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파괴된 도시니 자매결연' 동서독 지자체 교류…남북에선

입력 2018-09-14 05:00  

'우린 파괴된 도시니 자매결연' 동서독 지자체 교류…남북에선
처음에 동독이 원했다가 나중엔 서독이 '구애'…통일전 5년간 교류 활발
양측 주민간 유대감 형성·선입견 해소 효과…경제적 효과 기대감



(베를린=연합뉴스) 이광빈 특파원 = 독일 통일 전 동서독 지방자치단체 간의 교류가 남북한 교류 증진의 효과적인 방법론 중 하나로 조명을 받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13일 남북정상회담 준비위원회 원로자문단을 만난 자리에서 남부 지방자치단체 간 교류의 필요성이 제기되면서다.
자문단장인 임동원 한반도평화포럼 공동이사장은 "지방자치단체의 교류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독일에서는 동서독이 62건의 도시 간 협력사업을 벌여 청소년과 학생들 교류를 했다"면서 "이를 통해 민족 동질성 회복에 크게 기여했다"고 강조했다.
임 이사장이 언급한대로 동서독 간에는 지방자치단체 간 교류가 활발했다. 그것도 통일을 5년 앞두고서다.
지방자치단체 간의 인적 물적 교류가 통일의 자양분이 됐음은 물론이다.
애초 지방자치단체 간 교류는 동독이 제안했었다. 1950∼1960년대 냉전 기간 동독을 고립시키려는 서독의 정책에 대응해 동독이 지방자치단체 간 접촉 및 자매결연을 추진했다.
동독은 서독의 방해로 외교 무대에서 국가로 승인받기 쉽지 않자 서방국가의 지방자치단체들과의 자매결연으로 이를 타개하려 했다.
동독은 1967년까지 프랑스의 16개 도시, 이탈리아의 1개 도시와 자매결연을 했다.
그러나 서독에서 1969년 사회민주당이 자유민주당과의 연정으로 집권해 동방정책을 실시하면서 상황이 역전됐다.
빌리 브란트 총리가 이끄는 서독 정부 측은 적극적으로 자매결연을 지원하고 나섰으나, 동독은 어느 정도 국제적인 승인을 받은 터여서 교류에 시큰둥해졌다.
지방자치단체 간 자매결연은 1985년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이뤄졌다. 그해 가을 소련이 서독의 2개 도시와 자매결연을 한 점에 영향을 받았다. 동서 간 냉전체제가 다소 누그러진 배경에서다. 소련도 동독을 등 떠밀었다.
1989년 9월까지 62개 도시 간에 자매결연이 성사될 정도로 급속도로 관계 개선이 이뤄졌다.
자매결연을 하게 된 사연 보따리도 한가득했다. 함부르크와 동독의 드레스덴은 2차 세계대전 당시 가장 심하게 파괴된 도시 중 하나라는 이유로 연결됐다.
서독의 뤼벡과 동독의 비스마르는 14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 찾은 인연으로 손을 잡았다. 한자동맹에 가담했다는 공통점에서다.
자매결연을 놓고 동서독 당국 간의 셈법은 확연히 달랐다.
서독 정부는 지방자치단체 수준에서의 교류 증대가 공산정권 아래 제약을 받는 동독 주민들의 자결권을 늘릴 수 있는 수단으로 여겼다. 인적 교류를 통해 정보와 사상이 자연스럽게 교류될 수 있는 점도 노렸다.
반면, 동독 정부는 자매결연 확대가 서독 정부로부터 완전히 외국으로서 승인을 받는 중요한 단계로 간주했다. 또한, 체제 내적으로도 정통성 부재 문제를 해결해줄 수단으로 여겼다. 서독에 왕래하고 싶은 동독 주민들의 욕구를 해소해 체제 내 압력을 줄이기 위한 방법이기도 했다.
지방자치단체 간 교류는 일반 주민들이 참여하는 스포츠와 청소년 교류로, 신문교환, 공동 문화행사 등 다채로웠다.
동독 측은 세계 평화와 여성의 역할 등을 강조하는 행사를 요구해 관철하기도 했다. 자본주의 국가가 전쟁을 유발하는 등 호전적이고 여성의 사회적 권리 확대를 경시한다는 점을 부각하려는 정치적 속셈이었다.
동독 측은 연간 사업계획서에 합의된 내용을 벗어난 접촉이나 사업 추진에 대해 불허해 교류의 확대에 제한이 따르기도 했다.
동독의 서독 방문단 구성이 체제옹호세력을 중심으로 이뤄진 점도 한계점으로 꼽혔다. 게다가 서독의 지방자치단체는 자율권이 강했지만 중앙집권적인 동독은 사정이 달랐다.
그럼에도 지방자치단체 간 교류는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
당시 서독에서는 동독 주민과 접촉하는 데 공포감이 사라지고 동독 주민들의 생활 실상을 접하게 돼 선입견을 제거하는 데 도움이 됐다는 평가가 주를 이뤘다.
독일은 역사적으로 일찌감치 지방분권이 확립돼 지방자치단체의 자율성이 강하다. 이 때문에 한반도의 현실에 동서독의 사례를 그대로 적용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한반도에서도 양측 주민 간 유대감이 형성되고, 다방면으로 양측 간 모세혈관이 촘촘하게 이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대북경제사업도 민간단체보다 안정적인 재정 상황에서 추진할 수 있는 장점도 있다.
이미 2000년에는 남북 강원도가 교류협력을 위한 합의서를 체결하고 연어 자원 보호 증식 사업과 산림 병해충 공동 방제사업 등을 추진하기로 합의한 경험이 있다.
독일의 한반도 문제 전문가인 베르너 페니히 베를린자유대학 정치학 명예교수는 최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남북 간에 "학교 간, 대학 간, 지역 간에 많은 협력 프로그램이 진행돼야 한다"면서 "인프라 프로젝트는 (국가 주도의) 포괄적인 방식 대신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이뤄져야 하고 남측의 재벌과 신자유주의로 의해 신식민주의 현상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고 당부했다.
lkbin@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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