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콕=연합뉴스) 김상훈 특파원 = 태국은 국왕과 왕실을 모독하는 행위를 강력하게 처벌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태국 형법 112조는 왕과 왕비, 왕세자와 섭정자 등 왕실 구성원은 물론 왕가의 업적을 모독하는 경우 최고 15년의 징역형에 처할 수 있도록 규정한다.
특히 2014년 쿠데타를 통해 집권한 군부 정권은 모호한 왕실모독 관련 규정을 폭넓게 해석해 단속하고 과하다 싶을 정도의 처벌을 가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불순한 의도로 왕족 사진을 올린 30대 남성이 징역 35년형을 받은 적도 있고, 국왕에 관한 비판적인 기사를 공유한 학생운동가가 징역형을 받기도 했다.
사회 분위기도 이런 흐름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최근 강력한 왕실모독 처벌 관행이 다소 완화되는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21일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최근 태국 항소법원은 마하 와치랄롱꼰(라마 10세) 현 국왕과 푸미폰 아둔야뎃(라마 9세) 전 국왕의 초상화를 불태운 6명의 왕실 모독 관련 공소에 대해 무혐의 판결을 내렸다.
북동부 콘깬 주에서 여러 차례 국왕의 사진을 불태운 이들에 대해 1심 법원은 지난해 왕실모독 및 방화, 공공재산 훼손 등 혐의를 인정했다. 주범에게는 11년 6개월, 다른 3명에게는 7년 8개월, 나머지 2명에게는 3년 4개월형을 내렸다.
그러나 항소법원은 이들의 형량을 길게는 2년 6개월 짧게는 4개월 줄였다.
변호인인 팟타나 사이야이는 "피고인들은 형법 112조 관련 처벌을 면해 기뻐하고 있다. 그들은 왕실을 모독할 의도가 없었다"고 말했다.
항소법원이 왕실 모독 의시가 없다는 피고인들의 진정을 받아들인 것일 수도 있지만, 현지 법조계에서는 왕실모독 처벌 자체가 완화되고 있다는 진단도 나온다.
2014년 5월 군부 쿠데타 이후 최소 94명이 왕실 모독 혐의로 기소됐지만 올해 들어서는 왕실모독 관련 기소가 한 건도 없었고, 법원에서 관련 공소가 기각되는 경우도 늘고 있다는 것이다.
태국 인권센터 변호사인 파위니 춤스리는 "올해 들어 법원에서 왕실모독 관련 기소가 기각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제 왕실모독 관련 사건은 10건밖에 남지 않았다"며 "이는 (군부의) 새로운 정책 방향인 것 같다"고 말했다.
최고 군정기구인 국가평화 질서회의(NCPO)의 한 소식통은 "정부가 왕실모독 관련 사건에 신중한 태도를 보인다. 왕실모독 처벌에 관한 법을 정치적으로 이용한다는 비판 때문"이라며 "이제 왕실모독 사건은 기소 전 단계에서 경찰 위원회가 신중하게 검토한다"고 귀띔했다.
meolak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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