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前연구관, 영장기각 틈타 반출한 대법 기밀자료 전부 파기(종합3보)

입력 2018-09-10 23:45  

대법 前연구관, 영장기각 틈타 반출한 대법 기밀자료 전부 파기(종합3보)
유해용 변호사 사무실 압수수색 영장 나흘 검토 끝에 세 번째 기각
윤석열 중앙지검장 "지위고하 막론하고 책임 묻겠다"…사법부 조직적 증거인멸 수사



(서울=연합뉴스) 김계연 이지헌 기자 = 법원이 대법원 재판 기밀자료를 무더기로 불법 반출한 고위 법관 출신 변호사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나흘간 검토한 끝에 기각했다. 그러는 사이 해당 변호사는 문제의 문건을 모두 파기해 사법부가 증거인멸을 사실상 방조한 것 아니냐는 논란이 일고 있다.
검찰이 지난 6월 양승태 사법부의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수사를 본격화한 이후 압수수색 문제 등을 둘러싸고 법원 측과 벌여온 갈등도 이번 증거물 파기 사건을 기폭제로 한층 격화하는 양상이다.
10일 검찰 등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수사팀(팀장 한동훈 3차장검사)은 지난 7일 대법원 재판 기밀자료를 무단 반출한 혐의를 받는 유해용(52) 전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의 변호사 사무실 등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청구했으나 1개 자료를 제외하고는 이날 모두 기각됐다.
검찰이 유 변호사의 사무실을 압수수색하기 위해 영장을 청구했다가 사실상 전부 기각된 것은 이번이 세 번째다.
법원행정처는 이날 저녁 유 변호사가 "(6일) 새로운 압수수색 영장 청구가 기각된 뒤 출력물 등은 파쇄했고, 컴퓨터 저장장치는 분해해 버렸다"고 알려왔다고 전했다.
법원행정처는 유 변호사가 전날 검찰 조사에서 이런 사실을 알리지 않은 점을 확인하고 검찰 수사팀에 자세한 경위를 전달했다고 덧붙였다.


검찰은 지난 5일 유 변호사의 재판개입 의혹과 관련해 사무실을 압수수색하는 과정에서 그가 올해 초 법원에서 퇴직할 때 다른 상고심 사건에 대한 재판연구관 검토보고서와 판결문 초고를 대량 가지고 나온 사실을 파악했다.
당시 검찰은 박근혜 전 대통령 '비선 의료진' 김영재 원장의 특허소송 관련 문건 1건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만 발부받은 상태였다. 검찰은 곧바로 불법반출 문건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청구했으나 이튿날 기각됐고, 7일 다시 청구한 영장도 이날 기각됐다.
법원행정처는 유 변호사로부터 불법 반출된 문건들을 회수하겠다는 입장이지만, 검찰은 수사대상인 법원행정처의 개입 자체가 조직적 증거인멸 시도라고 보고 있다.
여기에 법원이 이례적으로 나흘간 압수수색 영장의 발부 여부를 검토하는 사이 문건이 전부 파기된 것으로 확인된 점을 검찰은 심각하게 보고 있다. 증거인멸 혐의점을 둔 검찰의 수사 확대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유 변호사는 지난 5일 첫 압수수색 당시 "영장을 가져오라"며 불법반출 자료의 임의제출을 거부했다. 검찰이 세 번째 압수수색 영장을 청구해놓고 발부를 기다리는 사이 유 변호사는 이미 자료를 모두 파기하고 검찰 조사를 받았다.
검찰은 유 변호사가 들고 나간 대법원 기밀자료가 최소 수백 건에서 최대 수만 건에 달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가 2014년부터 올해 초까지 선임·수석재판연구관을 지내며 대법원 주요 재판에 대부분 관여해온 만큼 이 기간 법원행정처와 대법원간 재판거래의 연결고리 역할을 한 것으로 의심한다.
실제로 옛 통합진보당 의원들이 낸 행정소송을 전원합의체에 넘길지를 검토한 법원행정처 문건이 유 변호사를 통해 대법원 재판부에 전달된 정황이 검찰 수사 과정에서 포착됐다. 수사팀은 불법 반출된 자료들이 통진당·전교조·강제징용 소송 등 재판거래 의혹 수사가 진행 중인 사건들과 무관하지 않다고 보고 있다.


검찰의 반발은 어느 때보다 거세 보인다.
검찰은 이례적으로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 명의로 입장을 내고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이러한 증거인멸 행위에 대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엄정한 책임을 묻겠다"고 밝혔다. 법원이 압수수색 영장 발부를 미루면서 시간을 벌어주는 방식으로 증거인멸을 돕지 않았는지, 이 과정에 법원행정처가 관여한 것은 아닌지 철저히 수사하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앞서 박범석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대법원 기밀자료가 불법 반출됐다는 검찰의 압수수색 영장 청구사유에 대해 "대법원 입장에서 볼 때 매우 부적절한 행위이나 죄가 되지 않는다"며 기각했다.
또 "유 전 연구관이 반출·소지한 자료를 수사기관이 압수수색해 취득하는 것은 재판의 본질적 부분을 침해할 수 있다"는 사유도 제시했다.
이에 대해 검찰 관계자는 "사실관계가 확정도 되기 전인 압수수색 단계에서 어떠한 죄도 안된다고 단정하는 영장판사의 판단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라고 비판했다.
검찰은 유 변호사의 문건 불법반출을 공무상비밀누설뿐 아니라 공공기록물관리법·형사사법절차촉진법·개인정보보호법 등 여러 실정법에 저촉되는 심각한 위법 행위로 받아들이고 있다.
박범석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이날 통진당 소송 관련 사건 자료만 압수수색을 허용했다. 이 자료에 대해서도 법원행정처 관계자가 참여한 가운데 특정 사건번호로 검색해 나온 문건만 압수하도록 범위를 제한했다.
검찰은 통진당 관련 소송 문건을 작성하는 등 유 전 연구관이 연루된 혐의의 핵심 범행주체인 법원행정처가 압수수색에 참여해야 할 이유가 없다고 주장했다. 또 이미 대법원 문건이 불법으로 반출돼 재판의 본질적 부분이 침해된 상황에서 법원이 순환논리로 수사를 무조건 막고 있다고 지적했다.
앞서 검찰은 불법반출 문건의 압수수색 영장이 기각되자 법원행정처에 공문을 보내 유 변호사를 고발해달라고 요청했지만, 법원은 이를 거절했다. 검찰은 혐의 입증 자료를 보강해 유 전 연구관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다시 청구할 방침이다.
pan@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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