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이번 추석도 집에 못 가요" 서글픈 포항 지진 이재민들

입력 2018-09-20 10:11   수정 2018-09-20 10:55

[르포] "이번 추석도 집에 못 가요" 서글픈 포항 지진 이재민들
아직도 200여명 체육관 생활…"여름엔 덥고, 지금은 바닥 냉기"
컨테이너 임시주택 이주자도 걱정…"2년 안에 집 지어 나가야"





(포항=연합뉴스) 손대성 기자 = "추석은 무슨 추석인교. 집에 들어갈 형편이 안 되는데. 지난 설이나 마찬가지로 차례 지내기는 포기했니더."
19일 오후 경북 포항시 북구 흥해실내체육관에서 만난 지진 이재민 A(72)씨에게 추석 연휴를 어떻게 쇠느냐고 묻자 심드렁한 답이 돌아왔다.
흥해실내체육관은 지난해 11월 15일 포항에서 발생한 규모 5.4 지진이 난 뒤 10개월째 이재민 임시구호소로 이용되고 있다.
이날 오후에 찾은 이곳은 개인별로 생활할 수 있는 텐트가 가득 차 있었다.
그러나 이재민 대다수가 직장이나 학교에 가거나 외출한 상태여서 사람은 별로 없었다.
TV를 보던 A씨는 "여름에는 더웠고 지금은 바닥에서 냉기가 올라와 견디기 어렵다는 노인들이 있다"며 "집에는 불안해서 살지를 못해 여기에 머물고 있다"고 했다.
밖에 나갔다가 들어온 B(73)씨 역시 추석 차례는 지내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는 "집에 가면 천장에서 물이 줄줄 새고 갈수록 금이 간 곳의 틈이 더 벌어진다"며 "이런 마당에 차례를 어떻게 지내느냐"고 언성을 높였다.
지진 직후에는 800여명이 흥해실내체육관에 대피해 머물며 숙식을 해결했다.
그동안 이곳에서 지내던 이재민은 하나둘 정부와 포항시,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마련한 보금자리로 이사해 떠났다.
이들은 2년간 살면서 자신의 집을 지어 나가야 한다.
현재 흥해실내체육관에 등록된 이재민은 91가구 208명이다.
이 가운데 82가구가 한미장관맨션 주민이다.
실제로 이곳에서 숙식하는 인원은 등록인원보다 적은 것은 알려졌다.
이들은 "지진으로 아파트 4개 동이 상당한 피해를 봤는데도 포항시 정밀안전점검에서 사용 가능 판정을 받아 이주대상에서 빠졌다"며 "금이 가고 벽이 갈라진 아파트에서 불안해 살 수 없다"며 머물고 있다.
흥해실내체육관 주변에는 한미장관맨션비상대책위원회가 '포항시는 지진 이재민을 더 이상 기만하지 마라', '불통 포항시는 쇼하지 말고 소통하라'고 써놓은 현수막이 붙어 있었다.
이날 오후 찾은 포항 북구 흥해읍 한미장관맨션에는 차가 많이 서 있고 오가는 주민도 자주 눈에 띄어 집 안에 사람이 많음을 보여줬다.
이 아파트는 지진 전만 해도 240가구 600여명이 거주했다.
외벽이 갈라지거나 마감재가 떨어진 곳이 많이 보였다. 안전을 위해 설치한 그물망도 주변에 들어서 있었다.
한 주민은 "낮에는 집에서 빨래하거나 일 보러 집에 왔다가 다시 저녁에 체육관으로 가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한미장관맨션 바로 옆 대성아파트는 전체 6개동 가운데 3개동이 위험 판정을 받아 폐쇄됐다.
폐쇄된 D·E·F동은 이사하면서 버리고 간 가재도구가 나뒹굴고 창이나 문이 열린 곳이 많아 을씨년스러웠다.
경찰 이동초소도 텅 비어 있었다.
이곳 주민은 흥해실내체육관이나 다른 임시구호소에 머물다가 대부분 임시거주지를 마련해 떠났다.
지진 직격탄을 맞은 흥해초등학교 본관은 몇 달 전 모두 철거됐다. 1년 전만 해도 교무실이 있던 건물이 사라져 휑뎅그렁한 모습이었다.
여기서 조금 떨어진 경림뉴소망아파트도 지진 피해로 폐쇄돼 썰렁했다.
아파트 옥상은 구조물이 일부 떨어져 나가는 바람에 금방이라도 남은 구조물이 떨어질 듯 위태로워 보였다.
경림뉴소망아파트 바로 옆에는 컨테이너로 지은 임시주택인 '희망보금자리 이주단지'다. 이곳엔 올해 2월부터 지진 피해를 본 32가구 주민이 산다.
집은 방, 화장실, 부엌 겸 거실이 있는 원룸 형태 주거지와 가재도구를 둘 수 있는 창고로 구성됐다.
이곳도 낮에는 오가는 사람이 드물어 한적했다.
이주단지에 사는 C(83)씨는 "혼자 살다가 보니 추석이라고 별다를 게 없다"며 "2년 안에 집을 지어 나가야 하는 것이 걱정이다"고 말했다.
주민 D(82)씨는 추석을 어떻게 보낼 것인지 묻자 "이제 곧 명절이 되니 먼저 보낸 자식이나 영감이 생각난다"며 "영감 밥이라도 한 그릇 떠놔야 할 텐데 걱정이다"고 눈물을 보였다.

sds123@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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