인터넷 여론작업도…청와대 '강호순 연쇄살인사건 활용' 지시
(서울=연합뉴스) 임기창 기자 = 2009년 1월 용산참사 당시 경찰 지휘부가 화재 등 위험 발생 가능성을 예상하고도 무리한 작전을 강행해 인명피해가 발생했다는 진상조사 결과가 나왔다.
경찰청 인권침해사건 진상조사위원회는 5일 이같은 내용의 용산참사 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당시 숨진 경찰특공대원과 철거민들에 대한 사과, 조사 결과에 대한 의견 발표 등을 경찰청에 권고했다.
용산참사는 2009년 1월19일 철거민 32명이 재개발 사업 관련 이주대책을 요구하며 서울 용산구 한강로2가 남일당 빌딩 옥상에 망루를 세우고 농성하던 중 경찰 강제진압 과정에서 화재가 발생, 경찰관 1명과 철거민 5명이 숨진 사건이다.
진상조사위에 따르면 경찰은 1월19일 철거민들이 망루 농성을 시작하자 조기 진압과 경찰특공대 투입을 결정했다. 이어 서울경찰청 지휘부 회의를 거쳐 남일당 빌딩 진입작전 계획서가 작성돼 당일 오후 11시께 최종 승인됐다.
작전계획서에는 망루에 시너, 화염병 등 위험물이 많고 농성자들이 분신·투신·자해 등을 할 우려가 있다는 예측이 언급됐다. 이런 판단에 따라 대형 크레인 2대와 컨테이너, 에어매트, 소방차 등 152개 장비가 계획서에 적시됐다.
그러나 실제로는 현장에 투입된 크레인은 1대뿐이었고, 에어매트는 설치되지 않았다. 소방차는 일반 화재 진압에 쓰이는 펌프차 2대만 투입됐고, 유류로 인한 화재 진압용 화학소방차는 계획서에 포함되지도 않았다.
특공대원들은 사전 예행연습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현장에 투입됐다. 특공대 제대장은 작전 연기를 특공대장과 서울청 경비계장 등에게 건의했으나 거절당했고, 이튿날인 20일 오전 6시30분께 작전이 개시됐다.
특공대가 옥상에 1차 진입하고, 농성자들이 화염병을 던지는 등 저항하는 과정에서 1차 화재가 발생했다. 경찰 측 컨테이너가 망루를 충돌해 망루가 무너지자 안에 있던 시너 등 인화성 물질이 흘러내려 망루와 옥상에 들어찼다.
경찰 지휘부는 망루 내부에 인화성 유증기가 가득 찬 상황에서도 특공대원과 농성자들을 위한 안전조치나 작전 일시중단·변경 없이 특공대를 2차 진입시켰고, 이후 참사로 이어진 2차 화재가 발생했다.
조사위는 "2차 진입 강행은 특공대원과 농성자들의 생명과 안전을 무시한 무리한 작전 수행이었다"며 "1차 진입 후 유증기 등으로 화재 발생 위험이 커진 점 등을 파악해 적절히 지휘해야 했다"고 말했다.
경찰은 사건 발생 이후 전국 사이버 수사요원 900명을 동원해 용산참사와 관련한 인터넷 여론을 분석하고, 경찰 비판 글에 반박 글을 올리는가 하면 각종 여론조사에도 적극 참여하도록 지시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김석기 당시 경찰청장 내정자 지시가 발단이 돼 이뤄진 조치로 드러났다. 경찰은 용산참사 수사를 지휘하던 서울중앙지검 간부 검사와 6개 언론사 관계자들에 대한 접촉을 시도하기도 했다.
당시 청와대 행정관은 경찰청 홍보담당관에게 '사건 파장을 막고자 강호순 연쇄살인사건을 적극 활용하라'는 취지의 이메일을 보내기도 했다. 다만 경찰이 이를 실제 이행했는지는 확인하지 못했다고 조사위는 밝혔다.
조사위는 이밖에 경찰이 참사 발생 전 철거업체 직원들의 폭력 행사에 적극 대응하지 않은 점, 철거민 사망자 유족에게 사망자 관련 정보나 부검 필요성, 부검 경과 등을 알리지 않은 점 등도 문제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조사위는 경찰 지휘부의 잘못된 지휘로 순직한 경찰특공대원과 사망한 철거민들에게 사과하고, 경찰이 조직적으로 온·오프라인 여론을 조성하는 활동을 금지하라고 경찰청에 권고했다.
아울러 철거지역 분쟁상황에서 용역 폭력에 대한 예방과 제지 지침 마련, 유족에게 부검 관련 내용을 전달하기 위한 '변사사건 처리규칙' 개정, 민생 관련 현장에서 피해를 입은 경찰관에 대한 치료·회복조치 등도 요구했다.
용산참사 규명위원회 "김석기 진압책임 즉각 수사·처벌" / 연합뉴스 (Yonhapnews)
"경찰, 용산참사 때 위험 알고도 무리한 진압…6명 사망" / 연합뉴스 (Yonhapnews)
pulse@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