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거품 부작용→중앙은행 대출규제→거품 붕괴→장기불황
아베 정권 들어 금융·재정 동원 경기부양으로 부동산 다시 회복세
(도쿄=연합뉴스) 최이락 특파원 = 한국의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면서 일본의 거품경제 당시 부동산 가격 급등에 이은 폭락사태를 종종 떠올리는 경우가 있다.
일각에서는 부동산 폭락과 장기 경기침체를 겪은 일본 사례를 일종의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고 지적하지만 다른 쪽에서는 일본과 한국과는 사정이 다르다는 주장도 있다.
우선 일본은 1980년대 중반 토지·주택 신화가 있었다.
당시엔 문자 그대로 자고 나면 땅값과 집값이 뛰었다. 은행에서는 토지와 주택 소유자에게 향후 가격 인상분까지 감안해 담보 대출을 해줬다.
일본 정부도 별다른 대책을 마련하지 않았다.
오히려 정부는 버블을 조장하기까지 했다. 1985년 플라자 합의로 엔화가치가 급등하자 통화당국은 경기위축을 막고 내수를 활성화하고자 과도하게 금융완화정책을 펼쳤다.
돈이 시장으로 마구 풀리자 일본 국민은 주식과 부동산 시장으로 몰려들었다. 자고 나면 뛰는 부동산 가격은 온 국민을 부동산 투기로 몰아넣었다.
거품이 거품을 불러오는 날, 언제 폭락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사실상 '폭탄 돌리기'를 거듭하는 날들의 연속이었던 셈이다.
9일 일본 내각부와 일본경제연구센터 등의 자료에 따르면 일본 주가는 1989년말을 기준으로 플라자 합의 이전인 1984년말 대비 237%나 상승했고, 부동산 가격도 66% 올랐다.
문제는 1990년대 들어서면서 일어났다.
지나친 자산 거품과 물가상승 압력을 더는 방치할 수 없다고 판단한 일본은행이 금융긴축 정책으로 돌아서면서 한순간에 거품이 붕괴한 것이다.
일본은행은 1989년 5월부터 1990년 8월까지 5차례에 걸쳐 기준금리를 3.5% 포인트나 올렸고, 대출총량 규제를 도입해 부동산 및 건설업에 대한 대출을 사실상 동결했다.
효과는 즉시 나타났다.
도쿄증시 대표 지수인 닛케이 지수는 1989년말 38,000 포인트 선에서 1990년 4월 29,000 포인트 선으로 폭락했고, 같은 해 10월에는 한때 20,000 포인트도 붕괴했다.
은행과 기업은 줄도산했다. 1991년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경제성장률은 제로 상태였다.
부동산가도 1990년말 이후 급락했다. 2014년말 기준으로 1990년말 대비 평균 65.8%가 하락했다. 그야말로 반토막, 그리고 그보다 더 떨어진 부동산이 속출한 것이다.
과도한 부동산 거품에 따른 부작용→중앙은행 대출규제→거품붕괴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짧게는 10년, 길게는 20년가량 일본 경제를 부진의 터널로 몰아넣었다.
은행과 기업의 줄도산, 주택 등 부동산 가격 폭락, 소비자들의 구매력 하락 등이 맞물리며 일본은 '잃어버린 10년' 또는 '잃어버린 20년'을 맞게 되는 것이다.
길게 볼 때 1990년대 초반에서 2010년대 초반까지 이어지는 이른바 '경기침체 장기화'는 저성장·저물가·저고용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일본의 1980~1990년 경상 GDP 성장률은 연평균 6.2%였지만, 1990~2014년에는 연평균 0.4%로 낮아졌다. 이 기간 실질 GDP 성장률은 4.6%에서 0.9%로 급격히 둔화했다.
고용시장 상황도 지속해서 악화했다. 취업자수 증가율은 1980년대 연평균 0.9% 수준이었지만, 1990년대는 0.2%로 둔화했다. 2000년대에는 -0.2%라는 충격적인 결과로 이어졌다.
그러나 일본 경제와 부동산 시장도 최근 몇 년 사이 상당히 호전되는 분위기다.
여기에는 2012년 12월 취임한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강력한 금융·재정 경기부양 정책이 큰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된다.
아베 총리는 일본은행과의 정책협조를 통해 제로금리에 이어 마이너스 금리를 도입하고, 소비자물가상승률 목표치를 2%로 정했다.
매년 본예산 외에도 많을 경우 20조엔에 달하는 추경예산을 편성하는 재정 정책도 구사했다.
아베 정권의 목표에는 미달하지만 이런 정책이 지속하면서 내각부에 따르면 올 4~6월 실질 국내총생산(계절 조정치 GDP)이 직전 분기에 비해 연율 기준 1.9% 증가했다.
일본부동산경제연구소 조사결과 이런 경기호전 분위기를 타고 수도권의 신축맨션(한국의 아파트에 해당) 가격은 1990년대 초반 거품경제 시기 수준으로 올라간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소에 따르면 지난해말 도쿄와 인근 3개현의 신축맨션 평균 가격은 전년 말에 비해 7.6% 상승한 5천908만엔(약 5억9천800만원)이었다.
이는 27년만의 최고 수치다.
거품경제 시기인 1989년과 1991년보다 높은 수치라고 연구소측은 밝혔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현재의 부동산가 상승추세가 거품경제 당시와는 다르다고 지적했다.
거품경제 시기의 경우 도시와 교외 지역을 불문하고 '묻지마' 투자 양상으로 가격이 일제히 상승했지만, 최근의 가격상승은 도심 및 주요 지하철역 인근의 재개발 지역이 주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choinal@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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