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사회 갑질] ①부하 직원에 활 쏘고 가족묘 벌초시키고

입력 2018-09-18 07:00   수정 2018-09-18 08:26

[공직사회 갑질] ①부하 직원에 활 쏘고 가족묘 벌초시키고
공직사회 갑질 백태…출산 미루겠다는 각서도
상명하복 문화 개선 방안 마련해야



(전국종합=연합뉴스) "학교 뜻에 반하면 사표를 쓰겠습니다. 학기 중에는 출산하지 않겠습니다."
대구시 한 학교 교사들이 이 학교 재단 이사장에 제출한 각서 내용이다.
전국의 학교에서 이사장과 교감 등이 평교사에게 개인적인 심부름을 시키거나 막말과 욕설을 일삼는 등 이른바 '갑질' 행위가 잇따르고 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대구지부에 따르면 대구의 한 사립 특성화학교 이사장은 여교사들에게 출산을 미루겠다는 내용의 각서를 쓰게 하고, 여교사 육아 휴직을 직접 관리하는 등 학사 운영 전반에 개입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교직원들에게 소리를 지르거나 욕을 하기도 했으며, 학교 강당을 이사장의 개인 헬스장처럼 이용해 학생들의 체육수업을 방해했다는 제보도 접수됐다.
인천에서는 교사를 과녁 앞에 세워놓고 체험용 활을 쏜 초등학교 교감이 중징계 처분을 받았다.
인천 계양구 모 초교 교감 A(53)씨는 지난해 6월 자신이 근무하는 초등학교 교무실에서 교사 B(28·여)씨에게 "과녁 앞에 서 보라"고 한 뒤 체험용 활을 쏜 것으로 알려졌다.
B씨는 심한 충격으로 정신과 병원에서 4주 진단을 받았다.

경기도교육청은 지난 7월 시흥시 한 고등학교 교직원 50여명으로부터 교감을 즉각 인사 조처해달라는 집단민원을 접수했다.
이들은 "교감이 여교사에게 '나를 위해 화사한 옷을 입고 출근해라', '아기 더 낳지 왜 못 낳느냐. 공장문 닫았느냐' 라고 말하는 등 성희롱 발언을 했다"며 "개인적인 일에도 교사를 불러 운전을 시키고 공익요원이나 행정 직원에게 사적 심부름을 시키는 일이 다반사였다"고 주장했다.
지방자치단체에서 비정규직 직원들에게 사적인 일을 시키거나 부하 여직원에게 성희롱적인 언행을 하는 사례도 잇따랐다.
기간제 근로자 관리 업무를 하는 대구 중구청 한 공무원은 수년 동안 기간제 근로자에게 자신의 조상 묘 벌초를 시키는 등 개인적인 일에 동원해 물의를 빚었다.
기간제 근로자의 고용 기간은 보통 1년 미만이지만, 관리자의 의사에 따라 1년 미만 기간으로 재고용할 수 있다.
이 공무원은 관리자로서 자신의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가족묘 벌초와 부인이 운영하는 어린이집에서 김장과 이삿짐 옮기기 등을 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대부분 고령인 이들 기간제 근로자는 2008년부터 평일 근무시간은 물론이고 토요일 등 휴일까지 동원돼 수년간 강제노역을 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부산에서는 한 부단체장이 여직원에 노래를 시키고 셀카를 찍는 행동으로 논란을 빚어 취임 10일 만에 대기 발령됐다.
지난 7월 1일 취임한 권 모 부구청장은 구청 내 사무실에 인사차 방문한 뒤 여직원에게 노래를 불러볼 것을 요구했다.
해당 여직원은 처음에는 거절했지만 결국 어쩔 수 없이 동료들 앞에서 노래를 불러야 했다.
인근 사무실에서는 과거 안면이 있었던 다른 과 여직원에 셀카를 찍자고 요구했고, 한사코 거부하는 직원 옆으로 가 억지로 셀카를 찍기도 했다.
일부 여직원에게는 결혼 여부나 남자친구가 있는지 등을 캐묻기도 했다.
직원들로부터 이런 사례를 보고받은 구청장의 인사 조처 요구로 결국 대기 발령됐다.
공직사회에서 이처럼 갑질 행위가 잇따르는 것은 직급에 따른 상하관계를 우선시하고 복종하는 문화가 조직 내에 관행화돼 있기 때문이다.
직장 상사나 정규직 관리자들이 가진 '한 줌의 권력'이 근로자들에게는 생살여탈권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참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뿌리 깊은 상명하복의 조직문화를 개선하려면 근본적인 제도 개선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와 관련해 최근 일부 지자체가 윗사람의 갑질 행위를 신고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 운영 중이다.
충남도 감사위원회는 지난달부터 '갑질 피해 신고·지원센터'를 설치, 운영 중이다.
감사위는 특별한 이유 없이 민원처리를 지연하는 행위, 상사가 인사고과 권한을 이용해 부하 직원들에게 부당한 업무 지시를 하거나 근무시간 외에 수행업무를 강요하는 행위 등에 대해 중징계 처리할 방침이다.
세종시 감사위원회와 광주시 감사위원회, 부산진구청 등도 직장 상사의 갑질 행위 민원을 받고 있다.
전국공무원노조 부산진구지부는 "부산 신임 부구청장의 갑질 논란이 불거진 이후 성희롱이나 성폭력 등 사례를 익명으로 접수해 관리하고 있다"며 "전문강사를 초빙해 성희롱·성폭력 예방 교육을 강화하는 등 성희롱·성폭력 없는 직장 만들기' 프로젝트를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정회성 최은지 양지웅 이덕기 전창해 황봉규 손형주 류수현 박주영 기자)
jyoung@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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