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아름 월드그랑프리 출전 놓고 미온적인 대처로 빈축
스포츠공정위원회도 열지 않고 책임 떠넘기기 급급
(서울=연합뉴스) 배진남 기자 = 음주 운전을 하다 적발돼 처벌을 받게 된 선수가 국제대회 참가를 앞두고 있어 논란이 되는 가운데 이를 허용한 대한민국태권도협회의 미온적인 대처도 도마 위에 올랐다.
협회는 오는 19일부터 21일 사흘간 대만 타오위안에서 열리는 2018 세계태권도연맹 월드그랑프리 시리즈 3차 대회에 출전할 우리나라 선수단에 여자 57㎏급 이아름(26·고양시청)을 포함했다.
이아름은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여자 57㎏급에서 금메달을 획득하고, 올해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는 같은 체급 은메달을 따 대회 2회 연속 메달을 목에 건 태권도 스타다.
하지만 지난달 면허취소 수치인 혈중알코올농도 0.151%의 만취 상태로 자신의 승용차를 운전해 도로교통법 위반 혐의로 형사입건됐고, 이후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됐다.
해당 수치라면 단순음주에 첫 적발이라 하더라도 6개월∼1년 이하 징역 또는 300만원∼500만원 이하 벌금 등의 형사처벌을 받게 된다.
월드그랑프리 시리즈는 올림픽 체급인 남녀 각 4체급으로 치러지며, 세계태권도연맹(WT)이 올림픽 랭킹 기준으로 각 체급 최대 32명의 선수를 초청한다.
협회 관계자는 "이아름의 음주 운전 적발 사실이 알려지기 전 세계연맹에서 이번 대회 초청 대상 선수를 알려왔고, 이에 따라 참가 등록을 마쳤다"라며 이아름의 출전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해명했다.
다만 "이아름은 개인 자격으로 출전하며 협회가 아닌 소속팀이 참가 경비를 댄다"면서 "음주 운전 사실이 알려지자마자 충북 진천의 국가대표선수촌에서 이아름을 퇴촌시켰다"고 덧붙였다.
그러고는 "국가대표를 관리하는 경기력향상위원회에서 올림픽 랭킹포인트가 걸려 있는 만큼 개인 자격으로 이번 대회에 참가하는 것은 허락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한순간의 실수 탓에 올림픽 출전 준비 기회마저 박탈하는 것은 너무 가혹하다 판단했다는 것이다.
이아름은 현재 여자 57㎏급 올림픽랭킹 2위에 올라 있어 이대로 포인트만 잘 관리해나가면 2020년 도쿄올림픽에 자동 출전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이런 협회의 조처는 내부 규정도 무시하고 원칙을 스스로 깔아뭉갠 것이라는 지적을 받는다.
협회 스포츠공정위원회 규정에 따르면 제24조(징계대상)에 '태권도인으로서의 품위를 심히 훼손하는 경우'는 위원회가 조사해 징계를 심사할 수 있다고 명시했다.
앞선 23조에는 '징계대상자에게 징계사유가 충분히 인정되는 경우에 한하여 관계된 형사사건이 유죄로 인정되지 않았거나 수사기관이 이를 수사 중에 있다 하여도 징계처분을 내릴 수 있다'고도 돼 있다.
징계 종류도 선수에 대해서는 중징계(출전정지, 자격정지, 제명)와 경징계(견책)로 세분화했다. 선수촌 퇴촌은 징계 종류에도 없다.
또한, 국가대표 선발규정 제5조(결격사유)에서는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켜 체육인의 품위를 손상한 자'는 국가대표가 될 수 없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협회는 이아름의 음주 운전에 관련한 스포츠공정위원회 회의를 아직 한 번도 열지 않았다.
오히려 협회 내에서 책임 떠넘기기에만 급급하다.
국가대표팀을 관리하는 사무1처는 "경기력향상위원회를 열고 선수촌 퇴촌, 경비를 스스로 부담하는 개인자격 출전 허용 등의 조처를 했다. 스포츠공정위원회 개최 여부는 이를 담당하는 사무2처의 일"이라고 했다.
이에 사무2처에서는 "국가대표를 관리하는 경기력향상위원회에서 징계가 필요하다고 스포츠공정위원회 개최를 요청했어야 하는데 이를 판단해 주는 이가 없었다"고 반박한다.
이달 초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우승한 야구대표팀은 3회 연속 금메달을 따고도 거센 비난을 받았다.
24명 전원이 프로팀 소속인 이번 야구 국가대표 선발 과정이 과연 공정하고 투명하게 이뤄졌는지, 아시안게임이 '합법적인 병역기피'의 수단으로 변질한 것은 아닌지 국민은 의심했다.
프로야구를 관장하는 KBO의 총재가 머리를 숙였고, 한 민간단체는 '청탁금지법을 위반한 것으로 의심된다'면서 선동열 야구대표팀 감독을 국민권익위원회에 신고하기까지 했다.
태권도협회도 이번 일로 올림픽 출전만 가능하다면 어떠한 물의를 일으켜도 규정에 따른 징계를 받지 않고 선수 자격을 유지할 수 있다는 좋지 않은 전례를 남기게 됐다.
hosu1@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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