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나항공 노조위원장 출신…정의당이 8년 만에 배출한 시의원
"배제되고 소외된 목소리 찾아내고 드러내는 시의원 되겠다"
(서울=연합뉴스) 윤고은 기자 = 그는 1995년 15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선망의 대상인 아시아나항공 승무원이 됐다.
최근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의 문제와 비리가 터져 나와 세상을 놀라게 했지만, 이들 항공사 승무원은 여전히 많은 이들의 부러움을 사는 직업이다.
그는 서울시의회 의원이 됐다. 정의당이 8년 만에 배출한 서울시의회 의원이다.
아시아나는 그의 휴직을 받아주지 않다가 문제가 될 것 같았는지 최근 '조용히' 휴직 처리했다. 그래서 여전히 아시아나항공 승무원 신분이다.
권수정(45) 의원 얘기다.
그는 이런 배경으로 출범 석 달을 맞은 제10대 서울특별시의회에 입성할 때부터 화제를 모았고, 시의원 배지를 단 후에는 동분서주 민생 현장에서 똑소리 나게 목소리를 내 주목받고 있다.
"서울시의회가 이렇게 많은 일을 하는지, 이렇게 많은 돈을 다루는지 몰랐어요. 하루 일정이 6~7개인데 공부할 게 너무 많아요."
추석을 앞두고 서울시의원회관에서 만난 권 의원은 목소리가 잔뜩 쉬어있었고, 쉼 없이 잔기침을 했다. 1인 시위를 비롯해 여러 시위 현장에 나서고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시민들을 만나면서 목이 쉴 틈이 없었던 탓이다.
인터뷰 직전에도 한 시민이 예고 없이 그의 사무실을 찾아와 자신의 '이야기'를 토해냈다.
"많은 분이 여러 문제를 안고 찾아오세요. 제 전공인 노동은 물론이고 급식, 주택, 문화재, 환경, 노인 등 다양한 문제를 안고 오세요. 그래서 공부할 게 많아요. 초선 의원이라 제가 아직 그분들의 문제를 풀어낼 요령이 부족하다는 게 죄송할 뿐입니다. 구조적인 면에서 어떻게 잘 풀어갈지 연구하고 있습니다."
서울시의회 관계자는 "이번 10대 의회에서 권수정 의원의 행보가 가장 눈에 띈다"고 말했다. 실제로 열의와 열정이 넘치는 초선 의원이 많은 이번 의회에서도 권 의원의 행보가 도드라진다.
그는 이달 6일 서울시의회 도시계획관리위원회 추경예산 심의에서 한강통합선착장 '여의나루' 예산의 전액 삭감을 이끌었다. 박원순 시장이 2015년부터 추진해온 서울 최초의 통합선착장 '여의나루' 건설에 제동을 건 것이다. 한강 재자연화에 역행하는 사업이라는 이유다.
권 의원은 또 상가임대차보호법 문제를 환기한 '서촌 궁중족발' 사건에서 궁중족발 사장과 함께 1인 시위를 펼쳤고, 서울지하철 9호선 2·3단계를 운영하는 서울메트로9호선운영 노조의 파업 기자회견, 기내식 대란에서 출발한 아시아나항공 승무원들의 촛불시위 등에 참여해 목소리를 냈다.
지난 20일에는 제물포·서부간선도로 지하화 공사현장에서 지하수가 대량으로 유출돼 안전 문제가 제기되자 주민들과 함께 대책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체력이 달리지 않느냐고 묻자 그는 "승무원 20년 했으면 그 체력으로 뭐든 할 수 있다"며 웃었다. 그가 말한 노동자로서의 '체력'은 곧 노동운동의 '경험'이자, '근육'이기도 하다. 승무원 생활 20년은 노동운동 경력과 궤를 같이한다.
권 의원은 2000년 아시아나항공 노조에 가입한 후 2005~2007년 공공연맹(현 공공운수노조) 부위원장을 지냈고, 2010~2013년 아시아나항공 노조위원장, 2013~2014년 민주노총 여성위원장을 역임했다. 승무원이 하루아침에 시의원이 된 게 아니다.
"아시아나항공에서 노조가 만들어진 후 임금 인상과 바지 유니폼 도입, 헤어스타일 자율화라는 변화를 이끌면서 노조가 참 필요한 조직이라는 것을 알게 됐죠. 동시에 아시아나항공에서 사측에 의해 노조가 어떻게 와해하고 붕괴하는지도 지켜봤습니다. 제가 처음부터 시의원을 꿈꿨을 리는 없고요. (웃음)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조직이 있어야겠다는 생각에 공공연맹과 민주노총에서도 일하게 됐고 2015년에는 정의당에도 가입하게 됐습니다. 그러다가 여성노동자의 목소리를 조금 더 분명히 내고 싶어졌고, 조합 활동만으로는 한계에 부딪히고 답답함을 느끼면서 좀 더 큰 무대와 큰 무기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항공사 입사 후 한 단계 한 단계 밟다 보니 어느새 여기까지 왔다"는 그는 "노동운동을 하다 보니 결국은 정치영역에서 해결해야 하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고 말했다.
"제가 가장 전문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게 노동과 여성 분야인 만큼 이 부분에서 의미 있는 일을 해내고 싶습니다. 가장 좋은 복지는 가장 좋은 일자리를 주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자기가 좋아하는 일자리에서 땀 흘려 임금을 벌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싶어요.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요. 박원순 시장이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공약했는데 그게 공공사업장은 물론이고 민간위탁사업장으로도 확대될 수 있게 노력할 겁니다. 또 성차별적 임금 격차를 해소하는 데도 앞장설 거고, 성소수자 관련 인권선언도 서울시에서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권 의원은 3선에 성공한 박원순 시장에게 뼈있는 견제구를 날렸다.
"박 시장이 2011년 재보궐 선거에서 당선됐을 때 했던 말과는 다른 시그널들을 최근 보여주기 시작했어요. 견제되지 않은 권력은 필연코 부패하는데, 박 시장이 일관성 있게 나아가도록, 뒷걸음질 치지 않도록 정의당이 채찍질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는 "배제되고 소외된 목소리를 드러내고 찾아내 주는 시의원이 되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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