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시세조종 전력자, 불공정거래 규제기관 합동 워크숍서 소개
(서울=연합뉴스) 권수현 기자 = "시세조종의 총괄기획자를 '주포'라고 합니다. 조작 대상 종목의 거래량과 가격 등 차트 흐름을 관리하는 역할은 '화가'가 맡고요. 계속 사고팔며 '롤링'을 해 개미 투자자를 유혹합니다."
한때 소위 '작전세력'에 참여했다가 현재는 유사투자자문업체를 운영 중인 문찬호(가명)씨가 18일 여의도 서울사옥에서 한국거래소 시장감시위원회, 금융위원회, 서울 남부지방검찰청, 금융감독원 공동 주최로 열린 '불공정거래 규제기관 합동 워크숍'에서 검은 현장의 생생한 수법을 전해 눈길을 끌었다.
문 씨는 "최근 작전세력은 과거와 달리 다수 인원이 점조직으로 움직이고 한 번에 여러 종목을 교차 매매하는 방식으로 시세를 조종한다"며 "자동으로 사고팔도록 주문을 넣는 매크로 프로그램으로 거래량을 늘려 개미들을 끌어들인다"고 말했다.
그는 '세력'이 시세조종에 나서는 목적에 대해 "보유주식을 고가에 매도해 차익을 얻으려는 것도 있지만 그보다는 무자본 인수합병(M&A)을 위해 주가를 띄우고 매도 후에 인수자금을 상환하거나 전환사채(CB)·신주인수권부사채(BW) 등을 전환가 이상으로 매도할 수 있게 유도하려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 때문에 작전세력은 주로 전환 가능한 CB 등 소위 '먹을 것'이 많은 회사 중에 최대주주 지분이 크고 총거래량의 30% 정도로 주가를 흔들 수 있을 만큼 시가총액 규모와 유통주식 수는 작은 상장사를 주로 겨냥한다"며 "바이오·제약 업종을 선호하는 것도 최근 트렌드"라고 전했다.
작전세력들이 시세조종에 드는 비용을 조달하는 자금원으로는 명동 사채시장과 저축은행을 꼽았다.
그는 "명동 사채업자는 주가 통제 등에 어려움이 있어 최근 몇 년 사이에는 비교적 안정적인 저축은행이 선호된다"며 "수익은 절대로 주식계좌에서 직접 인출하지 않으며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 거래나 해외 헤지펀드 상대 블록딜 매도, 페이퍼컴퍼니 설립, 비상장법인 고가 인수 등을 통해 '세탁'한다"고 덧붙였다.
문 씨는 시세조종 세력의 은어도 소개했다.
주가조작의 총괄기획자로 대상 회사와 접촉하고 주가를 통제하는 사람은 '주포', 개미들이 달려들도록 특정 시점의 거래량과 주가 등 차트의 움직임을 미리 계획하는 이는 '화가', 매수에 필요한 계좌 모집과 자금조달 중계 담당자는 '브로커'라고 부른다.
또 '롤링'(Rolling)은 주식 거래량을 늘려 주가를 끌어올리는 행위이고 '셸'(Shell)은 주가조작 대상 회사, '펄'(Pearl)은 주가 부양을 위해 필요한 호재성 공시를 뜻한다.
그는 "시세조종 대상이 되는 회사는 보통 사채를 많이 끌어쓰기 때문에 사채시장을 통해 시세조종 제안이 오가는 경우가 많고 지인 인맥도 동원한다"며 "불공정거래 계좌 모집은 일임 계좌를 다수 보유한 증권사 직원을 포섭하거나 주부 아르바이트 고용 등의 방식을 쓴다"고 설명했다.
이날 워크숍에서는 국내외 제약·바이오 업체의 불공정거래 사례도 발표됐다.
서근희 삼성증권[016360] 연구원은 "제약사가 임상이 끝나고서는 성공적인 내용만 발표하고 실패 내용은 숨기는 식으로 결과를 조작하거나 임상을 주도한 연구자가 미공개 정보를 헤지펀드 매니저 등에 전달하기도 한다"고 소개했다.
서울남부지검 기노성 검사는 최근 증권범죄 수사 사례에서 드러난 특징을 분석하면서 관련 기관 간 정보공유와 협업을 통한 대응을 강조했다.
이날 워크숍에는 김학수 증권선물위원회 상임위원과 김범기 서울남부지검 차장검사, 원승연 금융감독원 부원장 등도 참석했다.
이해선 거래소 시장감시위원장은 "이번 합동 워크숍을 통해 불공정거래 규제 관련 4개 기관의 협력체계가 강화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inishmor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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