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산 산양, 소송당사자 될 수 있나…"후견인 위임으로 가능"

입력 2018-09-05 16:43  

설악산 산양, 소송당사자 될 수 있나…"후견인 위임으로 가능"
'오색케이블카 소송' 변호인단 "전향적 판단 해달라" 호소



(서울=연합뉴스) 고동욱 기자 = 설악산에 오색케이블카를 설치하는 문제를 두고 '설악산 산양'을 원고로 내세운 소송에서 원고 측이 '후견인 위임'을 통해 산양도 소송 당사자가 될 수 있다는 주장을 내놓았다.
28마리 산양을 대리하는 원고 측 변호사는 5일 서울행정법원 행정6부(이성용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문화재 현상변경 취소 소송 첫 변론기일에서 "산양의 후견인으로 박그림 설악산국립공원지키기 국민행동 공동대표를 지정받으려 한다"고 밝혔다.
변호사는 "오랜 기간 산양의 이익을 대변하는 활동을 한 박 대표가 후견인으로서 적합한 지위에 있다고 판단한다"며 "민법상 후견인 지정 절차도 밟을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이 소송은 동물권을 연구하는 변호사단체인 피앤알(PNR·People for Non-human Rights)이 주도한 것이다.
이들은 문화재청이 설악산에 케이블카를 추가로 만들 수 있도록 문화재 현상변경을 허가하자, 이 경우 설악산에 서식하는 멸종위기 Ⅰ급 야생동물인 산양이 소음·진동 등으로 생존을 위협받게 된다며 산양을 원고로 소송을 냈다.
그간 국내에서는 동물을 원고로 내세운 소송이 몇 차례 진행됐으나 모두 소송 당사자로 인정받지 못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2004년 천성산 터널 착공과 관련해 환경단체 등이 '도롱뇽'을 당사자로 해 제기한 소송이다. 이 사건에서 1·2심과 대법원은 "'자연물'에 불과한 도롱뇽이 사건을 수행할 당사자 능력이 없다"고 못 박았다.
이번 소송에서 원고 측은 사무 처리 능력이 부족한 이에게 법률 지원을 돕는 후견인 제도를 활용해 당사자성을 인정받겠다는 새로운 주장을 펼쳤다.
과거 '도롱뇽 소송'에서는 도롱뇽이 직접 변호사에게 소송을 위임하는 형태였다면, 이번에는 산양의 법적 후견인이 변호사에게 사건을 위임한 것이라는 주장을 내놓고 법적 판단을 구해보겠다는 것이다.
원고 측은 곧 법원에 산양의 후견인을 지정해달라고 신청을 할 예정이다.
원고 측 대리인인 법무법인 자연 배영근 변호사는 "만약 법원에서 자연물에 대해서는 후견인을 지정할 수 없다고 판단한다면, 그 자체가 위헌이라고 헌법 소원을 내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피고 문화재청 측의 변호인은 "동물인 산양에게 당사자 능력이 있느냐는 후견인 선임과 다른 문제이고, 후견절차를 밟더라도 결론이 명확하다"며 "이를 통해 캠페인을 벌이고 이슈화하는 게 목적"이라고 반박했다.
이에 대해 원고 측에서는 "기존의 판례와 당사자 능력도 바뀔 수 있는 것"이라며 "해외 판례에서는 강이나 동물에 대해서도 소송상 지위를 인정한다"고 주장했다.
원고 측은 "이슈화하려는 것이 아니다. 동물이라도 생존권 등 중요한 권리를 침해당하면 소송을 제기하고 이익을 향유할 수 있다고 인정받지 않을 이유가 없다"며 "생물다양성 협약에서도 동물에게 법적으로 보호받을 이익이 있다고 보는 만큼 재판부에서 전향적 판단을 해주시길 간절히 바란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후견인 신청 결과까지 참고할 수 있도록 시간적 여유를 두고 내년 1월에 선고를 하기로 했다.
sncwook@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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