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 출판포럼에 일본·중국 서점대표 오치아이 게이코·첸샤오화
(파주=연합뉴스) 임미나 기자 = "평화의 기본 조건은 모든 사람이 성별이나 직업, 연령, 자라온 환경, 신체조건에 따라 등급 매겨지지 않고 살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적극적인 의미의 평화는 가능한 한 경제적 격차가 없고 폭력이 존재하지 않는 것입니다. 다음 세대가 책을 통해 이런 것을 생각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일본의 유명 작가이자 어린이·여성도서 전문서점 '크레용하우스'를 운영하는 오치아이 게이코(落合惠子)는 14일 파주출판도시 '지혜의숲2'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렇게 강조했다.
그는 14~16일 열리는 '파주북소리 2018' 행사 중 하나인 '제13회 파주북시티 국제출판포럼' 참석차 내한했다. 이번 포럼 주제는 '평화를 부르는 책의 힘'이다.
오치아이 게이코는 도쿄에서 1976년부터 크레용하우스를 열어 운영하면서 평화운동과 여성운동, 환경운동에도 앞장서 왔다. 평화헌법 개정 반대 집회, 원전 반대 집회에도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그는 이날 한국 기자들 앞에서도 모든 종류의 차별과 폭력에 반대한다며, 이런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어린이들을 위한 서점을 만들어 운영해왔다고 설명했다.
"내가 좋아하는 말이 '아더 보이시스'(Other Voices·다른 목소리들)입니다. 주류의 말이 아니라 주변의 말을 의미합니다. 장애를 지닌 사람이나 남성 위주 사회에서 여성이나 다른 성적 취향을 가진 사람들, 권력을 가진 자 입장에서 보면 그를 제외한 나머지의 목소리가 아더 보이스에 해당하죠. 그들의 목소리, 의견이 사회 전반에 퍼져나가기 굉장히 어렵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누구든 자신이 스스로 소중한 존재라고 생각할 수 있고 내면과 대화를 하고 다른 사람과 의견을 교환할 수 있는 장소·매개체로서, 책과 만나는 계기가 되는 곳이 크레용하우스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크레용하우스는 언제나 모든 사람을 수용할 수 있도록 문이 활짝 열린 곳입니다."
그는 "실제로 우리 서점에는 많은 어린이가 놀러 오고 이들이 부모가 되고 조부모가 돼서 3대가 함께 놀러 오는 일이 많다"며 "모든 것이 원활히 이뤄져 온 것만은 아니다. 내가 나라의 권력을 가진 사람들과 반대되는 입장에 서 있었기 때문에 서점을 운영하기가 더욱 쉽지는 않았다"고 덧붙였다.
그는 최근 장편소설 '우는 법을 잊었다'(한길사)를 펴내 일본에서 베스트셀러에 올렸고, 한국에서 번역 출간되기도 했다.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직접 병구완하면서 삶과 죽음을 깊이 성찰한 자전적 이야기를 소설로 썼다.
"집에서 어머니를 간병하면서 시간도 없었고 정신적 여유도 없어 한동안 장편을 쓰지 못했어요. 그동안 미묘하게 마음에 남아있던 부분을 글로 쓴 것이 이번 작품입니다. 최근 일본에서는 여성 작가들이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데, 다른 일을 해오다 자신에 관한 표현을 하고 싶어서 작가로 돌아오는 나이가 50∼70대인 것 같아요. 또 젊은 여성 작가의 수도 늘고 있습니다. 하지만 남성보다는 여전히 부족한 숫자죠. 여성들의 표현 활동이 이제 막 시작한 단계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한반도 평화와 관련한 질문에는 "문재인 대통령이 북한 김정은 위원장과 손잡고 있는 모습을 TV로 보고 약간 눈물이 고였다. 앞으로 두 분이 걸어갈 길에는 많은 어려움 존재하겠지만, 세계 어떤 나라의 지도자들이 함께 보폭을 맞춰 걷는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노벨평화상이 수여된다는 얘기가 나왔는데, 한국 대통령이 평화 실현을 위해 노력하고 있으니 언젠가 그분이 노벨평화상을 받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답했다.
중국에서 14개 서점을 운영하는 첸샤오화(錢小華) 셴펑(先鋒)서점 대표는 서점의 개성을 강조했다.
"우리 서점 14곳은 각각 다른 스타일을 지니고 있습니다. 각 서점이 하나의 세계라고 할 수 있죠."
1996년 난징에서 창립한 셴펑서점 본점은 면적 4천㎡로 과거 방공호를 개조해 만든 곳이다. 1일 방문객이 1만 명에 달한다고 한다. 2014년 영국 BBC가 선정한 '세계 10대 아름다운 서점'으로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꼽히는 등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다.
"난징을 방문하면 필수로 들르는, 난징을 대표하는 얼굴이자 랜드마크가 됐습니다. 소장한 책 종류가 5만 종, 30만 권이에요. 책 판매 외에도 책 관련 문화·창의 상품 3천 종을 직접 만들어 판매하고 있습니다. 연간 200개 정도의 문화행사도 열지요. 국내외 많은 작가가 서점을 방문해 독자와의 만남에 참석하는데, 시리아의 아도니스와 프랑스의 르 클레지오 같은 유명한 작가들도 방문했습니다. 이 행사는 모두 무료로 누구든 참여할 수 있습니다."
그는 시적인 표현으로 서점의 공공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우리 서점은 모든 시민이 문화 정신을 향유하고 공유할 수 있는 장소입니다. 우리 서점은 여기 오는 모든 사람을 존중해요. 이들은 다양한 영혼을 가진 사람들이고, 대지의 이방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대륙에 와 살고 있지만, 지혜의 길을 잃고 떠도는 사람들이 저희 서점에 와 안식처를 찾는 것이죠. 서점이 단순히 도시의 한 부분이 아니라, 사람들의 문화사와 생명사를 간직한, 시대를 기억하는 중요한 장소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또 "정부 차원에서 전 국민이 독서를 하도록 정책을 펴고 서점도 많이 생기도록 장려하고 있어 전국적으로 서점이 급격히 늘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향촌 진흥 전략으로 시골에서 서점을 낼 때 지원을 해준다"며 "우리는 소수민족 서점 3곳을 내 운영 중인데, 지역마다 현지 정서나 민족적 특성을 반영하려 노력한다. 이 서점들이 각 지역 특성을 담은 백과사전이라고 표현한다"고 덧붙였다.
min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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