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법원 20주년 학술행사서 '반쪽 행정소송' 지적…"현실 맞춰 법개정 시급"
(서울=연합뉴스) 고동욱 기자 = 행정소송이 사회보장 분야에서 실효성 있게 국민의 권리를 구제하려면 '의무이행소송'이 도입돼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서울행정법원 김정중 부장판사는 7일 서울 양재동 엘타워에서 서울행정법원 개원 20주년 기념 학술행사 '스무 살의 행정법원, 새로운 도약'에서 이와 같은 내용의 발제를 했다.
김 부장판사는 현행 행정소송 제도가 충분한 구제 수단을 갖추지 못했다는 점을 지적했다.
예를 들어 국가유공자 등록이 거부된 국민이 있다면 '거부처분 취소' 소송을 낼 수 있지만, 여기서 승소했더라도 행정청이 다른 이유를 들어 다시 거부처분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경우 국민은 또 소송을 제기해야 한다.
공사 도중 사고로 상해를 입은 국민이 업무상 재해로 인정해 달라는 소송을 내 승소했으나, 다시 '근로자가 아니다'라는 이유로 또 거부 처분을 받은 사례 등이 제시됐다.
이런 경우가 '반쪽짜리 구제'라고 한다면, 행정청이 민원에 응답하지 않아 '부작위 위법 확인소송'을 내는 경우에는 승소했더라도 다시 거부처분을 할 수 있어 '반의 반쪽짜리'가 될 수 있다는 점도 김 부장판사는 지적했다.
아울러 판결이 확정되기 전까지는 임시 실행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가(假) 구제'의 수단이 없다는 점도 거론했다.
김 부장판사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소송이 제기된 행정청에 대해 처분의 이행을 명할 수 있는 '의무이행 소송'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김 부장판사는 "그간 의무이행 소송 도입 논의가 성숙했고, 독일·일본·대만·중국 등에서도 이미 시행되고 있다"며 "법원의 행정재판 전문성이 강화된 사정을 고려하면 이제 국회가 행정소송법 개정 절차를 진행해야 한다"고 밝혔다.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성중탁 교수는 공공갈등 해소를 위한 행정재판의 실효성을 높일 방안으로 '예방적 금지소송'의 도입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내놓았다.
도로 설치나 노선 지정, 송전선로 건설 등 공공적 갈등이 발생하는 사업에서는 행정 계획이 이미 실행에 옮겨져 버리면 행정소송 자체가 무의미해지는 만큼, 돌이킬 수 없는 피해가 예상된다는 사실이 입증될 경우, 실행 이전에 미리 금지를 구하는 소송을 제기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성 교수는 그런 사업의 예로 4대강 사업이나 새만금 사업, 원자력 발전소 건설 등을 제시했다.
한편 이날 행사에서 기조발제를 한 이홍훈 서울대 이사장(전 대법관)은 "1994년 개정된 행정소송법을 변화된 행정 현실에 맞춰 개정하려는 작업이 답보 상태에 있다"며 "변화된 행정 현실에 맞는 새로운 행정재판 제도를 설계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정하중 서강대 명예교수도 "현행 행정소송법은 복잡화·전문화·세분화 되는 행정 현실에 적응능력을 상실하고 있다"며 조속한 개정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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