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S 협업으로 주목받은 문승지, 파라다이스ZIP 개인전
환경 되새김하는 간결한 디자인 작업…"나무 계속 심는 게 목표"
(서울=연합뉴스) 정아란 기자 = 2013년 겨울 패션브랜드 코스(COS) 전 세계 매장 쇼윈도에 자작나무 의자 4개가 나란히 깔렸다. 쇼윈도 유리에는 아래와 같은 글귀가 새겨졌다. '포 브라더스. 네 의자는 하나의 나무에서 탄생했다.'
버려지는 나뭇조각 하나 없이, 합판 한장에서 서로 다른 의자 4개를 만들어낸 이는 당시 22살 한국인 문승지였다. 이렇다 할 이력 하나 없던 젊은이를 세상에 알린 '포 브라더스'는 계원예대 졸업작품이었다.
"학교 다닐 때 금속제작실에서 아르바이트를 했거든요. 그때부터 왜 이렇게 버려지는 것들이 많나 하고 생각했어요. 졸업작품 준비하면서 왔다 갔다 한 공장에도 나무가 이만큼 쌓여 있는데, 다 태워진다고 하더라고요."
'쓰레기가 안 나오는 가구는 없을까'라는 생각은 '포 브라더스' 탄생으로 이어졌다. 합판 한장을 정교하게 나눈 뒤, 종이인형을 잘라내듯이 딱 맞춰 잘라낸 조각들을 조립해 만든 작품이다.
이를 발판 삼아 지난 6년간 종횡으로 질주해온 문승지(27)의 첫 개인전 '쓰고 쓰고 쓰고 쓰자'가 서울 중구 장충동 복합문화공간 파라다이스집(ZIP)에서 열리고 있다.
'포 브라더스'뿐 아니라 버려진 알루미늄 캔을 활용해 의자를 뚝딱 만드는 미니 용광로, 일회용컵과 이면지를 활용한 화분에 이르기까지 재기발랄하면서도 이색적인 작업이 나왔다.
전시 제목에서 읽히듯이, 문승지 작업은 어떠한 식으로든 환경과 연결된다. 지독한 쓰레기를 더는 모른 체해서는 안 된다는 경고가 올해 동시다발적으로 쏟아진 터라, 그의 작업은 더 흥미롭다.
최근 전시장을 함께 돌아보며 "제 디자인은 스토리를 맨 처음 생각하기에 형태 제약이 없고, 자연스럽게 간결해질 수밖에 없다. 억지스러운 선, 이유 없는 색이 없다"고 설명하는 작가의 얼굴에서는 자부심이 묻어났다.
"(가구 디자인을 보면) 판매를 위한 작업이 너무 많아요. 제 가구를 산다는 건, 쓰레기를 배출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사는 것이기도 하다고 생각해요."
작가가 환경에 민감한 것은 "푸른 하늘과 푸른 바다가 당연했던" 제주 한림에서 나고 자란 것이 알게 모르게 영향을 미쳤을지도 모른다.
지난해 3월 덴마크에서 귀국, 일종의 레이블 아래 여러 장르의 사람들과 협업 중인 문승지의 작업은 디자인, 가구, 오브제, 설치, 공간 디자인 등 다양한 영역을 아우른다.
유독 의자 디자인을 즐기는 문승지는 "하면 할수록 어려운 것이 의자"라고 설명했다. "눈으로 볼 때는 별 차이가 없을 것 같지만, 정말 의자마다 다르거든요. 의자를 만들려면 인체공학부터 패브릭까지 다양한 분야의 공부도 많이 필요하고요."
디자이너가 사회에 미치는 '악영향'을 고민한다는 작가는 미래의 목표로 "언젠가 제 브랜드가 생긴다면 계속 나무를 심고 싶다"는 뜻밖의 답을 내놓았다.
"쓰레기가 나오지 않는 디자인을 하고, 그 제품을 후손에 물려준다고 해도, 결국에는 (제품이 수명을 다하면) 쓰레기가 생길 수밖에 없잖아요. 그래서 제 브랜드를 통해 계속 나무를 심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일단 올해 안에 중국 쿠부치 사막에 나무를 심는 봉사활동을 하러 가야겠단 마음을 먹고 있습니다."
'쓰고 쓰고 쓰고 쓰자' 전시는 11월 3일까지. 문의 ☎ 02-2278-9856.
air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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