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활에 기대다·당신은 북천에서 온 사람

입력 2018-09-07 17:00  

[신간] 활에 기대다·당신은 북천에서 온 사람
의자왕 살해사건·곁에 남아 있는 사람·보르헤스에 대한 알려지지 않은 논쟁


(서울=연합뉴스) 임미나 기자 = ▲ 활에 기대다 = 정우영 시인이 8년 만에 펴낸 네 번째 시집.
경쟁적인 속도가 아니라 어떤 방향이 존재하는 세계를 보여준다. 먼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가까운 곳에 있는 것들과의 교감은 인위적인 속도를 불필요하게 만든다.
"발자국은 나를 떠나/저 너머로 뒷걸음쳐 갔으나, 차마 이별을 고하진 못하고 되돌아와/다시 내 발밑을 받친다./발자국이 없으면 어쩔 뻔했나./내 삶을 부양한 것은 저 수많은 발자국들." ('눈길- 설날 아침' 부분)
시인은 특히 사회적인 죽임을 당한 존재들에 관심을 기울인다.
"그럴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파편처럼 찢긴 목숨들 육십사 미터를 되튀어/다시 제자리에 머문다./여전히 흔들리는 엉성한 받침대를 떠나/간들간들 허공 밟고 서 있다./치뜬 눈 벌겋게 유리창 물들이면서 매달려 있다." ('더운 밥' 부분)
반걸음. 171쪽. 9천원.


▲ 당신은 북천에서 온 사람 = 이대흠 시인의 다섯 번째 시집.
'북에 백석이 있다면 남에는 이대흠이 있다'는 찬사를 받은 '귀가 서럽다' 이후 8년 만에 펴낸 시집이다. 깊은 사유와 원숙한 시선이 빛나는 따뜻한 시편들이 잔잔히 가슴 속으로 스며들어 여운을 남긴다.
"나무는 가만히 서 있는 게 아니다/나무는 흐른다, 라고 생각하고 있었더니/바닥에서 별이 돋아났다//나는 너무 함부로 아름답다는 말을 해왔다//…… 그래서 당신/나는," ('부춘' 전문)
시인은 전남 장흥에서 태어나 서울, 광주, 제주도 등지로 떠돌다 고향 땅에 다시 뿌리를 내렸다. 자신의 존재론적 기원을 상상하고 더듬어가는 시인은 고향의 삶이야말로 두고두고 되새겨야 할 가치라고 믿는다. 그는 호남 방언의 질감을 고스란히 살려내면서 고향 이야기를 살갑게 들려준다.
"장흥에서 조금 살다보면 누구든지/장흥 사람들이 장흥을/자응이라 부른다는 것을 알게 된다//하지만 자응을 알게 되었다고 해서/장흥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장흥 사는 사람과/자응 사람은 다르다//자응 장에 가서/칠거리 본전통이나 지전머리를/바지 자락으로 쓸어본 사람이라야 겨우/물짠 자응 사람이 된다" ('장흥' 부분)
창비. 120쪽. 8천원.


▲ 의자왕 살해사건: 은고 = 소설 '금강'으로 유명한 김홍정 작가의 신작
작가는 백제 패망의 원인을 '은고'라는 여인에게 귀착시킨 '일본서기' 기록을 주목하고 강한 의구심을 품게 됐다고 한다. 그는 이 소설로 백제의 마지막 왕비 '은고'를 백제의 운명을 손에 쥔 강력하고도 매혹적인 여인으로 그렸다.
남부여 654년 은고는 원로 귀족인 좌평 흥수를 타파하기 위해 해루 장군에게 좌평을 옥에 가두도록 명한다. 그녀는 노회한 귀족들을 견제하고 젊은 장군들을 기용해 싸움에서 이기는 등 약한 왕권을 강화하는 대개혁을 이끌어간다. 660년 여름 당의 장수 소정방과 서라벌 장군 김인문이 이끄는 13만 대군이 덕물도로 침략해 남부여는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된다. 은고는 포로로 끌려간 낙양성에서 대부여의 혼을 지킨다는 목적으로 결성된 비밀조직 '거믄새'와 함께 패망한 백제 부흥을 위한 전략을 짜기 시작한다.
솔출판사. 362쪽. 1만4천원.


▲ 곁에 남아 있는 사람 = 임경선 작가의 소설집.
작가가 7년 만에 내는 소설집으로, 표제작을 비롯해 '안경', '치앙마이', '우리가 잠든 사이', '나의 이력서' 등 단편 7편이 수록됐다.
자신이 주인인 인생을 살아가기 위해 고독한 싸움을 벌이는 인물들을 통해 삶이란 어떻게든 살아가야 하고, 계속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위즈덤하우스. 248쪽. 1만3천원.


▲ 보르헤스에 대한 알려지지 않은 논쟁 = 1998년 '권태로운 자들, 소파씨의 아파트에 모이다'로 제22회 오늘의작가상을 받은 이치은 작가의 첫 소설집.
시간과 기억에 관한 기묘한 이야기 10편을 담았다. '보르헤스에 대한 알려지지 않는 논쟁'은 시인 엘 돌셀과 평론가인 벨마르 사이에 일어난, 보르헤스의 마지막 소원이 무엇인지에 관한 논쟁이다. 작가는 이 가상 논쟁에 보르헤스의 부인 마리아 고타마의 전언까지 곁들여 독자에게 수수께끼를 던진다. 전작에서 다룬 기억과 기록의 문제를 이번 작품에서 더 직설적으로 재조립해 보여준다.
알렙. 164쪽. 1만1천원.
mina@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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