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 차례상에 전은 필수? 술잔은 남자만 올린다?

입력 2018-09-23 10:00  

[팩트체크] 차례상에 전은 필수? 술잔은 남자만 올린다?
차례와 제사에 관한 오해와 진실



(서울=연합뉴스) 김희선 기자 = 매년 추석과 설이 되면 여러 기관과 단체들이 차례상 차림에 드는 비용을 조사해 발표한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에 따르면 올해 추석 차례상 비용은 전통시장 기준 23만원, 대형유통업체 기준 31만6천원이다. 송편, 육적(고기를 꼬챙이에 꿰어 구운 것), 소적(두부나 채소로 만든 적), 어적(생선적), 육탕, 소탕, 어탕, 삼색 나물(시금치, 도라지, 고사리), 조기구이, 포(북어), 전, 나박김치, 식혜, 대추, 밤, 곶감, 배, 사과, 다식, 강정, 약과, 산자(유과류의 일종) 등 스무 종이 넘는 음식을 포함시켜 계산한 금액이다.
실제로 많은 가정에서 명절 차례상에 기일 제사상과 마찬가지로 많은 종류의 음식을 올린다.
하지만 유교 본산인 성균관은 "명절 차례는 기일 제사와 달라 많은 음식을 올리지 않아도 된다"며 거한 차례상은 신분제 붕괴와 근대화를 거치면서 생겨난 일종의 허례허식이라고 지적했다.
성균관과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등에 따르면 차례는 명절 아침 조상께 올리는 제례로, 기일에 지내는 기제와는 그 의미와 절차가 다르다.
과거 조상의 신주를 모신 사당에서 올렸던 차례는 한식, 단오, 칠석, 추석, 중구, 동지 등 매년 30여회에 달했지만, 오늘날에는 설과 추석의 차례만 전승되고 있다.
'차례'(茶禮)는 글자 그대로 차를 올리는 예식이라는 뜻이다. 조상에게 차를 올리는 풍습은 매달 보름 차를 올리고 사당에 참배했던 중국의 풍습이 신라 때 전래한 것에서 그 유래를 찾기도 한다.



조선 시대 예법의 뼈대가 된 중국의 '주자가례'와 이를 바탕으로 조선시대 때 편찬된 '가례집람', '사례편람' 등의 예서는 기제와 사시제(봄, 여름, 가을, 겨울 매년 네 차례 지냈던 제사)에 관해 진설(상차림)도를 제시하면서 자세하게 설명하지만, 차례 상차림에 관한 언급은 별로 없다.
'주자가례'를 보면 청명, 단오, 중양의 등의 속절(俗節)에는 그때 나오는 제철 음식(時食·시식)을 올린다고 되어 있다.
율곡 이이는 제례에 관해 서술한 '제의초'에서 차례에는 제철 음식을 올리되 별다른 게 없으면 떡과 과일 두어 가지면 된다고 했다.
박광영 성균관 의례부장은 "차례는 간소화된 제사라고 보면 된다"며 "술을 석 잔 올리는 기제와 달리 술을 한 잔만 올리고 축문도 읽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각종 매체를 통해 소개된 이름난 종가의 차례상을 보면 송편과 과일 몇 가지, 포 정도로 소박하게 차리는 경우가 많다. 차례의 본래 의미대로 술 대신 차를 올리는 사례도 있다.
요즘 제사상이나 차례상에 필수 음식으로 여겨지는 전을 올리지 말라고 했던 예서도 있다.
조선 후기 안동 출신 유학자 동암 유장원 선생은 '상변통고'(常變通攷)에서 제불용고전지물, 즉 기름으로 부친 전 등은 제사에 쓰지 말라고 했다.
성균관 석전보존회 방동민 사무국장은 "중국의 예서 '예기'에도 이와 비슷한 표현이 있다"며 "불교와 달리 제사상에 전을 올리지 않는 것이 유가의 예법"이라고 말했다.



상차림 외에도 제사와 차례에 관한 잘못된 통념이 많다.
며느리는 명절이나 제삿날 부엌에서 음식 장만을 도맡으면서 정작 제사나 차례 예식에는 참석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가례집람과 사례편람 등에 따르면 남녀가 제례에 함께 참여해 술을 올리고 절을 하는 것이 전통 예법이다.
기제사에서는 조상에게 올리는 석 잔의 술 가운데 첫 잔은 장남이, 두 번째 잔은 맏며느리가 올린다. 술을 한 잔만 올리는 명절 차례에서는 장남이 술잔을 올리면 삽시정저(숟가락을 밥그릇 중앙에 꽂고 젓가락을 바로 놓는 것)를 하는 것은 맏며느리 몫이었다.
박광영 부장은 "술잔을 올릴 때 잔을 향 위에서 돌리기도 하지만, 어떤 예서에도 이런 내용은 없다"며 "이는 전통 예법과 맞지 않는 잘못된 관행"이라고 지적했다.
hisunny@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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