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평도시유적전시관 개관…도심 건물터·유물 그대로 보전한 첫 사례
(서울=연합뉴스) 박초롱 기자 = 땅속에 묻혀 있던 조선 초기∼일제 강점기 600년의 역사가 종로 한복판 고층 건물 지하에서 깨어났다.
26층짜리 건물을 짓는 과정에서 발굴된 옛 건물터, 골목길과 1천점이 넘는 생활 유물이 고스란히 보존됐다.
서울시는 종로구 공평동 센트로폴리스 지하 1층 전체를 '공평도시유적전시관'으로 만들어 문을 연다고 12일 밝혔다. 연면적 3천817㎡의 서울 최대 규모 유적 전시관이다.
전시관의 투명한 유리 바닥과 관람 데크를 따라 걸으며 발아래로 16∼17세기 건물터와 골목길을 관람할 수 있도록 했다.
2014∼2015년 공평 1·2·4지구 재개발에 따른 문화재 발굴 때 나온 결과물이다. 당시 공평동 유적은 '조선의 폼페이'란 별명을 얻으며 보존이 필요하다는 여론이 힘을 얻었고, 3년 만에 전시관 개관으로 이어졌다.
전시관에선 각각 다른 형태의 집터 3개를 보존해 조선시대 한양에 어떤 집이 있었는지 체험해볼 수 있다.
'전동 큰 집'이라고 이름 붙인 집터 앞에는 지금은 사라진 가옥을 10분의 1 크기로 축소한 모형을 뒀다. 당시 모습과 현재 집터를 비교해볼 수 있다.
'골목길 ㅁ자 집' 터에서는 가상현실(VR) 기기를 쓰고 디지털로 복원된 집 내부를 둘러볼 수 있다. '이문안길 작은 집'은 터만 남아 있는 곳에 실제와 같은 크기로 복원한 가옥이다.
조선시대부터 수백 년간 사용된 골목길 42m는 관람객이 실제로 걸어볼 수 있도록 했다.
청동화로, 거울, 일제강점기 담뱃가게 간판 등 당시 생활상을 보여주는 유물 1천여 점도 만날 수 있다. 인근 청진동 유적에서 발굴된 유물 20점도 함께 전시된다.
'참조기 이석' 등 한 곳에서 다량 출토된 생선 뼈를 통해 당시 한양 사람들이 어떤 음식을 즐겨 먹었는지도 알 수 있다.
서울 도심 유적이 원상태로 전면 보존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인근 청진동이나 공평 3·5·6구역에서도 재개발 과정에서 피맛길 등 조선시대 유적이 드러났으나 유적의 일부분만 떼어내 다른 곳에 옮겨 전시했다. 나머지는 파묻히거나 지하 주차장 등이 됐다.
공평도시유적전시관은 도심 재개발 과정에서 개발-보존의 공존을 유도한 첫 사례이기도 하다.
서울시가 문화재를 보존하면 건물 용적률을 높여줘 손실을 보전해주겠다고 제안했고, 민간 사업자가 이를 받아들였다.
당초 용적률은 999%로 건물 A동을 22층, B동은 26층으로 지을 수 있었으나 용적률 인센티브 200%를 받아 A·B동 모두 26층으로 올렸다.
서울시는 이처럼 개발-보존이 공존하는 방식을 '공평동 룰(Rule)'로 이름 붙여 앞으로 도시 개발 과정에서 발굴되는 매장 문화재 관리 원칙으로 삼을 계획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개관식에 참석해 "지금부터라도 서울시에서 발굴되는 모든 유적을 그대로 보존해야 하며, 안 되면 (예산을 들여 땅을) 사기라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시장은 "공평동 룰이 적용되는 곳이 조만간 10개 더 생겨날 것이라고 들었다"며 "이렇게 되면 서울은 역사 도시로서 정체성을 확고히 하게 된다"고 말했다.
서울시 총괄 건축가를 거쳐 국가건축정책위원장으로 활동하는 승효상 건축가는 "상업건물에서 지하 1층은 식당, 바(bar) 등이 들어올 수 있는 황금의 자리"라며 이런 지하 1층 전체를 전시관으로 만든 데 의미를 부여했다. 그는 "공평동 룰이 다른 곳에도 적용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공평도시유적전시관의 관람 시간은 평일 오전 9시∼오후 6시이며 관람료는 무료다. 공휴일을 제외한 매주 월요일, 1월 1일은 휴관한다.
chopar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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