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린스키 별' 김기민 "한땐 외톨이 동양인 발레리노였죠"

입력 2018-09-09 07:20  

'마린스키 별' 김기민 "한땐 외톨이 동양인 발레리노였죠"
동양인 '최초'서 '최고'로 성장…11월 '돈키호테'로 한국 무대



(서울=연합뉴스) 임수정 기자 = 입단 8년 차를 맞은 러시아 마린스키 발레단의 수석무용수 김기민(26)은 어느덧 이 발레단의 '간판 무용수'로 자리매김했다.
그가 출연하는 공연 티켓은 러시아 현지에서도 가장 비싸게 팔리고, 가장 빨리 매진된다.
그의 장기인 긴 체공 시간(점프로 공중에 머무는 시간)과 풍부한 표현력은 발레 최강국의 콧대 높은 관객들에게서도 기립박수를 끌어내곤 한다.
최근 서울 광화문 코리아나호텔에서 만난 그는 "공연 횟수와 해외 다른 발레단의 초청이 늘어날 때 이런 인기를 조금 실감한다"며 웃었다.
비자 문제 해결을 위해 잠시 한국을 찾은 그는 곧바로 오스트리아로 날아가 빈 국립발레단 초청 무대에 오른다. 이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의 마린스키 발레단 공연, 미국 뉴욕시티발레단에서의 갈라 공연 등이 줄줄이 예정됐다.
한국에 들어오기 전에는 영국 런던에서 '백조의 호수' 전막 공연을 했다. 열흘 중 8회 공연이 모두 그의 몫이었다.
현재 마린스키 발레단의 가장 '잘 나가는' 무용수로 활약하고 있지만 2011년 이 발레단 최초의 동양인 발레리노로 입단이 결정됐을 때만 해도 그의 이런 성장을 예상한 이는 많지 않았다. 발레단 무용수들이 그를 동료로 인정하는 데에만도 시간이 꽤 걸렸다.
"처음 들어왔을 때만 해도 검은 머리에 눈 작은 무용수는 저밖에 없었으니까요. 거의 1년 동안은 발레단에서 친구가 없었어요. 인사를 해도 안 받아주더라고요. 비하하는 발언도 있었고요. 그런데 당시 그 친구들에겐 조금 미안하지만 별로 크게 신경이 안 쓰이더라고요. 이루고 싶은 목표가 너무도 뚜렷했기 때문에 다른 것에 신경 쓸 여력이 없었어요."
당시 스무살 남짓이었던 이 청년이 이루고 싶었던 꿈은 단 하나, 춤을 잘 추는 것뿐이었다. "전성기 프로 무용수처럼 춤을 추고 싶은 열망이 강했어요. '어린데도 이 정도로 연기를 하네'란 칭찬이 아닌 대체 불가능한 무용수가 되고 싶은 욕심밖에 없었어요."



그는 어린 시절부터 정확하게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향해 돌진하는 '독종'이자 '연습 벌레'로 유명했다.
그가 졸업한 예원학교의 경비 아저씨는 연습을 끝낼 줄 모르는 그를 기다리다 지쳐 아예 열쇠를 주고 "아침에만 가져다 달라"고 부탁했을 정도였고, 입단 초기 마린스키 발레단에서도 그의 퇴근 시간은 늘 "연습실 문이 닫힐 때"였다고 한다.
"저도 놀고 싶은 것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아요.(웃음) 그런데 뭔가 하나 주어지면 그거밖에 안 보이는 성격은 좀 선천적인 것 같아요.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재 과정을 밟았던 탓에) 평범한 중고등학교 시절의 추억이 없는 건 개인적으로 콤플렉스로 남기도 했죠. 그래도 무얼 얻기 위해선 포기해야 하는 부분도 있다고 생각해요."
이 같은 노력 덕분에 그는 러시아 관객들과 동료 무용수들이 모두 인정하는 발레리노가 됐다. 2016년 '무용계의 아카데미상'으로 불리는 '브누아 드 라 당스(Benois de la Danse)' 최고 남성무용수상을 수상하는 영예도 안았다.
"이젠 아무도 저를 못 놀리죠. 하하. (같은 발레단 수석무용수인) 빅토리아 테레시키나가 언젠가 묻더라고요. '이 발레단에서 기민이 널 싫어하는 사람도 있을까'라고요. '내가 발레단 생활을 잘 하고 있구나' 싶은 마음에 기뻤어요."
그를 논할 때 빠지지 않는 것이 특유의 사뿐하고 높은 점프지만, 정작 스스로는 "사실 테크닉을 크게 신경 쓰거나 연습하는 편은 아니"라고 말했다.
"테크닉 그 자체가 그리 중요한 건 아닌 것 같아요. 오히려 기술적인 측면에만 너무 치중하다 보면 발레가 아닌 묘기처럼 보일 수도 있거든요. 무용수들의 테크닉이 필요한 이유도 결국 작품을 잘 표현하기 위함이라고 생각해요."
한국에서도 풍부한 표현력과 고난도 테크닉이 어우러진 그의 연기를 감상할 수 있다. 그는 오는 11월 15~18일 마린스키 발레단과 '돈키호테'로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무대에 오른다.
'돈키호테'는 '라 바야데르', '해적'과 함께 그의 대표 레퍼토리로 손꼽힌다.
그는 "작품이 가진 에너지와 강렬함, 테크닉적인 부분 등이 저와 잘 맞는 작품"이라며 "제가 자신 있어야 하고, 좋아하는 작품으로 한국 무대에 오르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
20대 중반에 이미 마린스키 발레단 정상에 오른 그는 어떤 또 다른 꿈을 꾸고 있을까.
"하고 싶은 게 많아서 생각보다 빨리 무용을 관둘 수 있다는 생각도 해요. 발레를 안 했다면 지휘자도 꿈꿨을 것 같아요. 제 해석으로 몇십분간 음악을 만들어 나간다는 점이 멋져 보이거든요. 조금 더 현실적으로는 안무에도 도전해보고 싶어요. 물론 안무가는 타고 나야 하는 측면이 있긴 해요. 일단 오늘 제게 주어진 공연들을 잘 치러내며 다음 꿈을 꿔보고 싶습니다."
sj9974@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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