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주최 '세계 망명정부와 임시정부' 국제 심포지엄
"건국 본질은 법적인 것 아니라 정치적인 것"…'1919년 건국'에 힘 실어
(서울=연합뉴스) 박초롱 기자 = 1919년 3·1 운동을 전후로 각지에서 세워진 한성정부(서울), 대한국민의회(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상하이임시정부가 통합한 지 99주년을 맞는 날, 임시정부 전문가들이 서울에 모였다.
11일 오후 종로구 종로타워 '위워크'에서는 서울시 주최로 '세계 망명정부와 임시정부' 국제심포지엄이 열렸다. 내년으로 다가온 3·1 운동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서다.
3·1 운동의 정신을 이어받은 임시정부는 1919년 수립돼 1945년 귀국할 때까지 모진 세월을 견뎠지만, 그 어떤 나라로부터도 승인받지 못했다. 이에 따라 임시정부 법통을 둘러싼 학문적·정치적 논쟁이 아직까지 이어지고 있다.
올해 광복절 즈음해서도 대한민국 건국일을 임시정부 수립일인 1919년 4월 13일로 봐야 한다는 진보진영 주장과 이승만 정부가 출범한 1948년 8월 15일이라는 보수진영 주장이 맞붙었다.
이날 열린 심포지엄에서도 임시정부의 '승인' 문제를 둘러싼 논의가 이어졌다.
이해영 한신대 교수는 임정 승인 문제는 국제법적이라기보다 국제정치적인 것이라고 봤다. 강대국 힘의 정치(power politics) 사이에서 힘없는 나라가 겪을 수밖에 없었던 일이라는 것이다. 중국·미국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하는 역학관계가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 교수는 "임정은 역량의 상당 부분을 국제법적 승인을 받기 위한 일에 썼다"며 "특히 중국, 미국, 영국의 승인을 받는 데 필사적으로 매달렸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당시 국제사회에서 중국의 발언권이 약해지고 미국의 영향력·발언권이 압도적으로 커지면서 미국이 임시정부를 어떻게 보는지가 핵심 중의 핵심이 됐다"며 "결국 관건은 한미관계였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미국은 임정 승인을 통한 군사적 실익이 크지 않다고 판단했다. 반일전선에서 균형추를 움직일 만한 군사적 능력 또한 임정에 없었다.
그러나 임정의 미승인이 폄하 근거가 되는 것은 아니라고 이 교수는 밝혔다.
그는 "미국·영국·중국에 의한 국제법적 미승인은 주로 정치적인 이유 때문"이라며 "이를 근거로 1948년 건국설을 주장하는 것은 과도하다"고 말했다.
이어 2차 대전 이후 현대 국제법에선 인민자결권이 본질적 원칙이기 때문에 임정의 정당성이 인정된다며 "건국의 본질은 법적인 것이 아니라 정치적인 것"이라고 강조했다.
상하이임시정부 활동을 연구해온 쑨커즈 중국 푸단대 역사학과 교수는 임시정부가 한국 독립을 위한 초석을 다졌다고 평가했다. 정부 수립 후 외교활동, 무장투쟁, 의열투쟁을 통해 세계에 한민족의 독립 의지를 보여줬다는 것이다.
쑨커즈 교수는 "임시정부는 독립운동을 이끄는 동시에 중국 혁명 활동에도 적극 가담했다"며 "특히 항일전쟁에 가담한 점은 중국 근대사, 한중관계사에서도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고 밝혔다. 중국 국민당 정부는 1932년 윤봉길 의거 이후 임시정부를 본격적으로 지원하기 시작했다.
서해성 서울시 3·1운동 100주년 기념사업 총감독은 "우리 역사상 국가의 성질이 가장 혁명적으로 바뀐 사건이 3·1 운동이며, 3·1 운동이 제도화된 것이 바로 대한민국 임시정부"라며 "임시정부를 역사적으로 '승인'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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