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상보고서 "계획적·조직적 잔혹행위"…'집단학살' 표현 안해
(방콕=연합뉴스) 김상훈 특파원 = 미국은 미얀마 소수민족인 로힝야족을 상대로 미얀마군이 계획적이고 조직적인 잔혹 행위를 저질렀다는 결론을 내렸다.
미국은 이 같은 내용의 보고서를 미얀마에 대한 추가 제재의 근거로 활용할 가능성이 있지만, 미얀마군의 행위를 국제 법정에서 처벌이 가능한 '집단학살'(제노사이드)이나 '반인도범죄'로는 묘사하지는 않았다.
25일 로이터 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미 국무부는 공식 발표를 앞둔 20쪽 분량의 보고서에서 "미얀마 라카인주 북부에서 발생한 폭력사태는 극단적이고 규모가 크다. 로힝야족에게 겁을 줘 몰아내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보고서는 이어 "미얀마군 작전은 주도면밀하게 계획되고 조직적으로 진행됐다"며 "사람들을 집에 가둔 채 불을 지르거나, 마을을 완전히 봉쇄한 채 총격을 가하고, 수백 명의 난민을 태운 보트를 침몰시키는 등 대규모 희생을 유발하는 전략을 폈다"고 지적했다.
일부 난민은 "미얀마군이 4명의 소녀를 납치한 뒤 손발을 묶고 사흘간 집단 성폭행했다. 그들은 엄청난 출혈로 인해 반은 죽은 상태였다"고 증언했다.
미얀마군의 공격을 피해 방글라데시로 도피한 로힝야 난민 1천24명을 면접 조사해 작성된 이 보고서는 향후 미국이 미얀마에 대해 추가 제재를 감행하는 근거로 사용될 수 있다.
그러나 미 국무부 보고서는 미얀마군의 행위를 국제 법정의 기소가 가능한 '제노사이드'로 규정했던 유엔 보고서와는 다소 차이가 있다.
앞서 유엔 진상조사단은 최근 인권이사회에 제출한 최종 보고서에서 미얀마군이 사태 발생 초기 2개월간 1만 명가량을 학살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이를 '제노사이드'로 규정했다.
또 유엔 진상조사단은 민 아웅 흘라잉 미얀마군 최고사령관을 비롯한 6명을 국제법에 따라 중범죄로 법정에 세워야 한다고 촉구한 바 있다.
익명을 요구한 국무부 고위관리는 로이터 통신에 "조사의 목적은 집단학살 여부를 규정하기보다는 잔혹 행위 책임자에 대한 (미국의) 정책에 반영할 근거를 마련하려는 것"이라며 "(미얀마군의 행위를 집단학살로 규정할지는) 마이크 폼페이오 장관의 의지에 달려 있으며 가능성이 없지 않다"고 설명했다.
로힝야족 반군인 아라칸 로힝야 구원군(ARSA)은 핍박받는 동족을 돕겠다며 대미얀마 항전을 선포하고, 2016년 10월과 지난해 8월 미얀마 경찰 초소 등을 급습했다.
미얀마군은 대규모 병력을 동원해 반군 토벌에 나섰고, 특히 지난해 8월 2차 공격 이후에는 ARSA를 테러집단으로 규정한 뒤 대대적인 공세를 펼쳤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로힝야족 난민이 목숨을 잃었고, 70만 명이 넘는 난민이 국경을 넘어 방글라데시로 도피했다.
난민들은 미얀마군이 반군 토벌을 빌미로 민간인을 학살하고 성폭행, 방화, 고문 등을 일삼으면서 의도적으로 로힝야족을 국경 밖으로 몰아냈다고 주장했다.
유엔 등 국제사회는 이를 전형적인 '인종청소' 사례로 규정해 비판하고 책임자를 국제 법정에 세우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미얀마군과 정부는 국제사회의 주장에 근거가 없다고 반박하고 있다.
특히 민 아웅 흘라잉 미얀마군 최고사령관은 자신을 국제 법정에 세우라는 유엔 진상조사단을 향해 "유엔은 특정국의 내정에 간섭할 권한이 없다. 내정 간섭은 오해만 유발할 뿐"이라고 일축했다.
meolak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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