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신고약속→종전선언→신고,핵시설동결-종전선언 동시이행 등 중재안 거론
북미 교착국면 뚫고 연내 종전선언 성사되려면 김정은 구체 조치 약속 필요
(서울=연합뉴스) 조준형 기자 = 18∼20일 평양 남북정상회담의 최대 관전 포인트는 문재인 대통령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으로부터 어떠한 비핵화 조치를 유도해낼지라는 데는 이견이 없어 보인다.
남북관계와 북미관계의 '선순환'을 추구하는 우리 정부는 이번 정상회담을 교착국면의 북미 협상을 견인해낼 기회로 보고 있다.
전문가들은 제2차 북미정상회담 및 연내 종전선언의 성사 여부, 남북 간 군사적 긴장 완화 조치, 경제협력 진전 등의 향배가 이번 평양 정상회담에 달려 있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지난 5일 문재인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평양을 다녀온 정의용 청와대 안보실장이 그 이튿날 브리핑에서 "남북정상회담에서는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정착 및 공동번영을 위한 문제, 특히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실천적 방안을 협의하기로 했다"고 밝혀 눈길을 끌었다. 남북 정상이 만나 구체적인 비핵화 논의를 할 것이라는 우회적 표현이었기 때문이다.
과거에도 우리 측은 남북대화에서 비핵화 문제가 다뤄지길 희망했으나 북측은 '미국 때문에 핵무기를 만든 만큼 미국과 협상할 일'이라는 논리를 대며 피해왔다.
북한의 태도가 바뀐 것은 4·27 남북정상회담에서였다. 남북 정상 간에 핵 문제 논의가 이뤄진 것이다. 그런데도 논의의 수준은 김정은 위원장이 완전한 비핵화 의지를 확인하는 정도였다. 이는 비핵화의 목표와 방향성에 대한 것으로 더 구체화한 방법론 논의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남북 정상회담이 세 번째 열릴 정도로 남북관계가 진전되는 상황에서 북미 관계 진전과 선순환이 되도록 해야 한다는 요구가 커지고 있다. 이제는 남북대화에서 '비핵화를 위한 실천적 방안'이 논의되는 것이 '당위'라는 지적도 나온다.
다시 말해 이번 평양 남북정상회담에서 문 대통령이 김 위원장으로부터 구체적 비핵화 조치에 대한 이행 의지와 계획을 끌어낸다면 차후 북미 협상에 '탄력'을 줄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결국, 문 대통령의 중재역할이 중요해진 셈이다.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우리의 창의적 해법을 북한이 수용한다면 비핵화의 실천적 조치가 마련될 것이고, 그것을 이달 말 한미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받아들인다면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4차 방북에서 최종안을 만들어 북미 정상회담에서 합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남북정상회담에서의 비핵화 논의는 결국 북한이 요구하는 종전선언과 연결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중요성은 지대하다. 작금의 교착국면을 돌파할 핵심 사안이어서다.
현재 북한은 핵실험장 폐기와 미사일 엔진 실험장 해체 행보 등 일부 비핵화 조치를 취했다면서 미국이 종전선언으로 화답해주면 다음 비핵화 조처를 하겠다는 입장인 반면 미국은 추가적인 비핵화 조치가 선행돼야 한다고 맞선다. 미국은 이참에 북한이 핵물질과 핵시설은 물론 핵무기를 망라한 '핵신고'를 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핵신고로 분명한 비핵화 로드맵을 공표하라는 것이다.
아울러 북한은 '미국 때문에 핵을 가졌는데, 미국의 구체적 보상조치 없이 비핵화 과정에 들어갈 수 없다'고 주장하고,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비핵화 진전 없이, 양보로 보일 수 있는 종전선언을 했다가는 정치적 후폭풍을 감당할 수 없다'고 꺼린다.
결국, 비핵화-평화체제 구축의 입구에서 헤매는 북미가 만날 수 있는 지점, 즉 종전선언에 연결할 북한의 비핵화 조치를 유도하는 일이 문 대통령의 최대 미션으로 부상했다. 특사단이 김 위원장으로부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첫 임기(2021년 1월까지) 안에 비핵화를 하자는 '시간표'와, 주한미군 철수 및 한미동맹 약화는 종전선언과 무관하다는 언급 등을 받아낸 상황에서 북미 간 타협점 도출에 필요한 실질적 비핵화 내용을 남북정상회담에서 약속받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북미 협상의 '교착점'은 핵시설, 핵물질, 핵탄두 등의 목록을 담은 핵신고 여부다. 그것은 신고 내용의 정확성을 확인하기 위한 검증, 즉 사찰을 수반하는 것이다. 신고-검증-폐기로 이어지는 통상적인 비핵화 절차를 북한에도 그대로 적용하겠다는 입장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북한은 자신들의 핵심적인 군사력을 그대로 노출하는 핵 신고에 소극적인 반응을 보인다. 1990년대 1차 북핵 위기도 자신들의 플루토늄 추출량 신고 내용에 대한 국제원자력기구(IAEA) 검증 과정에서 불거졌고, 2차 북핵 위기를 봉합한 2005년 9·19 공동성명 체제가 파탄 난 것도 검증 의정서 채택을 둘러싼 갈등이 직접적 계기가 됐다는 점 등 때문에 북한은 핵 신고를 꺼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 정부는 처음에 김 위원장의 '핵 신고 약속→종전선언→북한의 핵 신고 이행'으로 이어지는 주고받기식 조치를 가능한 중재 방안의 하나로 추진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이 종전선언이 이뤄져야 후속 비핵화 조치에 나서겠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자 핵 신고에 대한 '약속어음'을 미리 끊어주는 것으로 종전선언에 대한 미국의 유연한 태도를 유도하자는 취지였다.
이후 핵 신고를 둘러싼 북미 간 입장 차이가 쉽게 좁혀지지 않자, 우리 정부는 신고를 잠시 뒤로 미루고 '우라늄농축시설을 포함한 영변 핵시설의 가동중단 또는 불능화'와 종전선언을 연결하는 방안도 검토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이처럼 정부가 검토해온 여러 아이디어가 있지만 결국 상대측 합의 이행 의지에 대한 의문이 장애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게 외교가의 대체적 진단이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이번 남북정상회담에서는 비핵화 협상이 막혀있는 지점이라 할 수 있는 핵 목록 신고와 관련해서 북측의 전향적 입장을 받아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신 센터장은 "결국 운전자, 중재자 또는 촉진자로서 한국의 역할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신고-검증에 관한 김정은 위원장의 분명한 메시지가 필요하고, 그것을 받아낸다면 성공적인 정상회담으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조성렬 연구위원은 "북미가 각자 취할 조치의 가역성과 불가역성이 문제인데, 일정 정도의 '가역성'을 상호 보장한다면 타협점이 생길 수 있을 것"이라며 "미국이 북한의 핵 신고와 함께 핵무기의 약 60% 제거를 1차로 요구하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미국과 러시아의 입회하에 그 비율 만큼의 핵무기를 해체한 뒤 해외로 반출하지 않고 국제사회 감시를 조건으로 북한 영토 안에 보관하는 식으로 절충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jhch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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