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판 홀로코스트' 형제복지원 비상상고로 진실 밝혀지나

입력 2018-09-13 11:56   수정 2018-09-14 16:35

'한국판 홀로코스트' 형제복지원 비상상고로 진실 밝혀지나
사상 최악의 인권유린 사건 피해자 명예회복 계기 주목

(부산=연합뉴스) 김선호 기자 = 대검 검찰개혁위원회의 권고로 대법원에 비상상고 될 것으로 보이는 형제복지원 사건은 '한국판 홀로코스트'라고 불리는 우리나라 역사상 최악의 인권유린 사건이다.



정부 훈령을 근거로 운영된 형제복지원은 경찰, 부산시 비호 속에 박정희 정권 시절부터 전두환 정권 때까지 13년간 운영되며 수많은 피해자가 나왔지만 31년이 지난 지금도 제대로 된 진상규명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1960년대 초 부산 용호동에서 아동보호시설로 시작된 형제복지원은 1975년 부산시와 부랑인 일시보호사업 위탁계약을 맺으면서 '괴물'로 성장했다.
형제복지원은 거리의 부랑인을 선도해야 한다는 군사정권의 정책에 편승해 매년 3천 명 이상의 무연고 장애인, 고아를 비롯해 일반 시민들까지 끌고 가 불법 감금했다.
이 과정에서 경찰도 무고한 시민을 형제복지원에 강제로 데려갔다.
일단 형제복지원에 들어가면 군대식으로 집단 수용해 하루 10시간 이상 강제노역을 시켰으며 저항하면 굶기고 구타하거나 심지어 살해해 암매장까지 했다.
여성 수용자에 대한 성폭행도 스스럼없이 벌어졌다.
1975년부터 형제복지원의 참상이 세상에 처음 알려진 1987년까지 '확인된 것만' 551명이 숨졌을 정도다.
사망자 중 일부는 300만∼500만원에 의과대학의 해부용 시신으로 팔려나갔다.
형제복지원이 '부랑인'을 감금한 근거는 부랑인 신고·단속·수용·보호 등에 관한 업무처리 지침인 당시 내무부 훈령 제410호였다.
훈령이 정의한 부랑인은 '일정한 정주가 없이 관광업소, 접객업소, 역, 터미널 등 많은 사람이 모이거나 통행하는 곳과 주택가를 배회하는 걸인, 껌팔이, 앵벌이 등 사회질서를 해치는 모든 사람'이었다.
얼마든지 자의적으로 해석될 수 있었고 실제 수많은 무고한 시민이 영문도 모른 채 형제복지원으로 끌려와 고초를 당하고 숨졌다.



형제복지원이 부랑자들을 수용한 행위는 경범죄처벌법, 사회복지사업법, 생활보호법 등 어떤 법률에도 근거가 없었다. 행정규칙에 불과한 내무부 훈령을 근거로 했다고 하나 이는 불법 강제 구금에 지나지 않는다.
10여 년간 강제 구금과 노역, 인권유린이 자행되던 형제복지원은 1986년 말 산행하던 울산지청의 한 검사가 우연히 울산에 박인근 형제복지원 원장의 목장을 만들려고 강제노역하는 수용자를 발견하면서 실상이 드러났다.
재판에 넘겨진 박인근 원장은 건축법 위반, 업무상 횡령 혐의만으로 징역 2년 6개월의 '솜방망이' 선고를 받고 형을 산 뒤 풀려났다. 박 원장은 정작 특수감금 혐의는 무죄를 받았다.
오히려 박 원장은 전두환 정권으로부터 '부랑아 퇴치 공로'를 인정받아 1981년과 1984년 각각 국민포장과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았다. 행정안전부는 지난 7월에서야 박 원장에 수여된 훈포장 2개를 박탈했다.
이후 박 원장은 수차례 형제복지지원재단, 느헤미야 등으로 법인명을 바꾸고 20년 넘게 각종 수익사업을 하며 재산을 불려왔다.
박 원장은 부랑인보호시설 운영 당시 매년 10억∼20억원의 국고보조금을 받아왔었다.
또 부랑인 공익사업을 한다는 이유로 헐값에 불하받은 국유림을 수용자의 강제노역으로 '형제복지원 왕국'을 건설하고 이후 2001년 건설사에 팔아 200억원이 넘는 시세차익을 남겼다.
박 원장은 법인 정관을 개정해 스포츠센터, 해수온천 등 복지시설과 동떨어진 각종 수익사업에 손을 댔다.
이 과정에서 부산시는 법인에 총 3차례에 걸쳐 60억원의 장기차입허가를 내줬고 법인이 원금과 이자 등을 갚지 못하자 2009년 118억원의 장기대출을 다시 승인해줬다.
시민사회단체는 법인재산 외에 박 이사장 친인척 일가가 보유한 국내외 재산 규모가 1천억원대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형제복지원은 2015년 한 법인에 매각됐으며 이후 부산시가 형제복지원 설립 55년 만에 법인 허가를 취소한 상태다.
2014년에는 아들과 함께 재단 공적자금을 빼돌린 혐의 등으로 기소돼 재판을 받던 박 원장은 2016년 6월 전남의 한 요양병원에서 지병이 악화해 숨졌다.
박 원장의 아들은 횡령 혐의로 징역 3년을 선고받고 지난해 출소했다.
수천 명에 이를 것으로 보이는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은 지난 세월 후유증을 안고 숨죽여 살아오다가 피해자 한종선 씨의 국회 앞 1인 시위와 시민단체·피해자의 노력 끝에 세상에 다시 알려졌다.
하지만 형제복지원 사건의 진상규명과 피해자를 지원하는 형제복지원 특별법은 19대 국회에서 통과하지 못해 자동 폐기됐고 20대 국회 들어서 더불어민주당 진선미 의원이 다시 법안을 발의했지만 계류 중이다.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은 국회 앞에서 300일 넘게 천막 농성을 하며 형제복지원 진상규명 특별법 통과를 요구하고 있다.
형제복지원 사건이 비상상고로 사법부의 재판단을 받게 되면 참혹한 인권침해 실상이 드러날지 주목된다.
더불어 특별법이 제정되면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의 명예회복과 박 원장 일가의 재산 환수 등이 이뤄질지도 관심을 끈다.


wink@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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