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실수로 숨지게 했다'는 일관된 진술 등 존속살해 간접증거로 볼 수 없어"
(진주=연합뉴스) 이정훈 기자 = 병든 아버지를 살해하고 시신을 훼손해 버린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지적장애 남성이 1심 재판에서 존속살해 혐의를 벗었다.
창원지법 진주지원 형사1부(재판장 최성배 지원장·부장판사)는 존속살해 혐의로 검찰이 구속기소 한 이모(41) 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고 26일 밝혔다.
다만, 재판부는 이 씨가 숨진 아버지 시신을 토막 내 버린 혐의(사체손괴·사체유기)는 유죄로 인정해 징역 4년을 선고했다.
지적장애 3급인 이 씨는 지난 2월 9일 경남 진주 시내 자신의 집에서 파킨슨병으로 누워 있던 아버지(81) 입안에 손을 밀어 넣고 목을 졸라 숨지게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이 씨는 숨진 아버지 시신을 토막 낸 뒤 시내 쓰레기통, 사천 창선·삼천포 대교 아래 바다, 부산 태종대 앞바다에 버렸다.
그는 아버지 입안에 가득 찬 가래를 닦아내려고 물티슈와 손가락을 입안에 넣었고 목에 걸린 물티슈를 빼내려고 아버지 목을 10초 정도 누른 행위밖에 하지 않았다며 존속살해 혐의를 부인했다.
검찰은 그러나 이 씨가 다른 가족 없이 9년째 병든 아버지를 혼자 간호하는데 부담을 느껴 고의로 아버지를 살해했다며 존속살해 혐의를 적용했다.
검찰은 이 씨가 아버지가 숨진 후 시신을 훼손할 공구를 사들인 점과 119를 부르거나 병원으로 후송하지 않은 점 등을 존속살해 간접증거로 내세웠다.
이씨가 아버지 사망 3주 전 "아버지 장례비로 쓰겠다"며 정기예금을 해약해 1천400만원을 인출하고, 아버지 시신을 유기한 후 여행용 가방을 산 사실도 이 씨에게 불리하게 작용했다.
법원 판단은 달랐다.
재판부는 검찰이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이 씨가 아버지를 죽일 만한 범행 동기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이 씨가 아픈 아버지를 오랫동안 간호하며 피로감을 느낀 것과 범행 후 시신 훼손용 공구를 사들인 점은 인정했다.
그러나 이 씨가 당시 병세가 상당히 나빴던 아버지를 간호하는 과정에서 잘못된 조치 때문에 우발적으로 숨지게 했을 가능성을 전혀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시신을 유기한 행동 역시 이례적이기는 하지만 이 씨가 '실수로 아버지를 숨지게 해 처벌받을 것이 두려웠다'고 일관되게 진술한 점, 지적장애 3급으로 상식 능력, 판단력이 부족한 점 등을 고려하면 존속살해를 뒷받침할 간접증거로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정기예금을 해약한 것 역시, 과거에도 예금을 만기 이전에 해약한 적이 있었고, 여행용 가방을 산 것은 장애인고용공단을 통해 인근 하동군에 있는 회사에 취업하려는 의도였던 것으로 파악했다.
재판부는 이런 점을 종합하면 이 씨에게 살인의 고의가 있었다는 점이 의심의 여지 없이 증명되었다고 보기에 부족하다는 결론을 내려 존속살해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은 뒤늦게 공소장 변경 없이 이 씨에게 과실치사죄를 적용하려 했으나 재판부는 방어권 행사에 불이익을 줄 수 있다며 허용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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