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림문학상] "콜센터에서 일하며 복수 꿈꿨던 경험 썼죠"

입력 2018-09-19 06:00   수정 2018-09-19 12:09

[수림문학상] "콜센터에서 일하며 복수 꿈꿨던 경험 썼죠"
제6회 당선작 장편소설 '콜센터' 작가 김의경


(서울=연합뉴스) 임미나 기자 = 연합뉴스와 수림문화재단이 제정한 수림문학상 제6회 당선작 '콜센터'는 김의경(40) 작가가 실제로 콜센터에서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한 장편소설이다. 그만큼 작품에 담긴 상황과 인물들 이야기가 눈으로 보듯 생생하게 펼쳐진다.
18일 만난 작가는 이 소설을 쓰게 된 배경을 이렇게 밝혔다.
"콜센터에서 상담원으로 일하면서 모멸감을 주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목소리가 섹시하다'는 둥 성희롱도 종종 당했죠. 처음에는 심한 얘길 들으면 몇 시간 동안 몸이 부들부들 떨렸어요. 계속 일하다 보면 그런 감정이 조금씩 줄어들긴 하는데, 그래도 익숙해지진 않더라고요. 너무 괴로울 땐 그 사람 주소를 적어놔요. '언제 찾아가서 돌멩이를 던져주겠다' 생각하죠. 그러다 또 시간이 지나면 잊어버리고…그런 일이 반복되는데, 그 이야기를 소설로 꼭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작가는 4년여 전 6개월간 피자 배달 주문 전화를 받는 콜센터에서 일했다. 작가로 등단하기 전 생계를 위해 일했는데, 어느 '진상 고객' 전화를 받고 침울해 있을 때 몇 달 전 응모한 '한경 청년신춘문예'에 당선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렇게 등단의 꿈을 이루며 콜센터 일을 그만뒀다. 이후 콜센터를 배경으로 "엉뚱한 추리소설"을 썼다가 별로 재미없다는 주변 반응에 쓰레기통에 버리고, 시간이 조금 흐른 작년 상반기 좀 더 현실적인 이야기로 다시 썼다. 이번엔 재미있다는 주변 반응에 힘을 얻어 수림문학상 공모에 냈고, 마침내 결실을 봤다.
그는 "당선 소식을 듣고 며칠째 구름 위에 떠 있는 것처럼 기분이 좋다"고 했다.

소설 첫 실마리가 된 것은 그가 일한 콜센터 사무실 건물 옥상에서 들은 대화 내용을 떠올리면서다.
"옥상에서 다들 담배를 피웠는데, 저는 담배를 안 피워도 전화 받기 싫을 때 자주 올라갔어요. 그런데 어느 날 옆에서 남학생들끼리 얘기하는 걸 들었어요. '너 왜 연애 안 하냐?'/'연애에 쏟을 감정이 어디 있냐'/'진상한테 쏟을 감정은 있고 연애에 쓸 감정은 없냐?' 이런 대화였는데, 이게 딱 감정노동에 진이 빠져 연애도 못 하는 청춘들의 이야기다 싶었죠. 또 제가 거기서 일할 때 워낙 답답하니까 '여기 있는 애들을 다 바다에 데려다 놓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그걸 소설 속에서 이뤄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크리스마스 직전에 콜센터에서 시달리던 젊은이들이 진상 고객을 때려주려고 부산 해운대로 찾아가는 이야기를 쓰게 됐죠."
그는 실제로 진상 고객들이 특히 명절이나 크리스마스 등 특별한 휴일에 유난히 "출몰"한다고 했다.
"명절에는 특히 초당 콜이 몇십 개씩 오고, 상담원들은 쉬지 못하고 계속 전화를 받는데, 사람들이 조금만 맘에 안 들면 욕을 해요. 아예 화풀이할 사람이 필요해서 전화하는 사람도 많아요. 나중에 들으니 그런 사람 중에 서비스직이 많다고 하더라고요. 자기가 일하면서 당한 걸 그대로 풀고 싶어서 그러는지…. 제가 실제로 어떤 사람에게서 '죄송하다고 100번 말하라'는 요구를 받았는데, 그걸 시킨 대로 하다가 웃겨서 웃었더니 다시 하라고 해요. 그리고 1주일 뒤에 '걔 해고했냐'고 확인 전화를 하더라고요. 너무 기분이 비참하죠. 제가 그때 신춘문예에 당선 안 됐으면 아직도 거기서 일할 것 같은데, 요즘은 그때보단 조금 덜하겠지만 크게 다르진 않을 것 같아요. 그런 걸 보면 우리 사회가 병들어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서사가 강한 그의 소설은 남다른 인생 역정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등단작인 '청춘파산' 역시 자전적인 이야기였다. 서울 강남에서 유복하게 자랐지만, 어머니가 사업을 하다 가족들 이름으로 사채를 쓰면서 부도가 나 가족 모두 빚더미에 앉았다. 그 역시 결국 개인파산 절차를 밟았는데, 그전까지 "빚쟁이들이 쫓아다녀 정상적인 생활을 하기 어려웠다"고 한다. 성균관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한 뒤 직장에 들어가기도 했지만, 곧 그만둬야 했다.
"몸에 큰 문신을 한 덩치 큰 사람들이 직장에까지 찾아왔어요. 그래서 정상적인 직장생활을 포기하고 10년 동안 아르바이트를 하며 살았죠. 소설을 쓰며 남편과 만나 결혼했는데, 혼인신고를 하면 빚쟁이들이 올까 봐 한동안 미루기도 했어요."
처음으로 소설에 빠져든 것도 고등학교 졸업 후 채권추심업자들을 피해 도서관에 틀어박혀 여러 소설책을 읽다가였고, 처음 소설을 쓰게 된 것도 대학교 공강 시간에 할 일이 마땅치 않아 도서관에서 우연히 본 대학신문문학상에 응모하면서였다.
"아르바이트를 워낙 많이 해서 그런지 이야기 소재는 많은 것 같아요. 또 가족이 다들 빚 때문에 고생하면서 어머니는 청소 일을 하시고, 언니는 학습지 교사를 했는데, 옆에서 보면서 생생하게 취재가 된 것도 있고요. 그런 걸 토대로 가난한 여자들 얘기를 해보고 싶어요. 요즘엔 빚이 없는 사람이 없는 것 같은데, 파산한 여자들과 중년 파산, 노년 파산 같은 것들을 소재로 써보고 싶어요."
'콜센터'와 함께 그가 지난 몇 년간 쓴 단편들도 소설집으로 묶여 곧 책으로 나온다. 가구 이케아 매장을 배경으로 한 연작소설 형식이라고 한다. 그가 출판사(민음사)에 직접 투고해 출간이 이뤄졌다.
이번에 받은 수림문학상 상금 5천만원은 집세에 보태고 싶다고 했다. 역시 소설가로 등단한 남편은 아내인 그가 마음껏 소설을 쓸 수 있도록 지난 몇 년간 정육점에서 일하며 생계비를 벌었다고 한다.
"제가 계속 반지하 방을 전전하다 보니 공간에 대한 집착이 생겨서 이케아를 배경으로 소설까지 쓰게 됐어요. 남편도 제가 수림문학상에 당선돼 정말 기뻐하고 있죠. 이번 상금은 전세 보증금에 보태려 합니다."
mina@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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