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로 인쇄골목 청년인재로 '부활노래'…"고급·특수화로 승부"

입력 2018-10-04 08:00   수정 2018-12-05 10:58

충무로 인쇄골목 청년인재로 '부활노래'…"고급·특수화로 승부"
서울시 '인쇄골목 부활' 프로젝트…"젊은 아이디어로 부가가치 제고"



(서울=연합뉴스) 윤고은 기자 = 충무로 인쇄골목에서 길 하나를 건너면 1층에 번듯한 갤러리를 갖춘 인쇄업체가 나온다.
통유리로 된 갤러리 안에는 커다란 인쇄기계들이 깔끔하게 진열돼 있다. 마치 명품 갤러리 같아 선뜻 문을 열고 들어가기가 쉽지 않다.
이곳의 이름은 '비주얼마크'. 주소는 중구 창경궁로 2-1이지만 이곳 역시 충무로 인쇄골목에 들어간다. 좁고 낡은 인쇄골목 속 풍경과는 전혀 딴판이다.
사장도 젊다. 37세. 주로 60~70대인 인쇄골목 사장들에 비하면 아들뻘이다.
이런 점만 놓고 보면 상당히 이질적으로 보이지만 사실 비주얼마크 김영삼 대표는 '굴러온 돌'이 아니다. 인쇄업을 3대째 가업으로 잇고 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께서 충무로 인쇄골목에서 일하실 때는 건물에 화장실도 없었어요. 너무너무 열악했죠. 수입도 별로 없었어요. 저희는 인쇄가 아니라 동판회사였거든요. 인쇄량에 비례해 돈을 버는 다른 인쇄업소들과는 다르죠."



그는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경영하던 '삼성동판'을 지금도 운영한다. 2014년에는 비주얼마크도 차렸다. 그가 회사를 맡아 운영하기 시작했을 때 두 회사의 연간 매출은 합쳐서 5억원이었다. 그러나 4년이 지난 현재는 60억으로 커졌다.
폐업이 속출하는 충무로 인쇄골목에서 비주얼마크 같은 회사의 사례는 보기 드문 현상이자 희망찬 미래를 향한 새로운 가능성이다.
서울시가 진행하는 세운상가군 재생사업 '다시·세운 프로젝트'의 2단계 사업인 '충무로 인쇄골목 부활'에서 김 대표는 인쇄골목을 부활시킬 대표적인 청년 주자로 꼽힌다.
을지로와 충무로 일대를 현장 중심의 인쇄기술 교육 장소로 활용하고, 청년들이 찾아오는 인쇄·디자인의 혁신 공간으로 탈바꿈시킨다는 '다시·세운 프로젝트'는 김 대표 같은 청년 인쇄업자들을 적극 육성할 계획이다.
비주얼마크는 인도네시아, 베트남, 태국 등지에 동판을 수출한다. 담뱃갑, 달력, 카드, 휴대전화 제품 케이스 등 다양한 제품의 디자인 샘플을 동판으로 제작한다.
김 대표는 "동판만으로는 한계를 느껴서 외국 업체들을 조사했고, 판을 인쇄에 적용하는 테크닉을 연구해 디자인 샘플을 기획했는데 그게 시장성이 있었다"고 말했다.
"디자인에서 끝나지 않고 새로운 소재와 기법을 개발해 실제 샘플로 제작해서 보여주니 기업들이 반응하기 시작했어요. 결국은 시장을 개척하고 키워야죠. 저희는 특수인쇄를 파고들었고 쉽게 구할 수 없는 재료로 어필했어요."
종이에 뭔가를 찍어낸다는 좁은 의미의 인쇄가 김 대표 같은 이들을 통해 확장되는 것이다.
그는 "충무로 인쇄골목에는 청년들의 아이디어와 능력이 필요하다"며 "우리가 1층에 갤러리를 운영하는 것은 우리 같은 인쇄업도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비주얼마크의 갤러리는 서울시가 가을에 오픈하는 '다시세운인쇄기술학교'의 교육실습장으로 활용될 예정이다.


