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임미나 기자 = 올해 제6회 수림문학상 당선작인 김의경 작가의 '콜센터'는 콜센터에서 일하는 젊은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시대의 그늘을 드러낸다. 이 소설의 미덕은 그러면서도 마냥 어둡고 무겁지만은 않다는 점이다. 청춘물이 지니는 경쾌함과 유머, 긴장과 설렘, 활기도 품고 있다.
피자 배달 주문 전화를 받는 콜센터를 배경으로 한 이 소설에서 상담원으로 일하는 주인공들은 무례하고 안하무인인 '진상 고객'들한테 시달리지만, 그 대화조차도 종종 웃음을 유발한다.
"왜 이렇게 대답이 느려? 너 딴 생각 했지?"/"고객님, 죄송합니다. 제가 가는귀가 좀 먹어서요."
'주리가 한층 간드러진 목소리로 사과를 하자 고객은 보아하니 이것 말고는 할 거 없는 애 같은데 귀까지 안 좋으면 어떻게 하느냐고 혀를 찬 후 주문을 계속했다.'
"스위트 골드 피자 양파 빼고. 양파 넣으면 죽여버릴 거야. 나 양파 알레르기 있거든."
소설 문을 여는 주인공 주리는 콜센터에서 1년 8개월째 일하는 중이다. 영문학 전공에 경영학 복수전공을 해 졸업한 뒤 끊임없이 수많은 기업에 입사지원서를 냈지만, 대부분 서류 전형에서 탈락했다. 어려운 집안 형편에 학자금 대출까지 남아 그동안 돈을 벌기 위해 여러 아르바이트를 전전했으나, 몸이 고된 일은 취업 준비를 병행하기가 어려웠다.
그에 비해 사무실에 앉아서 하는 일인 콜센터 상담원은 근무 시간을 조절할 수 있고 남는 시간에 영어공부 등을 할 수 있는 게 장점이었다. 하지만, 한 시간에도 수십 통씩 전화를 받아 온갖 사람을 상대해야 하는 일은 엄청난 '감정노동'일 수밖에 없다.
모멸감을 주는 말과 욕설, 성희롱이 빈번했고, 자기 분풀이를 하거나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일부러 상담원을 괴롭히는 정신병자 같은 사람들도 있다.
"작은 부스에 여고생부터 사오십대 주부까지 담담한 척 앉아 있지만 귓속으로 파고드는 온갖 배설물을 홀로 외롭게 처리하고 있는 셈이었다."
취업할 때까지만 참자며 버티는 주리에게 그나마 위안이 되는 존재는 이곳에서 만난 친구들이다. 용희와 시현, 형조, 동민 등 또래 친구들은 모두 하루빨리 취업하거나 꿈을 이루고 싶어하지만, 현실은 벽이 높다. 소설은 이들의 이름을 각 챕터 소제목으로 삼아 각자의 이야기를 균형 있게 들려준다.
한 해가 저물어가는 크리스마스이브를 앞두고 피자 주문이 점점 몰려드는데, 방송사 아나운서를 꿈꾸던 시현은 꿈이 더 멀어지는 것 같아 불안하고 초조해하던 차에 한 진상 고객에게 계속 시달리자 감정이 폭발하고 만다. 시현은 부산 해운대가 주소인 그 진상 고객에게 찾아가 복수하겠다고 선언하고, 시현을 짝사랑하는 동민과 콜센터에서 벗어나기만을 꿈꾸던 주리와 용희, 형조 역시 합세한다.
이들의 탈주가 이뤄지는 소설 후반부는 로드무비 같은 경쾌함이 한껏 살아난다. 이 여정에서도 역시 뭔가를 이루지는 못하지만, 인물들은 그동안 감정노동 속에 억눌린 그네들의 진짜 감정을 마주하고 서로 다독이며 현실을 담담히 받아들이게 된다.
수림문학상 심사위원단은 "최종 심사 자리에서 여러 차례 나온 '짠하고 아리다'는 감상은 '콜센터'의 소설적 미덕을 압축한 표현이었고, 마지막 결정의 순간에도 결국 심사자들의 마음을 움직였다"고 말했다.
"피자 배달 주문 센터에서 일하는 다섯 젊은이의 고단하고 막막한 현재를 화자를 번갈아 가며 보여주는 '콜센터'가 그 생생한 디테일에도 불구하고 얼마간 짐작 가능한 세대적 풍경에서 멈추었다는 지적도 있었다. 그러나 이 작품이 정작 섬세하게 스스로 제동을 건 지점은 절망이나 희망과 같은 손쉬운 관념이었고 널리 알려진 사회학적 조망이었다.
'콜센터'는 소위 진상 고객을 상대로 한 감정노동 시간 안에서 이루어지는 뜻밖의 상호 접속과 위로의 순간을 잡아내고, 인물들 스스로가 스스로를 다독이고 일으키는 시간에 끝내 도달한다.
그 현재의 미미하지만 단단한 실체는 이 소설의 '감정노동'이 일구어낸 소중한 문학적 진실이라 할 만하다. 막막한 대로 사랑을 시작하는 두 연인의 남루하지만 간절한 첫 잠자리는 잊기 힘든 소설적 감흥의 순간을 빚어낸다. 과장과 허세 없이 우리 시대 젊음의 진실에 가닿으려 한 작가의 진정성 어린 수고에 격려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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