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과 窓으로서 텔레비전의 연대기

입력 2018-09-14 15:18  

사물과 窓으로서 텔레비전의 연대기
신간 '텔레비전의 즐거움'

(서울=연합뉴스) 이웅 기자 = 현대인에게 물이나 공기와 다름없는 텔레비전.
텔레비전은 가구 혹은 가전제품으로 인식되는 물리적 존재이자, 사람과 세상을 연결하는 문화적 기제라는 이중적 성격을 갖는다.
영국 문화비평가 크리스 호록스의 최근 저서 '텔레비전의 즐거움'(루아크 펴냄)은 빛나는 인류의 발명품인 텔레비전의 변천 과정과 현대사회에 미친 영향을 다각도로 탐색한다.



초창기 텔레비전은 나날이 발전하는 인류 문명을 대변하는 첨단 과학기술의 집약체였으며 지위와 재력을 과시하는 상징물이자 사치품이었다. 당시는 가구와 같은 물리적 존재로서 텔레비전의 중요성이 강조됐다.
그러다 기술이 보편화하고 가격이 저렴해져 일반인들의 생활 속 깊숙이 파고들어 가게 되자 대중문화의 지배적 구성물로서 텔레비전의 성격이 부각됐다.
텔레비전은 오랜 옛날 사람들이 하나의 공간에 모여 소통하게 했던 모닥불이자, 세상을 바라보고 소통할 수 있게 하는 창(窓)의 역할을 담당한다.
대량 소비재인 텔레비전에 대한 사람들의 감정은 양 갈래로 나뉜다. 우리는 텔레비전을 익숙하고 편한 생활의 이기로 대하는 동시에 "생각을 통제하고 시청자를 감시하며 정신과 육체를 해칠 수 있는 불길한 사물"로 바라보게 됐다.
텔레비전은 19세기 과학소설 작가들의 상상 속에서 탄생했다. 초기 전자기 실험 등 과학기술과 연결됐으나 텔레파시 같은 심령론에 대한 대중적 관심과도 관련이 깊었다.
상상 속의 물건을 현실로 옮기는 데는 시간이 걸렸다. 스코틀랜드의 존 로지 베어드, 미국 필로 테일러 판즈워스, 독일 파울 닙코, 러시아 보리스 로싱, 일본 다카야나기 겐지로 등 많은 발명가가 역할을 했다.
텔레비전은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관련 기술을 미사일 같은 전쟁 무기에 응용하려는 각국의 노력 덕분에 비약적인 발전을 했다. 감도가 크게 개선되고 크기는 줄고 휴대성과 신뢰성이 높아졌다.
전쟁이 끝나면서 텔레비전은 가전제품으로 기능하기 시작했으며 점차 대량 소비재로 변모해 갔다.
책은 리모컨과 텔레비전 캐비닛이 가져온 변화와 소형화, 컬러화, 평면화로 이어진 텔레비전 기술의 발전 과정을 고찰한다.
그리고 소비주의 꽃으로 중독 증세를 유발하는 텔레비전에 대한 반감과 저항의식이 비디오아트를 비롯한 예술로 발전하는 과정도 살핀다.
저자는 고전적 사물로서의 텔레비전이 사라지기 시작했다고 지적한다.
디스플레이 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몸체가 점점 얇아지면서 물리적 성질을 잃고 주변 환경에 녹아들고 있다는 것. 기능 일부는 스마트 모바일기기로 흡수되고 있다.
텔레비전은 종말을 맞은 걸까.
강경이 옮김. 308쪽. 1만9천원.
abullapia@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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