충무로에서 필동으로까지 넓혀간 인쇄골목 군에는 '박스마스터'(중구 퇴계로 50길)라는 회사도 있다. 역시 30대 젊은 사장이 경영하는 곳으로, 패키지 제작으로 특화된 인쇄회사다.
패키지는 제품을 넣는 박스 등 포장을 말한다. 이 회사가 기획한 화장품 제품 케이스는 미국 코스트코에서 히트를 쳐 수출 물량을 못맞출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제품을 보기도 전에 제품 포장이 선풍적인 인기를 끈 것이다.
박스마스터 김승현 대표는 "패키지 가격은 제품가의 5~15%를 차지하는데 제품의 특성을 잘 살리는 고도의 기술이 필요하다"며 "우리는 제품에 맞는 패키지를 기업에 상담해주고 예쁘고 기능성있는 패키지를 제작해 경쟁력을 확보했다"고 말했다.
"기존에는 기업들이 패키지를 으레 외국 회사에 맡겼어요. 지금은 우리 회사가 많이 가져왔죠. 무조건 돈을 많이 들인다고 좋은 것도 아니고 제품 특성에 맞게 제작해야하는데 우리가 기업에 컨설팅을 해주면서 맞춤형 패키지를 제작해주니까 반응이 좋아요. 4차산업 혁명은 시각적인 것에서 우선 일어나고 있어서 인쇄 디자인이 업그레이드 돼야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인쇄 디자인의 가치가 저평가돼 있는데, 디자인이 중요한 시대에 이런 분야를 육성하고 키워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회사는 대기업 바이어들을 확보해 상승세를 타고 있지만 가야 할 길이 멀다고 김 대표는 말했다.
"제품 패키지를 디자인하니까 멋져 보이는데 사실은 엄청 힘들어요. 인쇄 기술자는 줄어드는데 청년 유입은 끊겨서 인재 채용이 힘들어요. 또 옛날이나 지금이나 공장 제작 단가는 안 올라서 수익구조도 좋지 않아요."
서울시가 인쇄골목 업체와 창작자를 매개하기 위해 운영하는 '지붕없는 인쇄소' 이란 소장은 "박스마스터는 유망한 패키지 회사인데 대표가 완벽을 기하려고 하기 때문에 수익이 많이 안 난다는 말일 것"이라며 "그런 업체의 기술과 노하우가 제값을 받고 대우를 받아야 인쇄업체의 성장이 이뤄진다"고 지적했다.
충무로 인쇄골목을 2대째 지키는 스티커 인쇄 회사 피아이텍 이병욱 대표는 인쇄골목 구세대와 청년 세대의 중간 지점에 위치한다. 50대인 그는 아버지의 인쇄소를 물려받아 부가가치를 끌어올렸다.
"1980~90년대 고성장 시대라 아버지가 하실 때는 그야말로 종이에 잉크만 묻히면 팔려나갔을 정도로 호황이었죠. 또 저희는 스티커 특수인쇄업체라는 프리미엄도 있었고요. 하지만 2000년대 들어 매출이 급감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매출이 그때보다 훨씬 좋은데 직원은 오히려 줄었어요. 디자인 강화, 고급화 전략 등으로 부가가치를 높인 덕이죠."
이 대표는 "패키지, 라벨 등 특수시장이 커지고 있고 다이어리 등 죽은 줄 알았던 분야가 다시 살아나는 등 인쇄업은 하락세가 아니라, 완만한 성장세를 기록하고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충무로 인쇄골목은 후가공 협업 속도와 질에서 세계 최고 수준입니다. 이만한 데가 없어요. 도심에 있어 30분 내로 어디든 갈 수가 있고, 5천여개 업체가 협업을 하니 굉장한 장점이죠. 서울시가 계획을 잘 세워서 인쇄골목을 다시 활성화할 수 있다면 정말 좋겠어요. 제가 적극 협력하는 것도 그 것 때문입니다."
pretty@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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