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청, 면담 내용 공개 안해…CNN "美서 교황 신뢰도 급락"
교황, 성학대 의혹 받는 또 다른 미국 주교에 대한 조사 명령
(로마=연합뉴스) 현윤경 특파원 = 가톨릭 교회가 사제들에 의한 아동 성폭력 추문과 이를 은폐한 의혹으로 위기에 몰린 가운데, 프란치스코 교황이 13일(현지시간) 논란의 진원지인 미국 가톨릭교회의 대표단과 면담해 귀추가 주목된다.
교황은 이날 바티칸에서 미국 가톨릭주교회의(USCCB) 의장인 다니엘 디나르도 추기경, 교황청 아동보호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숀 패트릭 오말리 미국 보스턴 대주교(추기경), 브라이언 브랜스필드 USCCB 사무총장 등 미국 교회 대표단을 만났다.
교황은 이 자리에서 최근 미국 가톨릭을 뿌리째 뒤흔들고 있는 성직자에 의한 성폭력 추문과 은폐 의혹 등을 해소하기 위한 방안 등을 논의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교황청은 이날 면담의 내용 등을 담은 자료는 배포하지 않은 채 교황이 미국 교회 대표단과 함께 찍은 사진만을 공개했다.
미국 가톨릭계는 미국 사회에서 신망이 높던 시어도어 매캐릭 전 워싱턴 대교구장이 과거에 미성년자들과 성인 신학생들을 성적으로 학대했다는 의혹이 불거지면서 지난 7월 추기경직에서 사퇴한 데 이어, 지난 달에는 70년에 걸쳐 가톨릭 사제 301명이 1천명이 넘는 아동을 성적으로 학대했다는 조사 결과를 담은 펜실베이니아주 검찰의 보고서가 공개되자 발칵 뒤집힌 상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 보고서 공개 직후 13억명에 달하는 전 세계 가톨릭 신자들 앞으로 이례적인 서한을 보내 "사제들에게 어린 시절 성적으로 학대를 당한 피해자들의 고통이 오랫동안 방치되고, 묵살됐다"고 인정하며, 이런 일의 재발과 은폐를 막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을 다짐했다.
하지만, 가톨릭의 성 학대 추문은 곧이어 지난 달 26일 미국 주재 교황청 대사 출신인 카를로 마리아 비가노 대주교의 폭로로 교황에게까지 불똥이 튀며 가톨릭 교회의 위기를 증폭시키는 형국으로 흘렀다.
진보적인 프란치스코 교황을 맹렬히 비판해온 보수파의 일원인 비가노 대주교는 가톨릭 보수 매체들에 보낸 편지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취임 직후부터 매캐릭 전 워싱턴 대주교(추기경)의 성 학대 의혹을 알고도, 이를 은폐하는 데 가담했다고 주장하며 교황의 퇴위를 촉구했다.
이날 진행된 교황과 미국 가톨릭 대표단의 면담은 지난 달 18일 디나르도 추기경의 요청으로 성사된 것으로, 디나르도 추기경은 매캐릭 전 추기경의 성추행 및 은폐 사건에 대해 교황청의 전면적인 조사를 요구해왔다.
그는 교황청의 상당수 관리가 2000년대 초반부터 매캐릭 전 추기경의 비행을 공공연히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합당한 조치를 취하지 않은 채 그를 중용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교황청의 해명을 촉구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AP통신에 따르면 디나르도 추기경 자신도 최근 신도들을 성적으로 학대했다는 혐의로 체포된 휘하 사제의 비행을 막기 위해 충분한 역할을 하지 않았다는 의혹을 받는 형편이다.
한편, 교황은 이날 면담에 앞서서는 성인 신자들을 상대로 성적으로 부적절한 행동을 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미국 웨스트버지니아 주의 휠링-찰스턴 교구의 주교 마이클 브랜스필드의 사퇴를 수락하고, 그의 혐의에 대한 조사를 명령했다고 교황청은 밝혔다.
또, 볼티모어 대교구의 월리엄 로리 대주교로 하여금 휠링-찰스턴 주교가 새로 임명될 때까지 해당 교구를 관할할 것도 함께 지시했다.
미국에서 이처럼 사제들에 의한 성폭력 파문이 가라앉기는커녕, 새로운 가해자들에 대한 의혹이 속속 드러나며 증폭될 기미를 보이자 13억 가톨릭 신자들의 수장인 프란치스코 교황에 대한 신뢰도도 크게 하락하고 있다.
보도채널 CNN이 지난 12일 공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프란치스코 교황을 지지한다고 응답한 미국인은 절반에 못 미치는 48%에 그쳤다. 가톨릭 신자 사이에서 교황의 지지율도 18개월 전 83%에서 63%로 20%포인트나 빠졌다.
한편, 성직자에 의한 성학대 파문의 파장이 미국은 물론 칠레, 호주, 독일 등 세계 주요 지역까지 확산되자 위기감을 느낀 교황청은 내년 2월 하순에 교황청으로 각 나라 가톨릭 교회의 최고 결정 기구인 주교회의 대표를 불러모아 교회 내 성학대 예방과 아동 보호 대책 등을 논의하기로 12일 결정한 바 있다.
하지만, 이런 결정에 대해 일각에서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가톨릭 교회를 뒤흔들고 있는 이러한 급박한 문제에 대한 논의의 장이 왜 무려 6개월 후에야 열리는지에 대한 의구심이 존재할 뿐 아니라, 회동의 당사자들인 각국 주교 책임자 상당수가 성학대 추문 은폐 의혹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AP통신은 지적했다.
미국 시라큐스 대학 역사학과의 마거릿 수잔 톰슨 부교수는 AP통신에 "참신하고, 의혹에 연루되지 않은 목소리와 통찰력을 제공할 수 있는 평신도를 비롯한 다른 사람들은 왜 논의에 참여를 시키지 않는지 모르겠다"고 꼬집었다.
ykhyun1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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