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총리, 긴축 지친 국민에 '당근'…"감세·최저임금 인상"(종합)

입력 2018-09-09 19:09  

그리스 총리, 긴축 지친 국민에 '당근'…"감세·최저임금 인상"(종합)
치프라스 내년 경제정책 발표…'긴축재정'에서 '적극재정' 선회
긴축정책·마케도니아와의 국호 변경 합의안에 항의 대규모 시위 열려

(로마·서울=연합뉴스) 현윤경 특파원 임주영 기자 = 8년에 걸친 구제금융 체제를 지난달 끝낸 그리스의 알렉시스 치프라스 총리가 8일(현지시간) 오랜 긴축에 삶의 질이 추락한 국민에게 '당근'을 제시하며, 민심 잡기에 나섰다.



AFP통신과 AP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치프라스 총리는 이날 저녁 그리스 제2의 도시이자 최대 무역 도시인 테살로니키에서 열린 국제 무역박람회 개회식 기조연설에서 내년 경제정책 방향을 제시하며, 경제회복을 위한 대규모 감세, 최저임금 인상, 보조금 지급 등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치프라스 총리는 우선 재산세와 거래세를 줄이고, 농민과 중산층의 수입을 증대시키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법인세는 현재 29%에서 2022년까지 25%로 축소하겠다고 했다. 경제 활성화 정책을 통해 연평균 3%의 경제성장을 이뤄 국내총생산(GDP)을 늘리겠다는 목표다.
그는 "정부는 추가 연금 삭감 없이도 계획한 흑자 예산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며 "내년으로 예정된 연금 삭감 문제도 재고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리스는 2010년 유럽연합(EU), 국제통화기금(IMF) 등 국제채권단으로부터 3차례에 걸쳐 구제금융을 받는 동안 긴축 재정을 위해 총 12차례나 연금 삭감 조치를 단행, 대대수 국민의 연금 수령액이 최대 40%까지 줄어든 상황이다.
다만 그는 "이 문제와 관련해 연말에 유럽연합(EU)과 협상할 것"이라고 여지를 남겼다. 연금 삭감은 올해 초 그리스가 채권자들과 합의한 사안이다.
치프라스 총리는 실업률 축소와 국가 신용등급 상향 목표도 밝혔다. 그는 실업률을 현재 19%에서 향후 5년 동안 10%로 내리는 것이 목표라고 소개했으며, 앞으로 2년 안에 그리스의 채권 신용등급이 투자 등급이 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그는 "법인세율을 낮추고 복지 지출을 확대하며 대학교육을 받은 젊은층이 그리스로 다시 돌아올 경우 세금우대를 제공할 것"이라며 최저임금 인상, 임금 단체교섭 복원, 경찰과 군인·법관에 대한 급여 인상분 소급 지급도 약속했다.
그는 "우리는 국가의 부활을 상상하고 계획하고 달성할 힘과 지식을 갖고 있다"며, 오랜 긴축 조치에 피폐해진 국민의 삶의 질 개선을 위해 적극 나설 것임을 강조했다.
구제금융 체제를 갓 졸업한 그리스가 곧바로 긴축재정을 포기하고 적극적인 재정 정책을 펼치기로 한 것과 관련해 AFP통신은 "치프라스 총리가 7월 발생한 최악의 화재로 악화한 최저의 지지율을 회복하려 시도하고 있다"고 해석했다.
그리스는 내년 가을 총선을 앞두고 있는 가운데, 치프라스 총리가 이끄는 집권 급진좌파연합(시리자)은 오랜 긴축에 지친 시민들의 외면에 산불 참사까지 겹친 탓에 제1야당인 신민주당에 지지율이 10% 이상 뒤지고 있는 형편이다.



치프라스 총리는 또 이날 연설에서 "그리스는 미국과 강한 전략적 파트너십, 공통의 가치를 추구하기 위한 노력으로 연결돼 있다"고 말하는 등 반미 성향이 강한 진보 좌파 진영 정치인으로는 이례적으로 미국과의 긴밀한 관계를 강조했다고 AP통신은 전했다.
이번 박람회에는 미국이 주빈국으로 선정돼 마이크로소프트, 페이스북, IBM 등 미국 주요 기업이 박람회장에 대거 부스를 차린 가운데, 미국의 윌버 로스 상무부 장관도 초청돼 연설했다.
로스 장관은 연설에서 양국 관계의 밀접성을 강조하는 한편, 미국 기업들이 그리스와의 교역을 증대하길 원한다고 강조했다.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회원국으로, 전통적 우방인 그리스와 미국은 최근 군사 협력을 확대하는 등 관계를 한층 증진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는 최근 그리스의 이웃인 터키가 미국과 갈등을 빚으며 러시아와의 관계를 강화하는 것과 맞물린 조치로 풀이된다.



한편, 이날 테살로니키에서는 치프라스 총리의 연설에 앞서 1만6천 명이 넘는 대규모 시위대가 정부의 경제 정책을 비판하는 시위를 벌였다.
거리를 점거한 시위대는 "우리는 일자리를 원한다. 끝없는 세금은 원하지 않는다" 등의 문구가 적힌 플래카드를 앞세워 8년 간 이어진 정부의 '허리띠 졸라매기'에 불만을 표출했다.



같은 시각, 테살로니키의 다른 한편에서는 이웃 나라 마케도니아와의 27년에 걸친 반목을 끝내기 위해 그리스 정부가 지난 6월 마케도니아와 체결한 국호 변경 합의안에 항의하는 보수주의자 6천명이 격렬한 시위를 벌여, 경찰이 최루탄 등을 발사하며 진압에 나섰다.
그동안 그리스의 반대로 나토와 EU 가입이 좌절된 마케도니아는 그리스와의 합의에 따라 나라 이름을 '북마케도니아'로 바꾸기로 하고, 이달 말 합의안에 대한 국민투표를 진행한다.
그리스는 마케도니아라는 이름이 테살로니키를 중심으로 한 그리스 북부 마케도니아 지방에 대한 영유권을 시사한다며 마케도니아를 인정하지 않아 왔다.
zoo@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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